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족상락
지금 노년에 들어 재색명리(財色名利)에 취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여간 안타깝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지족상락(知足常樂)이란 말이 있습니다.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로 ‘만족할 줄 알아야 늘 즐겁다’라는 뜻입니다.《도덕경》에는 ‘지족(知足)’에 관한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도덕경》제46장을 보면,「천하에 도(道)가 있어 태평성대일 때에는 병마(兵馬)도 전선에서 물러나 밭에서 거름을 주게 되고, 천하에 도가 없어 전쟁 중일 때에는 임신한 말도 병마가 되어 전쟁터에서 새끼를 낳게 된다.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고, 욕심 부리는 것보다 더 큰 잘못은 없다. 그러므로 만족할 줄 아는 만족감이 항상 만족할 수 있게 한다.(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 常足矣)」
이 ‘지족’과 상대되는 말이 ‘욕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욕심은 과연 어디에서 올까요?《도덕경》제12장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갖가지 빛깔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갖가지 소리가 사람의 귀를 멀게 하며, 갖가지 음식이 사람의 입을 버려 놓는다. 말을 달리며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만들고, 얻기 어려운 귀한 재물은 사람에게 훼방을 놓아 법도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 때문에 성인은 속을 채울 뿐 눈을 위한 겉치레는 하지 않으므로, 물욕(物慾)을 버리고 가장 기본적인 생물학적 욕구(欲求)만 취한다.(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馳騁田獵令人心發狂 難得之貨令人行妨 是以聖人爲腹不爲目, 故去彼取此)
이처럼 욕심은 바로 사람의 오관(五官)에서 오기 때문에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분수를 알고 적당히 만족할 줄 알면, 넘지 말아야 할 선(線)을 넘지 않고 멈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걸 모르고 한 푼이라도 더 긁어모으려고 탐욕을 부리고, 한 자리 차지하려고 발버둥 치며, 나이를 모르고 여색을 탐하는 사람을 보면 어찌 불쌍하게 보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만족할 줄 모르고 날뛰는 것 보다 더 큰 재앙은 없고, 탐욕을 부리는 것 보다 더 큰 허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족한 것을 아는 것에 만족하면 항상 아름다운 인생인 것입니다. 조선 중종 때의 대학자 김굉필(金宏弼)의 제자인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 : 1485~1541)은 벼슬이 황해도관찰사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자리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낙향을 해 정자를 짓고 스스로 ‘팔여거사(八餘居士)’라 부르며 지냈습니다.
녹봉(祿俸)도 없던 그에게 여덟 가지가 넉넉하다는 ‘팔여(八餘)’의 아호를 지은 연유를 친구가 물었습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뜻한 온돌방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기에 ‘팔여’라 하였네. 이 모두가 자연이 주는 넉넉함이 아닌가!”
김정국의 말을 들은 친구는 팔부족(八不足)으로 화답하였습니다.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어도 부족하고, 휘황한 방에 비단 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울긋불긋한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기생과 실컷 놀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매일 맡고도 부족하고,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부족함을 늘 걱정한다네. 이 모두가 인간이 갖는 욕심이 아니던가!”
만족할 줄 알면 항상 즐겁고, 능히 참으면 편안한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노안(老眼)이 오는 것은 책을 많이 읽지 말라는 신호이고, 청력(聽力)이 떨어지는 것은 남의 말을 적게 들으라는 자연의 섭리입니다. 욕심을 내면 반드시 재앙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삶을 영위(營爲)하면 만사가 평안한 것이지요.
오래된 바이올린일수록 소리가 아름답다고 합니다. 따라서 ‘지족상락’할 줄 아는 노년의 인생이 최고의 황금기가 아닐까요? 나이 들어 욕심을 버리면, 여러모로 인생을 즐길 수 있습니다. 생계(生計)를 위해 돈을 벌지 않아도 되고, 더 많은 추억과 경험,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여유(餘裕)가 있는 양반들은 적당한 시기가 되면 벼슬을 고사(固辭)하고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논(論)하고 서로지은 ‘시서화(詩書畵)’를 품평(品評)하며, 가무(歌舞)를 즐겼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열정을 가지면 마음이 늙지 않고, 마음이 늙지 않으면 몸도 건강해 집니다. 보통 나이가 들면 세월이 화살과 같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하는 만큼 시간은 그렇게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빠르게 흘러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노년의 시간은 의외로 유장(悠長)한 물결을 타고 천천히 흘러갑니다.
젊어서 돈 벌고 자식들 키우느라 정신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미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여유가 없었지요. 하지만 노년이 되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도 있고, 개울가에 졸졸 흐르는 물소리, 울창한 숲속에서 새들의 노래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누구나 반드시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활동적이고 충만한 삶을 살면 실제보다 젊게 보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년은 또 하나의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노후를 소홀히 하면 큰 불행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노년은 일찍 죽지 않는 한 누구나 만나는 인생의 소중한 과정입니다. 당당하고 멋진 노년이 되느냐 아니면 지탄(指彈)받고 짐이 되는 인생으로 살 것이냐는 오로지 우리하기 나름입니다.
노년은 새로운 삶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노년은 황혼(黃昏)처럼 사무치고, 곱고 아름답습니다. 저녁놀이 아름다운 것은 곧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지족상락! 명예도 욕심도 미움도 다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저녁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비결(秘訣)이 아닐 런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2월 1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