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그림을 시작하면 몇 번의 붓질에 이미 그림은 나를 리드한다.……멈춤도 그림이 알려준다. 그만해도 되겠다고.”
신민주 작가는 이렇게 그림의 부름에 따라 화면을 채워간다. 이는 창조 행위의 주체가 작가가 아닌 그림이라는 것. 다시말해 작가는 그림의 부름을 받은 존재가 된다. 작품은 찰나에 사건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게 작가를 전도체로 탄생한 작품은 독립적이고 유니크한 개체로 생명력 넘치는 작품이 된다.
" '나'라는 질료와 물감이라는 물성,그리고 캔버스가 맞닥뜨려 만들어 지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미리 재단하는 법이 없이 돌진,돌입만 있을 뿐이다. 뜸드림,계산의 개입 여지가 없다."
그에게 붓질의 멈춤은 자연스레 알게 되는 지점이다. 물흐르듯이 멈춤이 이워지는 시점에서 갈아엎음이 시작된다. 리듬의 주기 같은 것일게다.
작가의 에너지가 고갈된 시점에선 오히려 붓질을 멈출수가 없다. 그렇게 작품이 망처지면 그대로 놔둔다. 다음날 그 위에 다시 붓질을 시작한다. 오류와 상처는 그렇게 치유돼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된다.
마치 문학의 '자동기술법' 내지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 떠올려 진다. 논리적인 사고,시간의 흐름으로 배열된 서사가 아니다. 생각나는 그대로 단어와 문장이 이리저리 배치된다. 사실 인간의 생각은 정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배열이 아니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동적인 이미지들로 이루어진다. 자동기술법과 의식의 흐름 기법은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자동기술법'은 작가가 무의식 중에 떠오르는 그대로 표현하는 기법이고 '의식의 흐름 기법'은 작중 인물 혹은 화자의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법이다. 신 작가의 기법은 자동기술법과 의식의 흐름기법을 융합한 모습이다. 어쩌면 무속에서 무녀가 자신이 모시는 신에 접신되는 모습도 이와 같을 것이다.
삼청동 PKM 갤러리에서 3월 20일까지 열리는 신민주 개인전 ‘活氣,vigor’은 ‘붓질’이라는 근원적 행위를 통해 회화의 본질을 탐구해온 작가의 진면목을 가름해 볼 수 잇는 자리다.. 2018년 ‘추상 본능’전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이번 작품전에서는 작가의 연작 ‘불확정적 여백(Uncertain Emptiness)’ 중 다채로운 색감과 힘 있는 에너지로 채워진 다수의 신작들이 소개된다.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감각과 인식, 수많은 이미지들을 내적으로 체화하고 이를 추상적 화면으로 가시화하는 신민주는 거침없는 붓 터치와 실크스크린 도구인 스퀴지(Squeegee)로 안료를 밀어내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본능적으로 ‘그리기’와 ‘지우기’를 중첩시켜 캔버스 안에 밀도 높고 강한 에너지를 담아낸다. 독창적인 색 조합으로 덮인 아크릴 물감과 겹겹의 층위를 드러내는 스퀴지의 흔적은 내면에 혼재하는 모순된 감정들과 이를 뚫고 나아가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향하고자 하는 원초적 의지를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전시는 그간 작가가 주력으로 보여줬던 어둡고 묵직한 작품부터 화려하고 세련된 색감으로 생기와 힘이 돋보이는 근작까지 망라하여 보여준다.
신민주 작가는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학사 및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일민미술관, 금호미술관, 한원미술관, 관훈갤러리, 갤러리 룩스 등에서 여러 차례 단체전 및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사진=pkm갤러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