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7일 총리에 취임한 지 70일만이다. 사실상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과거 재임 기간이 가장 짧은 총리는 허 정 전 총리로, 1960년 6월15일 취임해 65일 동안 총리를 맡았지만, 허 전 총리는 4·19 혁명 직후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임시 총리라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습니다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으로 믿으며 오늘은 여백을 남기고 떠나고자 합니다."
1980년대 들어 대통령 단임제 실시 이후 가장 짧은 기간 재임한 총리로 기록됐다.
충남도 지사 출신의 이 총리는 '포스트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로 통할 만큼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 총리는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에서 잠시 근무하다 치안 분야로 자리를 옮겨 최연소 경찰서장을 지냈다.
이 총리는 충남지방경찰청장을 거쳐 15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고, 16대 국회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006년에는 3선 의원 대신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소속으로 충남지사에 도전해 당선됐다.
이후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자 지사직을 전격 사퇴해 중앙 정치 무대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야인이 된 이 총리는 2012년 4·11 총선을 통해 재기를 노렸으나, 그 해 1월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종 판정을 받고 꿈을 접어야 했다.
그렇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를 극복하고 2013년 4·24 재·보궐선거에서 무려 77.4%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돼 여의도 정치에 화력하게 복귀했다.
지난 2014년 원내대표 경선 당시 '원조 친박'(원조 친박근혜)계가 아닌 '범박'(범박근혜계)'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투표 없이 원내대표로 추대됐다.
7개월 동안 원내 사령탑으로 재직하며 '세월호 특별법' 합의와 12년만에 예산안 법정시한 내 처리를 이끌어내며 '뚝심'을 과시했다.
당시 이 총리는 이 후보자의 성을 따 '2PM'(Prime Minister·총리)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일찌감치 총리 후보자로 낙점이 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청문회 과정에서 병역 면제 의혹과 언론 외압 의혹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국회 인준을 통과하게 된다.
이후 이 총리는 지난 2월17일 총리에 정식 취임하면서 '충청권 대망론'의 중심에서 일약 차기 대선 주자 가운데 하나로 올라섰다.
이 총리는 특히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전 총리' 이후 최고의 '실세 총리' 또는 '힘 있는 총리'라고 불리며, 국정 운영에 열의를 보였다.
그가 지난 1월23일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정홍원 총리의 후임 총리 후보자로 지명받아 "대통령께 쓴소리하는 총리가 되겠다"고 할 때만 해도, 100일도 채 되지 않아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채 물러날 거라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지명 당시만 해도 박근혜 정부의 '국면 전환용 카드'로 불리며 여야 모두 환영 분위기였다. 이 총리는 '충청의 맹주'로 떠오르는 분위기였다. 청문회 통과도 무난할 것으로 예상됐고, 초기엔 그 또한 선제적으로 40년 전 엑스레이 사진까지 제시하는 등 제꺽제꺽 반론 증거물을 내놓아 '자판기 후보'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나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땅 투기 의혹을 시작으로 부동산 투기, 본인과 아들의 병역 면제, '황제특강'과 교수 특혜채용 의혹 등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김치찌개 식당에서 기자들에게 방송사 패널 선정과 언론사 인사에 개입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이에 대응하는 이 총리의 방식은 다분히 감정적일 때가 많았다. 차남의 병역 면제 의혹에 대해 공개검증을 자진해서 실시하면서, "아직 장가도 안 간 자식의 신체 부위를 공개하면서까지 공직에 가기 위해 비정한 아버지가 됐나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프다"며 눈물을 글썽인 데 대해선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상처투성이로 총리직에 오른 이후, 그는 곧바로 명예회복을 하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자신이 주재하는 회의에 차관과 차장을 대신 참석시킨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강신명 경찰청장을 겨냥해 '출석체크'를 하며 내각 장악 의지를 다졌다. 3월12일 내놓은 '부정부패와의 전면전' 담화는 '관료 총리'가 아닌 '정치인 총리'인 만큼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선언으로 풀이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이 구호가 경남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와 맞물렸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인연이 되돌릴 수 없는 악연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이 총리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돈 받은 증거가 드러나면 목숨까지 내놓겠다"는 폭탄선언까지 내놨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지고 있었다.
검찰 소환을 앞둔 이완구 총리는 이날 곧바로 병원에 입원했다. 이 총리의 측근은 "이 총리가 계속 건강이 안 좋았지만 병원에 못 갔었다"며 "(완치된) 혈액암도 계속 관리해야 하고, 진료도 받기 위해 입원한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