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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
오피니언

[덕산 김덕권 칼럼]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7/11/22 09:49 수정 2017.11.23 08:29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칼럼니스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

누구나 피하고 싶지만 결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나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이라는 주제의 강연이 미국의 예일대에선 17년간 최고의 강의로 꼽혔습니다. 셸리 케이건(Shelly Kagan) 교수는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 삶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를 통해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인지를 알아봅니다.

그의 강의가 이토록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의 강의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죽음과 삶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입니다. 그 셀리 케이건 교수의 강의를 요약 정리해 봅니다.

첫째, 왜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만 하나요?

사람들은 죽음에 관한 생각을 애써 외면하려고 합니다. 죽음은 너무나 두렵고 불편하고 우울한 주제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인간은 어차피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지를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스스로 진정한 가치를 찾은 뒤에 그것을 목표로 삶을 다듬어나가는 것이 의미 있는 인생입니다.

둘째, 그렇다면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일까요?

주어진 시간에 어떻게 살아야 보람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몇 해 전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학생이 제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학생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학생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하더군요. ‘남아 있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고는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학교를 졸업하는 일이라고 결정을 내렸지요. 죽기 전에 학교를 졸업하는 것을 목표로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학기 중 갑자기 상태가 악화됐고, 결국 예일대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학생은 학위를 받고 무척이나 기뻐했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셋째, 자신이 죽을 것이란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의 우선순위를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신에게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경쟁에서 이기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는 일에는 별로 시간을 투자하지 않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자신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즉,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잘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하는 것이지요.

넷째, 어떤 삶이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일까요?

내가 정말 얻고 싶은 것은 좋은 직장이나 돈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기쁨일 뿐입니다. 좋은 직장이나 돈은 기쁨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삶의 목표는 될 수 없습니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잘 돌보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요. 둘은, 풍부하고 값진 경험으로 내 삶의 그릇을 많이 채우는 것입니다. 셋은,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그래서 잘살아야 합니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습니다. 부디 삶과 죽음에 관한 다양한 사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나아가 두려움과 환상에서 벗어나 죽음과 직접 대면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또다시 인생을 잘 사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셀리 케이건 교수의 강의가요? 하지만 외국학자이어서인지 강의 내용이 쏙 들어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죽음에 관해 정곡(正鵠)을 찌르지 못한 것 같아서이지요. 사람이 행할 바 도(道)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요약하면 생(生)과 사(死)의 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살 때에 생의 도를 알지 못하면 능히 생의 가치를 발하지 못하고, 죽을 때에 사의 도를 알지 못하면 능히 악도(惡道)를 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사람의 생사는 비하건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숨을 들이 쉬었다 내 쉬었다하는 것과도 같고, 잠이 들었다 깼다 하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 이치를 알면 생사가 원래 둘이 아니요 생멸(生滅)이 원래 없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친 사람은 이를 변화(變化)로 알고, 깨치지 못한 사람은 이를 생사라 하는 것이지요.

저 해가 오늘 비록 서천(西天)에 진다할지라도 내일 동천(東天)에 솟아오르는 것과 같이, 만물(萬物)이 이생에 비록 죽어간다 할지라도 죽을 때에 떠나는 그 영식(靈識)이 다시 이 세상에 새 몸을 받아 나타나게 되는 것이 생사의 이치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 있는 세상을 ‘이승’이라하고, 죽어가는 저 세상을 ‘저승’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승과 저승이 다른 세계가 아닙니다. 다만 그 몸과 위치를 바꿀 따름이지 다른 세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영혼(靈魂)이 육신을 떠날 때에는 처음에는 그 착심(着心)을 좇아가게 되고, 그 뒤에는 업(業)을 따라 몸을 받게 되어 한없는 세상에 길이 윤회(輪廻)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윤회를 자유 하는 방법은 오직 착심을 여의고 업을 초월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어제가 별 날이 아니고 오늘이 별 날이 아닙니다. 어제까지를 일러 거년(去年)이라 하고 오늘부터를 일러 금년(今年)이라 하는 것 과 같이, 우리가 죽어도 그 영혼이요 살아도 그 영혼이건만, 죽으면 저승이라 하고, 살았을 때는 이승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된 육체는 비록 죽었다 살았다하여 이 세상 저 세상이 있으나 영혼은 영원불멸하여 길이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생사의 원리를 대충이라도 알 수 있으신지요? 죽음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생멸 없는 도를 깨치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중생을 면치 못합니다. 바쁩니다. 어서어서 이 생사대사를 깨달아 생사를 초월하고, 마음을 자유로 하며, 죄와 복을 임의(任意)로 하면 그것이 해탈(解脫)이요 열반(涅槃)이 아닐 런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1월 2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본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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