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죄송”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재해 청문회에 출석한 대기업 CEO들의 입에서 나온 가장 대표적인 말이다.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포스코·현대중공업 등 최근 2년간 산재가 많이 발생한 건설·택배·제조업 분야 9개 기업 대표를 증인으로 불러 청문회를 열었다.
하지만 이날 청문회를 개최한 국회의원들이나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 대표들은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여 국민들의 마음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산재사고를 줄여 무고한 희생을 줄이겠다는 취지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특히 이번 청문회는 이례적으로 국정감사가 아닌 데도 대기업 대표들을 국회 증인으로 출석시켜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국회의원들의 질타와 호통, 증인들의 사죄가 판 친 속 빈 강정이었다. 국정감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재방송된 격이다.
이날 청문회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됐던 CEO는 지난 2016년부터 44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숨진 최정우 포스코 그룹 대표였다. 최근 5년간 포스코의 포항·광양 제철소 21명, 포스코 건설 23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숨졌다. 특히 숨진 노동자 중 하청 업체 소속 비율이 무려 91%에 달한다.
문제는 국회의원들이 덤핑 수주 경쟁과 얄팍한 이윤 추구, 안전 교육 무관심, 갑을과 같은 잘못된 하청업체 관행 등 산재 발생의 근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최정우 대표의 신병 문제 비꼬기, 사퇴 용의 확인 등 본질과 동떨어진 호통과 질타에 시간을 허비했다. 정치인 특유의 튀는 발언으로 자신을 부각시키는 언론 플레이에 치중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기업 CEO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청문회가 사상 첫 산재 청문회라는 점을 인식했다면 무조건 고개 숙이고 사죄하면서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재발방지 약속을 남발하지 말았어야 했다. 굳이 출석까지 해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산재 재발 방지를 위한 정답은 이미 다 나와 있으며 모두 알고 있다. 사람의 생명이 돈보다 우선시된다는 가치 전도 현상 등을 척결해야 한다. 또한 사람의 생명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라는 생명존중사상을 실천해야 한다. 산업현장에서 이 기본 원칙들이 지켜진다면 산재로 인한 억울한 희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정치인과 기업 CEO들은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산업현장에 있는 답을 애써 국회 청문회에서 호통과 질타, 사죄하면서 찾는 시늉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