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손상철기자] 지난 5월 취임한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전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방중 첫날 문재인 대통령은 난징(南京) 대학살에 대한 깊은 추모의 뜻을 나타내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갈등으로 얼어붙은 중국인들의 마음을 녹이기 위한 행보에 들어갔다.
한국 쪽에서는 이숙순 재중국한국인회 회장과 김홍기 중국한국상회 부회장 등이, 중국 쪽에서는 쿵쉬안유 외교부 아주담당 부장조리와 추궈홍 주한대사, 판용 예빈사 부국장 등이 문 대통령을 영접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평가받는 노영민 주중대사는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영민 대사가 베이징공항에 영접하러 나오지 않았는데,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모) 행사장에 갔다"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것이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모행사에는 상하이 총영사와 베이징대사관의 공사참사관이 가기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관련 보고를 받은 뒤 "대사가 대통령을 영접하러 공항을 나오는 것도 중요한데 그것보다는 이 나라의 중요한 국가적 행사라고 하니 대사가 직접 참석해서 뜻을 기리는 것이 좋겠다"라고 지시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업무에 실패한 외교관은 용서받아도 의전에 실수한 외교관은 경질된다'는 과거의 관행을 깬 것으로 풀이된다. 대사의 역할을 의전보다는 주재 국가와의 교류에 중점을 둔 조치였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노영민 대사가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영접하러 나오지 않고 난징 대학살 80주년 기념 행사장으로 갔다"고 밝혔다.
▶ 문 대통령도 중국 국빈 방문 첫날 행사에서 난징대학살을 기렸다.
재중 한국인 초청 간담회에서는 "우리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이 겪은 이 고통스러운 사건에 깊은 동질감을 가지고 있다"라며 "저와 한국인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아픔을 간직한 많은 분들께 위로 말씀을 드린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베이징에 도착한 뒤 첫 일정인 재중 한국인 간담회 연설에서 "두 나라는 제국주의에 의한 고난도 함께 겪었고, 함께 항일투쟁을 벌이며 어려운 시기를 함께 헤쳐 왔다"며 양국의 동질감을 부각시켰다. 이어 이날이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모일임을 상기시킨 뒤 "저와 한국인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아픔을 간직한 많은 분들께 위로 말씀을 드린다"고 강조했다.
한편 위정성 정협 주석은 추모사에서 "올해 중일 국교정상화 45주년, 내년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을 맞으며 중국과 일본은 양국 인민의 근본이익에서 출발해 평화, 우호, 협력의 큰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역사를 거울로 삼아 미래로 나아가며 세대 간 우호를 기반으로 인류평화에 공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중 비즈니스포럼 연설에서도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모일을 다시 언급한 뒤 "사람은 누구나 존재 자체가 존엄하다, 사람의 목숨과 존엄함을 어떤 이유로든 짓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인류 보편의 가치"라며 "이제 동북아도 역사를 직시하는 자세 위에서 미래의 문, 협력의 문을 더 활짝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를 성찰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또 "친성혜용(親誠惠容·친밀·성의·호혜·포용) 원칙과 선린우호 이념에 따라 이웃을 동반자로 한 주변외교 방침으로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과 관계를 심화해나갈 것"이라며 일본과 관계 개선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2014년 첫 추모행사에 참석한 시 주석은 추모사에서 "역사의 범죄를 부인하는 것은 범죄를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일본을 정면 비판했었다.
▶ 난징대학살은 지난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중국 국민정부 수도 난징에서 저지른 대규모 학살사건을 말한다. 지난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은 중국 국민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한 뒤 다음해 2월까지 대량학살과 강간, 방화 등을 저질렀다.
중국에서는 '난징대도살(南京大屠殺)', 일본에서는 '난징사건(南京事件)'이라고 부른다. 당시 일본군에게 잔인하게 학살된 중국인 수는 20만~3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지난 1946년에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추산한 난징대학살 피해자 규모는 15만 명 정도였다. 하지만 난징대학살 당시 국제적십자사·세계홍만자회·숭선당 등 8개 구호단체들에서 수습해 매장했다고 보고한 시신의 숫자만도 약 19만8000여 구였다. 강간 피해 여성도 수만 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