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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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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랬지?”

강기석(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기자 poweroftruth@daum.net 입력 2021/01/07 10:55 수정 2021.01.08 13:06

어제 「족벌, 두 신문 이야기」를 관람했다. 친일에 뿌리를 둔 조선, 동아 두 수구적폐 신문의 추악한 100년 실체를 해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상영시간이 무려 2시간 48분에 이르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두 가지 장면이 인상 깊었다.

#1. 광주학살을 자행하고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이 공식적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80년 8월 이래 모든 신문과 방송은 연일 전두환에 대한 찬양 기사를 쏟아냈다. 그중에서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 ‘새 시대의 영도자’로 칭송한 기사는 차마 목불인견이었다.

당시 그 기사를 쓴 동아일보 기자와 조선일보 기자에게 지금의 심경을 물었다. 답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동아 기자 “그런 기사를 쓴 기억이 없다. 그런 걸 왜 물어 보나. 그런 일로 전화하지 말라.”

조선 기자 “다 알지(짐작하지) 않느냐. 어쩔 수 없이 썼다.”

조선 기자는 권력이 무서워서, 혹은 회사 상층부의 압력 때문에 그런 기사를 썼다는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아 기자는 아예 답변을 회피했지만 자신의 기사가 부끄러운 것이었음을 알고는 있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기사였다면 왜 기억이 나지 않겠는가. 왜 심경을 묻는 기자에게 신경질부터 부렸겠는가. 그때는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기총소사로 학살하고 길거리 아무나 잡아가서 고문하고 죽이기도 한 삼청교육대를 TV에서 방영까지 한 공포의 시대였기 때문에 그랬다고 치자. 기자들이 아무 때나 보안사 끌려가서 두들겨 맞아도 하소연할 곳 없던 시절이었던 것이 맞다.

그럼 언론의 자유를 최고도로 구가하고 있는 이 민주정부 시절의 언론의 모습은 어떤가. 저 기자들에게 다시 기사를 쓰게 하면 어떤 기사를 쓸 것인가.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인 것 같다.

지금 언론은, 특히 조선과 동아는 그 어떤 기자에게도 신변의 위협을 가하지 않는 대통령에게는 저주에 가까운 공격을 퍼붓는 대신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검찰권력자, 재벌권력자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낮 뜨거운 찬양 기사를 쏟아내고 있지 않는가. 그 스스로 최고의 권력이 되고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언론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만을 의미한다면 그건 이미 오래 전에 용도폐기 되었어야 마땅한 수구언론의 자기보신용, 혹은 알리바이용 주문에 불과하다. 

#2. 박정희의 유신체제가 막바지로 치닫던 79년 7월 동아투위 기자들이 이른바 「민권일지사건」으로 구속됐다. 이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피고인들이 최후진술을 했는데 그 중 한 분의 부인이 몰래 현장을 녹음했다.

영화에서 자신의 과거 최후진술을 지긋이 듣던 정연주 선배가 심경을 묻는 언터뷰어의 질문에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다가 끝내 눈물을 훔치는 장면에 나도 울컥했다.

“전 동아일보 기자입니다. 시간도 많이 지나고 배도 고프고 하니 간단하게 끝내겠습니다. 5.16 군사쿠데타, 정권의 부도덕성, 이런 것도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제 자신의 심정만 간단하게 말씀 드리고 최후진술을 마치겠습니다.

제가 왜 성동구치소 감방에 누워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요. 제가 그럼 범했다는 죄가 뭐냐,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했다는 게 죄라는 겁니다. 나무를 나무라고 한 사실, 서울대학교에서 애들이 데모했다, 함평고구마사건으로 농민들이 단식을 했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 억울하게 똥물을 뒤집어 썼다, 이런 정말 말할 수 없는 처절한 코미디, 이런 것들이 지금 이 땅에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사건의, 2심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이라는 것, 명약관화한 것이고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런 사실들 표정 하나하나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기록해서 역사에 증언할 것입니다.”

방청석의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고 이어 판사의 “조용히 해!!”라는 증오에 가까운 호통소리가 들린다. 당시 정 선배에게는 피고인 중에서 막내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징역 1년6개월이 떨어졌다.

아마도 “저는 이번 사건의, 2심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이라는 것, 명약관화한 것이고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최후진술에 대해 괘씸죄를 적용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79년 그 당시는 판사도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릴 경우 중앙정보부의 위협을 받거나 검찰로부터 비리수사를 받거나 강제로 법복을 벗어야 하는 엄혹한 시절이긴 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오늘날 판사야말로 (비록 양승태의 ‘사법농단’으로 스타일은 구겼지만) 아무한테도, 어디로부터도 위협을 받지 않으며 이 사회 모든 사안에 대한 최종 판결자로 최고의 위세를 구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과거 방청석에 대고 “조용히 해!”라고 소리치면서 언론의 자유에 대해 1년6개월 형을 때렸던 그 판사가 지금 다시 그런 성격의 재판을 맡는다면 정말 법과 양심에 합당한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이 역시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정경심 교수 재판, 윤석열 청장 재판, 전광훈 목사 재판에서의 잇따른 판결에서 법원은 이미 저 질문에 대해 명백한 답변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정치권력에 굴복했던 사법부나 조직적으로 사법농단을 획책했던 사법부나 기득권의 최후 수호자를 자처하는 지금의 사법부가 크게 다른 것이 없다.

‘사법부의 독립’ 역시 ‘언론의 독립’ 만큼이나 공허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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