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회장은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2006년 9월 김기춘 전 실장이 브이아이피(박근혜 대통령)를 모시고 벨기에와 독일에 갈 때 10만달러를 바꿔서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실장은 지난 14일 등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우리를 초청한 독일의 유수한 재단(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에서 항공료와 체재비용을 전부 부담했다”며 “우리들은 초청을 받아 간 입장으로 약간의 노자를 갖고 갔고, 나는 내 돈으로 5000유로를 환전했다”고 밝혔다. 개인이 돈을 많이 써야 할 상황이 아니어서 성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는 게 김 전 실장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21일 아데나워 재단 본부는 이와 배치되는 설명을 내놨다. 재단은 당시 행사와 관련한 질문에 이날 전자우편을 통해 “대표단이 베를린과 브뤼셀에 머무는 동안 숙식 및 교통 비용을 제공했다”면서도 “유럽을 오가는 국제 항공편에 대해선 지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06년 9월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 자격으로 독일과 벨기에를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 일행의 방문 비용과 관련해, 박 대통령 일행을 초청했던 독일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이 21일 “당시 박 대통령 일행에 대해 한국~유럽 구간 항공료는 지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당시 박 전 대표를 수행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최근 “당시 모든 방문 비용은 아데나워 재단이 댔다”고 말한 것과 배치돼 주목된다. 김 전 실장은 최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당시 방문 경비 명목으로 10만달러를 받았다는 성 전 회장의 생전 인터뷰 내용이 보도되자 “내가 항공료나 체재비를 내지 않았다”며 ‘10만달러나 되는 거액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바 있다.
독일 베를린의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본부는 이날 ‘2006년 초청’과 관련해에 보내온 전자우편을 통해 “재단은 대표단이 베를린과 브뤼셀에 머무는 동안 숙식 및 교통(boarding, lodging and travel) 비용을 제공했다. (한국과) 유럽을 오가는 국제항공편에 대해선 지불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첫 목적지였던 벨기에를 가기 위해 이용한 프랑스 파리 드골공항까지, 그리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료는 박 대통령 일행이 직접 부담했다는 것이다. 또 재단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당시 브뤼셀~베를린 구간 항공료를 포함해 유럽 내에서 발생한 모든 비용은 재단에서 부담했다”며 “우리는 이런 형식의 초청 프로그램을 해마다 40~50차례 실시한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과 아데나워 재단의 말을 종합하면, 수백만원에 이르는 왕복 국제항공료를 누가 대납했는지 등이 분명하지 않다. 아데나워 재단 설명대로라면, 박 대통령도 당시 본인과 수행한 정호성 비서관의 왕복 항공료 비용을 개인적으로 부담했어야 한다. 2006년 당시 서울~유럽 왕복항공료는 이코노미석 기준으로 약 300만원, 프레스티지석 기준 550만원가량 됐다. 국회의원들의 경우, 이코노미석을 구입해도 프레스티지석 좌석 승급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당시 동행했던 심재엽 전 의원은 “내 비행기표는 내가 끊었다”고 말한 바 있다.
아데나워 재단은 또 당시 국내 체재비 비용 지원 대상으로 국회의원이었던 박 대통령과 김기춘 전 실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심재엽 전 의원, 그리고 당시 박 대통령의 의원실 비서관이었던 정호성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 5명의 명단을 제시했다. 당시 이정현 공보특보(현 새누리당 의원)도 박 대통령의 전 일정을 수행했지만, 아데나워 재단의 지원 대상에는 들어 있지 않다고 재단 쪽은 밝혔다.
재단 쪽은 당시 방문에 대해 “방문 프로그램의 주된 목적은 독일과 한국 양자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대표단은 독일 의회 및 몇몇 부처와 지방정부의 고위 인사를 만났다”고 설명했다.
당시 유력한 대선 주자로 손꼽히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아데나워 재단 초청으로 출국해 9일 동안의 일정을 소화했다. 그때 현직 의원이었던 김기춘 전 실장은 최경환 의원(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심재엽 의원, 이정현 공보특보(현 새누리당 의원)와 함께 박 대통령을 수행했다. 정호성 비서관(현 청와대 부속비서관)과 10여명의 취재진도 동행했다.
아데나워 재단이 항공료를 부담하지 않았다고 밝힘에 따라 항공료를 누가 어떻게 냈는지에 관심이 모인다. 여행사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브뤼셀까지는 직항로가 없어 대개 파리나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브뤼셀로 들어간다”며 “2006년 9월23일 오후 1시35분발 파리행 KE901편 왕복요금은 이코노미는 302만원, 비즈니스는 550만원, 일등석은 790만원 선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항공료 외에도 당시 재단이 숙박과 교통비용(국내 항공료 포함) 등에 대해서만 비용을 지급해 식사 등 별도의 경비는 누가 지급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런 경우, 동행한 의원들이 나눠서 분담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와 별도로 김 전 실장의 오락가락 해명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 10일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이 된 다음(2013년 8월5일)에는 성완종 전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성 전 회장과 무관함을 밝혔지만, 김 전 실장과의 만찬 약속 등을 기입한 성 전 회장의 일지가 언론에 공개되자 말을 바꿨다. 김 전 실장은 지난 16일 등과의 인터뷰에서 “2013년 11월6일 삼청동의 한 식당에서 성 전 회장을 비롯해 이인제, 이장우, 박덕흠, 김태흠 등 충청지역 새누리당 의원을 (함께) 만나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또 성 전 회장과의 전화 통화 여부에 대해서도 “최근에 성 전 회장과 통화한 적이 없다. 내가 청와대에서 나오고 난 뒤에 그도 알고 나도 아는 이를 통해 그런(구명) 전화는 있었지만 ‘나는 관여하지 않는다’ 하고 거절했다”고 말했으나, 최근 검찰 수사에서 성 전 회장이 최근 1년 동안 그와 40여차례 통화를 시도한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져 의혹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