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뉴스프리존] 이현식 기자= 대전·충남지역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대부 우야(牛野) 유영소 목사가 만 94세의 일기로 14일 오전 별세했다.
이날 사단법인 대전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이사장 김병국)는 14일 유영소 목사의 부음과 함께 세상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두 마디 유언을 남겼다고 전했다.
우야 유영소 목사는 지난 1926년 5월 6일 충남 보령 출생으로 한국기독교장로회 대전노회장, 대전충남인권선교협의회장, 대전기독교교회협의회장, 대전YMCA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슬하에 2남 4녀를 뒀다.
유 목사는 평생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들고, 억울하고, 고난당하는 민중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에서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청년시절 경찰로 근무하다 한신대학교에서 목회자 과정을 공부한 유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가 됐다. 1960년대 농어촌교회 부흥에 힘을 쏟았고, 70년대는 국제인권단체인 엠네스티 회원으로서 인권선교 활동을 펼쳤다. 또한 80~90년대는 민중민주선교를 위해 헌신했다.
특히 지난 1980년 3월에는 민주화운동의 불모지인 충남의 심장부 대전에 민중교회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충남대, 한남대, 공주대, 대전대, 배재대, 등 지역 대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을 적극 후원했다. 숙식은 물론 필요한 서적과 집회시위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을 만들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다. 당시 민중교회에서 밥 한 끼 안 먹은 사람은 운동권 출신이 아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또한 군사독재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문익환, 문동환, 함석헌, 이문영, 안병무, 김찬국, 정진동, 이재정 등과 같은 재야인사들을 초청, 시국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무엇보다 유 목사는 배움을 갈망하는 노동자와 청소년들에게 야학을 만들었다.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대학생을 교사로 세워 검정고시에 대거 합격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유 목사와 야학 교사들이 수사기관에 잡혀가고 노동자들도 해산당하는 등의 고통을 겪기도 했다.
당시 많은 청년과 대학생들이 민주화운동을 과정에서 투옥되는 일이 생기면서 부모들이 모이는 장소가 됐다. 유 목사는 이 학생들의 부모들과 민주화운동가족실천협의회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자녀들의 민주화운동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정의를 위한 올바른 행동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기도 했다.
유 목사는 경찰, 안기부, 보안대로 끌려 다니면서 협박과 고문, 수사를 받으면서도 “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뿐이다”며 굴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부인이 병을 얻고, 자녀들이 투옥되거나 학교에서 쫓겨나는 빈곤한 삶을 살았지만 "민중민주화운동은 당연히 짊어져야 할 고난의 십자가였다"는 이야기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아울러 김대중, 노무현 등 민주정권이 탄생한 후에는 소외받는 노인들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해왔다.
故 유영소 목사의 장례는 한국기독교장로회 대전광역노회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식장은 대전 건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201호실이고 발인은 16일 오전 7시 40분. 장지는 충북 괴산 호국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