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안데레사 기자 = 연이은 가정 내 아동학대 소식에 사회적 공분이 크다. 지난 2일, SBS TV 탐사 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정인이는 왜 죽었나?' 편이 온라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16개월 영아 학대 사망 사건'이 방송을 통해 재조명되면서 가해자인 양부모를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검찰은 법의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살인 혐의를 적용할만한 정황이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전날 방송에서는 시청율 5%가 넘는 기록을 다룬, 생후 7개월 무렵 양부모에게 입양된 이후 271일 만에 하늘로 떠난 정인 양 사망 사건을 다루면서 다시 아동학대의 예방을 위해선 정부가 의지를 갖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여론이다. 그간 아동학대 사건 발생 후 대책이 발표됐으나 현장에서 실현되지 않아 문제의 재발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정인양 사망직전에 경찰 조사까지 이루어 젔으나 양부모는 정인 양의 죽음이 "소파 위에서 첫째랑 놀다가 둘째가 떨어졌다, 사고사"라고 주장했으나, 전문가는 사망한 정인 양의 상태를 보고 "배가 피로 가득 차 있었고 췌장이 완전히 절단돼 있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정인 양은 양쪽 팔과 쇄골, 다리 등도 골절 상태였다.
뿐만이 아니다. 당시 응급실에서 정인 양을 담당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그녀 배에 가득 찬 곳을 가리키며 "이 회색 음영, 이게 다 그냥 피다. 그리고 이게 다 골절이다. 나아가는 상처, 막 생긴 상처. 이 정도 사진이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아동 학대"라고 말했다.
이러한 일들이 최근 천안 계모에 의하여 가방에서 질식한 사건과 더불어 인천 남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4세 여아가 햄버거를 먹고 이를 닦던 중 돌연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조사 결과 아이는 어머니와 그 친구들에 의해 학대를 받다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말 인천에서 굶주림과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탈출한 소녀 사건, 부천에서 일어난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 사망 사건 등과 같이 아동 학대 사건이 연이어 발생함으로써 정부의 아동학대에 대한 미흡한 대처가 연일 언론에서 질타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의 피해아동은 이혼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 같은해 4월 인천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다. 6월 말에 어머니가 직접 양육을 하겠다고 퇴원신청서를 제출해 집에 데려왔다가 불과 한 달만에 사망했다. 어머니는 7월에 이사를 하며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도 않았기에 정부가 마련한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주민센터 등을 활용한 아동학대 조기발견 시스템이나, 보육교사나 의료인 등 아동학대 의무신고자에 의한 신고 시스템이 아예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방송 신문을 통해 공분을 불러온 칠곡과 울산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 이후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은 이듬해 2월 ‘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 아동 조기발견·보호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중 필수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아동에 대해 학대 가능성을 조사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사 및 가정방문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장기결석 아동을 찾아야 한다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학령기 미취학 아동 명단을 확보해 보호인력·경찰이 가정을 방문한다”, “적극적으로 가정방문을 해 학대위험 아이를 찾겠다”고 했지만 초등학생이 무단결석을 하면 가정으로 출석독려장을 보내고 종결하는 절차는 그대로다.
현재 논의되는 대책들은 학대 발생 후 조치에 집중돼 있어 가정 내의 문제를 조기 발견해 아동학대를 예방하기엔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학령기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책은 취학 전 영유아에 대한 학대문제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이러한 상황은 그간 우리 사회가 가정 내 아동학대를 범죄에 해당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점을 반영한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81.9%가 부모고 학대 장소의 85.9%가 가정인데도 가정 내 아동학대는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암묵적으로 방관돼왔다. 이번 부천 백골 여중생 사건만 해도 가정 내의 일이라는 이유로 무책임했던 학교, 경찰을 비롯한 주변의 인식을 드러낸다. 여중생이 장기 결석하자 학교 측은 전화와 우편으로 출석을 독려한 것이 전부였고, 경찰 역시 “집에 올 필요 없이 직장에서 만나자”는 부모의 말을 믿었다.
이제 아동학대 문제를 가정 내의 문제가 아닌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사전에 학대를 방지할 수는 있는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동복지법은 지자체에 자치단체장이 위원장을 맡는 아동복지심의위원회를 두고 보육원 입·퇴원 심의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심의위원회가 열리는 일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서류와 면접 심사에 그치고 있다. 이번 경우에도 심의위원회의 심의 없이 어머니가 제출한 양육계획서에 대한 검토만으로 퇴원이 이뤄졌다고 한다. 만약 엄격한 퇴원 심사와 아울러 퇴원 후 일정 기간 정기적으로 아이의 상황을 확인하는 절차가 제대로 행해졌다면 여아의 비극적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치단체장이 실제 심의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실질적인 심사와 조사가 이뤄질 수 있는 심의위원회가 구성되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물론 아이를 데려가는 부모의 자격 심사를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방안이 될 수는 없다. 아이를 제대로 키울만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보육원 퇴원 전에 아이가 생활할 환경을 미리 점검하고 경제적 여건이 나쁘다면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고 부모와 아이에 대한 지속적인 상담과 자문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종합대책이라는 화려한 전시행정보다 문제가 드러났을 때 이를 면밀히 분석해 비슷한 사태의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예산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설사 예산이 부족하더라도 아동학대 예방과 아동보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보완해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구하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
테레사 수녀는 “모든 아이들은 보물”이라고 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아이들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미래이자 반짝이는 희망이다. 주변의 외면 속에 고통 받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우리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