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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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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의 의미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21/02/25 01:26 수정 2021.02.25 01:28

요즘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기 위해 정부홍보용 TV광고에 식구가 대화하는 시간이 고작 13분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어제 아침식사를 하는 중에, 느닷없이 집 사람이 자기 또래 사람들이 집에서 남편 식사 세끼 차려주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순간 놀랍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진정 옛날과 같은 가족애를 느끼며 살아가는 식구란 것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주는 단어 ‘식구’가 그리워집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족도 직계 아니면 만나지 못하게 되어 더 절실한 말이지요.

가족은 영어로 ‘패밀리(family)’라고 합니다. 노예를 포함해서 한 집안에서 생활하는 모든 구성원을 의미하는 라틴어 ‘파밀리아(familia)’에서 온 말입니다. 즉, ‘익숙한 사이’라는 의미이지요. 그리고 중국은 일가(一家), 일본은 가족(家族)이란 용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즉, 한 지붕 밑에 모여 사는 무리라는 의미라는 말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식구(食口)라는 말을 주로 사용해 왔습니다. ‘함께 밥 먹는 입’이란 뜻이지요. 그러므로 한국인에게는 가족이란 ‘한솥밥을 먹는 식사공동체’라는 뜻이 강합니다. 그래서 남에게 자기 아내나 자식을 소개 할 때도 ‘우리식구’란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한 집에 살아도 한 상(床)에 밥을 먹지 않거나, 식사를 할 기회가 없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핏줄’이기는 해도 ‘식구’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요즘 한국가정의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은, 가족 간에 식사를 같이 하지 않는 풍조가 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몇 년 전 뉴스에, 고된 이민생활 속에서도 6남매를 모두 예일대와 하버드대에 보내, 미국 최고 엘리트로 키운 전혜성 여사도, 자녀교육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식사는 가족이 함께 했다”며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요즈음, 우리생활을 들여다보면, 실제로 식구가 얼굴 맞대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밥상머리뿐인데, 오늘날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온 식구가 한 밥상에서 같이 식사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출근시간, 자식의 등교시간 다르다보니, 각자 일어나자마자 허둥지둥,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또는 우유 한잔 서서 마시고 나가기 일쑤고, 저녁 귀가시간도 각자 달라 저녁식사를 한 식탁에 하기는커녕, 언제 귀가 했는지 서로 모르고 각자 방에서 잠자기 바쁩니다.

이러한 일상의 연속이니 ‘밥상머리 교육’은 고사하고, 어떤 때는 며칠간 얼굴 못 볼 때도 허다한 실정입니다. 197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이 늦게 귀가하는 식구를 위해, 아랫목이나 장롱의 이불 속에 밥을 묻어 두곤 했습니다. 밥의 온도는 곧 사랑의 온도였지요.

자식이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어머니는 뜨끈한 국과 따뜻한 밥을 챙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전기밥솥이 그 자리에 대신 놓여있고, 라면 등 몸에 좋지 않은 인스턴트 제품이 집집마다 있어 필요할 때면, 밤중에라도 각자 알아서 처리하게끔 배려(?) 되어 있습니다.

요즈음, 밤늦게 들어와 아내에게 밥상 차리라고 했다간 이 시간까지 밥도 못 먹고 어딜 그렇게 돌아다녔느냐고 핀잔 듣기 십상이고, 주방에 라면 있으니 끓어 먹으라고 까지 합니다. 느닷없이 소낙비 쏟아지는 밤, 버스정류장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언제 올 지도 모르는 식구를 기다리는 그 많은 모습을 요사이는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요즈음 주부들의 태반이 나름대로 직장과 할일을 갖고 있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현실이 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심지어 자식이 뭐 좀 해달라는데, 해주지 못했을 때는 ‘고개 숙인 부모’를 향해 자식이 ‘도대체, 해 준 게 뭐 있느냐’고 따지고 들 때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아내와 자식이 가장의 위압적인 언사 때문에 상처받는다고 하지만, 요즈음 가족들이 던지는 무심한 투정 한마디에 가장은 속마음에 피멍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날 아버지는 ‘울고 싶어도 울 곳이 없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버지는 직업형편상 귀가하는 시간이 대체로 늦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이 가장을 기다리다가 먼저 잠자는 경우가 많지요. 어쩌다, 아이들이 깨어 있더라도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정신이 팔려 제방에서 건성으로 인사만 건넵니다.

이렇듯 한 집에 살지만, 잠만 집에서 자는 동거인에 불과해진 오늘날 한국가족의 현실이 서글퍼집니다. 어떻습니까? 정진석 추기경이 최근 “가정은 신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마련된 성소(聖所)이니, 물질의 노예, 정보의 노예가 되지 말고, 가정 안에서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물질이 개벽(開闢)되니 정신도 개벽을 해야 합니다. 가정이 화목해야 사회도 편안해지고, 나라도 부강해 집니다. 우리 덕화만발 가족이 먼저 이 ‘식구의 의미’를 알고 실천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려야 하지 않을 까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2월 2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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