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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홍준표 스타가 된 슬럼머신 제연출..
정치

무명의 홍준표 스타가 된 슬럼머신 제연출

심종완, 임병용 기자 입력 2015/04/25 22:25
박철언 전 장관

22년 전 6공화국 황태자 박철언 의원 ‘5억 수수’ 기소 홍준표 검사
지금은 성완종 회장으로부터 ‘1억 수수’ 의혹 받으며 비슷한 처지

※ 홍준표, 우병우, 문무일. ‘성완종 리스트’ 수사로 얽혀있는 세 사람이다. 모두 검사 출신이거나 현직 검사지만 처지가 확연히 다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사시 24회)는 20년 넘게 쌓아올린 영광이 잿더미로 변할 위기에 놓여있다. 목숨을 건 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사시 29회)은 제 발등을 찍은 ‘기획 사정’의 기안자로 지목받고 있다. 그래도 더이상 정권이 흔들리지 않도록 수사를 ‘조율’해야 하는 고역스러운 위치다. 문무일 검사장(사시 28회)은 망자의 유언을 집행해야 하는 운명을 떠안았다. 검찰을 살리기 위해 칼날은 멈칫거릴 수 없다.

 

세 남자에게는 모두 ‘과거’가 있다. 성완종 사건에서 이들이 맡은 배역은 묘하게도 과거의 역할과 겹친다. 그 ‘기시감’이 이들의 발목을 잡거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지만, 과거를 극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이 세 사람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연합통신넷= 심종완, 임병용기자]  홍준표 경남지사(61)가 2011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7·4 전당대회를 앞두고 고교 후배로부터 4500만원 상당의 차명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검찰은 당시 직원들 명의로 돈을 낸 공여자가 홍 지사와 친분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홍 지사는 처벌하지 않은 채 수사를 마무리했다. 현재 홍 지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같은 해 6월 1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했다고 밝히면서 검찰 특별수사팀의 ‘1차 소환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무명의 시골 검사 홍준표를 일약 스타로 키운 건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이다. 수많은 실력자들이 줄줄이 홍준표 검사 앞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역시 정점은 6공화국의 황태자 박철언 의원이었다. 사건은 이렇게 요약된다. ‘세무조사에 시달리고 있던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정덕진, 정덕일 형제가 1990년 10월께 홍성애의 평창동 집에서 박철언에게 돈가방을 주었고, 그 돈가방을 들고 가는 것을 홍성애가 보았다.’

정씨 형제가 박철언 의원에게 5억원을 줬다고 하는데 박철언은 완강히 부인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1억원을 줬다’는 말을 남겼지만 홍준표 지사가 인정하지 않는 구도와 마찬가지다. 

물증은 없었다. 목격자 홍성애가 유일한 증인이었다. 특히 홍성애는 피겨스케이트 선수 출신에 화려한 미모까지 갖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성완종 회장한테서 돈을 받아 홍준표 지사 쪽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윤아무개(52) 전 경남기업 부사장의 역할이 과거 홍성애의 위치와 비슷하다.

홍성애는 정씨 형제와도 아는 사이지만 박철언 의원과도 7년 동안 친분을 유지해온 사이다. 그렇기에 처음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을 때는 ‘보지 못했다’고 일관되게 부인했다. 그런데 박 의원의 말이 홍성애를 자극했다. 박 의원이 기자들과 만나서 “정씨 형제가 돈을 줬다면 홍성애가 중간에서 가로챘을지 모른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홍성애는 미친 듯이 분노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철언과의 대질 신문 때는 “박 의원님 내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돈을 가져갔다구요?”라며 박 의원을 보자마자 항의하기도 했다.

윤 전 부사장도 성완종 전 회장의 사람이자 홍준표 지사의 공보특보이기도 했다. 홍 지사도 지난 10일 금품 제공 메모가 처음 공개됐을 때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고인이 악의나 허위로 썼다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돈 받은 사람이) 내가 아니니까 나한테 줬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했다. 성 전 회장이 누군가에게 돈을 전달했을 수도 있지만 홍 지사 본인은 받은 적이 없다는 취지로 ‘배달사고’를 언급한 것이다. 윤 전 부사장이 홍 지사를 감싸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배달사고를 일으킨 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홍 지사 편에 서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홍 지사는 자신의 측근이 윤 전 부사장과 통화한 얘기를 듣더니 ‘윤 전 부사장이 나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더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윤 전 부사장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과거의 경험에서 알고 있는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1일 오전 경남도청으로 출근하며 거취문제 질문을 한 기자에게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뇌물사건 중 물증 없는 경우 80%”…그 말이 부메랑 되어 돌아와
슬롯머신 사건과 ‘기시감’ 경남기업 수사…홍 지사는 살아남을까

