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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노마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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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노마지지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7/12/06 08:24 수정 2017.12.07 09:41
▲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칼럼니스트

노마지지

모든 생령(生靈)은 각자의 쓰임새가 있습니다. 다만 쓰임의 크기와 모양새가 다를 뿐입니다. 내 기준으로만 세상을 재면 오류(誤謬)가 생깁니다. 두루 본다는 건 다양한 관점으로, 때로는 남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뜻입니다. 두루 살피면 어긋남이 적습니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 했습니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는 얘기이지요. 지혜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내 지혜가 부족하면 남의 지혜를 빌리는 것도 지혜입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덕산재(德山齋)>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오랜 세월 토굴(土窟)에서 용맹정진 끝에 한 소식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첫 대화부터 ‘진리가 무어냐?’고 제게 물어 왔습니다. 아이쿠! 사뭇 위압적입니다. 아마 기선을 제압하려는 모양입니다.

깨친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법력(法力)을 자랑하는 법이 없습니다. 순간 저는 납작 엎드렸습니다. 철저히 나를 낮추고 가만히 그 분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 제가 물었지요. “진리를 깨치신 분이 그럼 지금 무얼 하고 지내십니까?” 대답이 없습니다. ‘상구보리(上求菩提)’ 했으면 ‘하화중생(下化衆生)’ 해야 하는 것이 깨달은 분의 책임이고 의무일 것입니다. 요즘은 그 분이 하화중생 하는 법을 저와 함께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인디언들은 넓은 평원 한복판에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원에서 불이 났습니다. 마을을 향해 사방에서 덮쳐오는 거센 불길에 마을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모두에게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큰 원을 그려 그 안에 불을 지르자!” 마을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노인이 말대로 했습니다. 불에 타버린 공간이 어느 정도 나타나자 노인이 외쳤습니다. “모두 그 불탄 자리 위에 올라서시오!” 노인은 한 번 불에 탄 자리는 다시 불이 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마을 사람들을 무사히 구해내었습니다.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말이 있습니다. 늙은 말의 지혜란 뜻이지요.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기나 장점을 지니고 있어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춘추시대 오패(五覇)의 한 사람이었던 제(齊)나라 환공(桓公 : 재위 BC 685~BC 643)때의 일입니다.

어느 해 봄 환공은 명재상 관중(管仲 : BC ?~BC 645)과 대부(大夫) 습붕을 데리고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하러 나섰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그 해 겨울에야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지요. 전군이 진퇴양난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습니다.

"이럴 때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는 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 되어 큰길이 나타났지요. 또 한번은 산길을 행군하다가 식수가 떨어져 전군이 갈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습붕이 말했습니다.

“개미란 원래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엔 산 남쪽 양지 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一寸) 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속 일곱 자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은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나왔습니다.

한비자(韓非子 : BC ?~BC 233)는 그의 저서《한비자》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를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옛날 부처님께서도 “노인을 공경하면 큰 이익이 있느니라. 일찍이 듣지 못한 것을 알게 되고, 좋은 이름이 널리 퍼지며, 지혜로운 사람의 섬김을 받는다.”고 하시며 한 예화를 드셨습니다.

「그 옛날 기로국(棄老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의 법에는 집안에 나이가 많은 노인이 있으면 멀리 갖다 버리는 법이었다. 한 대신은 아버지가 너무 늙었지만, 자식 된 도리로 차마 법대로 할 수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땅을 깊이 파고 은밀한 방을 만들어 아버지를 그 방에 모시기로 했다. 그리고는 때에 맞춰 음식을 드리고 지극히 섬겼다.

그때 천신(天神)이 뱀 두 마리를 가지고 와 왕궁 뜰에 놓아두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사흘 안에 이들의 암수를 가릴 수 있으면 너의 나라가 편하겠지만, 만약 그것을 가려내지 못하면 네 몸과 너의 나라는 모두 멸망하고 말 것이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두려워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이 일에 대해 의논하였다. 그러나 다들 말하기를 ‘저희들은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나라 안에 급히 영을 내렸다. “만일 누가 이 뱀의 암수를 분별해 낼 수 있다면 그에게 후한 상을 주리라.”

대신은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물어 보았다. “그것은 가려내기 아주 쉽다. 부드러운 물건 위에 뱀을 놓아두면 거기서 부시 대는 놈은 수컷이고, 꼼짝 않고 있는 놈은 암컷이니라.” 대신은 이 말을 듣고 왕에게 나아가 아버지가 일러준 대로 말했다. 그 말대로 했더니 과연 암수를 가려낼 수 있었다.

왕은 기뻐하였다. 왕이 그 대신에게 상을 내리려하자, “실은 저의 지혜가 아닙니다. 국법으로는 노인을 갖다버리라 했지만 저희 집에는 늙으신 아버지가 계시온데 자식 된 도리로 차마 내다 버릴 수가 없어 법을 어기면서 은신해 모셔 왔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대답한 것은 모두 저의 아버지의 지혜를 빌린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나라의 법을 고쳐 노인을 버리지 않게 하소서.”

왕은 대신의 말을 듣고 크게 찬탄하면서 그 대신의 아버지를 나라의 스승으로 받들어 모시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날로 나라 안에 영을 내렸다. “오늘부터는 노인을 버리는 일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뿐더러, 부모에게나 스승을 공경하지 않으면 무거운 벌을 내릴 것이다”」

어떻습니까? 노인의 지혜가요? 깨쳤다고 자랑하면 안 됩니다. 우리 ‘노마지지’의 고사(古事)를 새기며 중생에게도 배울 것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깨달은 사람일수록 머리를 숙이고 중생제도(衆生濟度)에 공을 들이면 자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큰 회상(會上)을 이루게 되지 않을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2월 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본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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