 
과거 박철언 의원은 재판을 받으면서 홍성애를 정씨 형제 쪽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홍 여인은 지난 10년간 정덕일 형제와 특별한 인간적·경제적 관계를 지속해왔으며 지금까지도 정덕일에게 거액의 채무를 지고 있는 등 사실상 그들의 영향권 내에 있는 독신 여성이고 검찰의 요망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는 논리였다. 홍성애 진술의 증거능력을 떨어뜨리기 위한 법정 전략이다. 홍준표 지사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홍 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언론에 거론되는 윤씨는 저의 대표 경선을 도와준 고마운 분이지만 제 측근이 아니고 성완종씨 측근”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성 전 회장이 홍 지사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고 ‘없는 이야기’를 지어냈으며, 윤 전 부사장도 성 전 회장의 측근이기에 그 입장이라는 걸 은연중에 강조하는 것이다.

 

인생은 돌고 돈다더니, 홍준표 지사가 22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박철언 의원의 처지가 돼버리고 말았다. 과거 박 의원이 했던 말과 법적 논리를 고스란히 홍 지사가 사용하고 있다. 22년 전에는 그런 방어막을 깨기 위해 더 날카로운 증거와 논리를 들이대던 검사가 이제는 과거 피의자가 사용했던 방어 논리를 더욱 더 높이 쌓고 있다.
 
그런 역설 가운데서도 가장 잔인한 대목은 증거 능력을 두고 박철언 의원과 홍준표 검사가 붙었던 공방의 한 대목이다. 박 의원 쪽이 이 사건은 증거가 없다며 ‘시체 없는 살인사건’이라고 주장하자 홍 검사는 당시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뇌물사건 중 물증이 없는 경우가 80%는 됩니다. 뇌물을 수표로 주는 사람은 초보잡니다. 어떤 바보가 추적이 가능한 수표로 줍니까. 대부분 현금거래죠”라며 “물증 없이 유죄가 확정된 대법원 판례가 어디 하나 둘이요”라고 되물은 것이다. 자신이 한 말이 부메랑이 되어 이렇게까지 되돌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건의 구도가 비슷하다고 해서 결론까지 같으리라는 법은 없다. 우선 그는 당당하고 침착하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 대부분이 전화기를 꺼놓거나 언론을 피하는데, 그는 출근길에 끈질기게 따라붙는 기자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해준다. 24일 아침에도 ‘홍 지사 측근들이 돈 전달자 윤씨를 만나 회유를 시도했다’는 보도에 대해 기자들이 질문을 하자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서 만났을 수가 있다. 그러나 회유 운운하는 건 좀 과하다”고 말했다. 왠만한 자신감이 아니면 보여주기 힘든 침착함이다. 과거 박철언 의원이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흥분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홍 지사는 이와 관련해 “올무에 걸렸을 때는 차분하게 올무를 풀 그런 방안을 마련하고 대처를 해야 한다. 올무에 걸린 짐승이 빠져 나가려고 몸부림을 치면 올무가 더 옥죄어 든다”는 ‘명언’을 남겼다.

 

또 불리한 형세를 뒤집을 수 있는 증거들도 있다. 대표적인 게 성완종 회장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성 회장은 지난 3일 검찰 조사에서 “1억원은 윤 전 사장에게 준 생활자금”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회장이 숨지기 몇시간 전 <경향신문>과 전화인터뷰에서 한 주장과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홍 지사는 이런 유리한 정황 증거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최대한 튼튼한 방어벽을 쌓아나갈 것이다.

 

박철언 의원은 20여년 전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승용차에 올라타기 전,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새벽이 왔다고 소리치면서 닭의 목은 왜 비트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결백을 조국의 법정은 반드시 밝혀줄 것입니다.” 홍준표 지사는 리스트에 오른 8명 가운데 가장 먼저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홍 지사는 검찰청사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그 성공 여부는 여전히 ‘과거와의 투쟁’이다. 22년 전에는 방패를 뚫는 데 성공한 창이었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창을 막아내야 하는 방패다. 그가 과거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그리고 과거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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