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강 청평호반 백리 물길에는 질곡의 역사문화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북한강은 수백년 동안 세곡, 토산품, 목재를 실어 나르는 수상교통의 중심지였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금강천이 철원에 와서 금성천과 합류하고, 화천을 지나면서 북한강으로 바뀌게 된다. 춘천에서 소양강과 합류한 후 가평 자라섬을 휘돌아 청평호반 백리길을 흐르고, 양평에서 남한강과 합수하여 한강이 된다.
서울을 거쳐 서해바다로 흘러 나가는 유서 깊은 한강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한강이라고 했다. 수많은 세월 끊임없이 흐르면서 굽이굽이 강줄기마다 사연 깊은 마을이 생기고, 강변마다 나루터가 탄생하고 소멸했다. 춘천-가평의 경계 자라목에서 청평댐에 이르는 백리 물길에는 지금도 곳곳에 나루터의 흔적이 남아있어 찬란했던 조선시대 수상교통문화의 역사를 증명해 주고 있다.
가평 안반지나루에서부터 금대나루, 복장포구, 양진나루, 대승리나루, 그 사이 설악 송산 물미나루, 선촌 어리실, 자잠나루 등이 북한강의 주요 배터였다.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북한강 뱃길이 왕성했으며, 소를 실어나르는 소배, 농사를 짓기 위한 농배가 수시로 왕래했다. 금대나루와 복장포구 중간, 지금은 물에 잠겨 흔적조차 없는 황공탄 나루에는 이른바 똑딱선과 통통배라고 하는 소박한 배가 분주하게 왕래하고 있었다.
일제는 조선을 강점하고 나서 전통적인 북한강 뱃길 상권을 잠식시키고, 수탈을 강화하기 위해 육상교통로 개발 정책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사업이 1914년 인천-서울-춘천-간성으로 이어지는 경춘국도(46호)의 건설이었다. 이어서 1939년에는 경춘선 철도를 건설하였으며, 1943년에는 북한강 최초로 청평댐을 건설함으로서 수운(水運)은 완전히 끊어지고, 북한강 수상교역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새로 태어난 청평호수를 통해서 곤고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뱃길은 계속 이어졌다. 70년대 말까지 육상교통이 닿지 않는 가평 안반나루, 금대나루, 복장포구, 청평 양진나루, 설악 물미나루, 자잠나루 등을 연결하기 위해 여객 및 화물선박이 운항되었다.
아름다운 수상문화가 배어 있는 북한강 곳곳 나루터와 아름다운 풍광은 옛 문헌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다산 정약용은 1820년 춘천을 여행한 후 남긴 ‘천우기행(穿牛紀行)’에 청평 북한강 물길과 나루터에 대해 이렇게 썼다. ‘청평고을은 강을 마주하여 펼쳐졌는데, 짧은 버들 갠 모래사장의 언덕을 안고 돌아가네. 바로 물의 근원 끊어진 곳에 이르니 청산이 갑자기 배 한 척 토해내네.’ 뿐만 아니라 현대 문화유산도 북한강의 역사문화를 장식하고 있다.
음유시인 정태춘은 1985년 ‘북한강에서’ 라는 노래를 통해서 도도하게 흐르는 북한강의 자유의지를 한껏 담아냈다. ‘저 어두운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리를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 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리를 생각하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이 노랫말에는 북한강 강물로 자존의 상처를 씻고자 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담고 있다. 아무리 짓누르고 입을 막아도 얼굴을 한번 후루룩 씻고, 조용히 발을 담그면 새로운 세상이 느껴진다. 그곳이 바로 북한강이기 때문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은 먹먹해진다. 기분이 쌉싸름하게 내려앉은 잿빛 부스스한 날 아침, 금대리 나루터에 주저앉아 어스름 안개에 휩싸인 청평호수를 바라보노라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가슴이 벅차오른다. 힘든 나날들을 되돌아보며 마음껏 소리쳐 볼 준비 하고, 헤드폰 끼고, 강변 벤치에 깊숙이 내려 앉아 음유시인의 ‘떠나가는 배’를 감상해 본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가는 배요, 가는 배요, 그곳이 어드메뇨, 물결너머로 어둠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
낙동강에는 처녀뱃사공이, 소양강에는 소양강 처녀가, 섬진강에는 박목월의 시 나그네가, 대동강에는 을밀대, 두만강 푸른물에, 한강에는 여민가슴에 출렁이는 사랑을 노래하듯이, 북한강에는 이렇게 자존의 불씨를 이어가는 역사문화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다.
북한강에 넘어가고 돌아오는 뱃길은 끊어졌지만, 청평호수에는 신개념 수상문화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연어가 힘찬 역류를 하며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북한강 역사문화를 되살려보자. 거창하게 북한강 수상문화 르네상스라고 해도 좋다. 시대 변화에 따라 문화도 변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지만, 스스로가 아니라 일제에 의해 소멸되었던 북한강 수상교통문화를 되짚어 보는 일은 필연이다.
일제에 핍박당한 질곡의 역사는 저 맑은 북한강물로 깨끗이 씻어내고, 오욕의 강을 건너 새로운 문화를 만들자. 수백년 이어져 내려온 북한강 수상문화를 되살려 흐르게 하자. 새로운 개념의 문화관광 트렌드, 멋들어진 복고문화를 만들어 보자. 역설적이게도 끊어진 북한강 뱃길, 청평호수에 옛 정취가 피어나는 신개념 뉴트로 문화관광이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멀지않은 미래, 인공지능이 장착된 로봇,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등 첨단 서비스를 받으며, 소리 없이 수면을 미끄러지듯 운항하는 스마트 럭셔리 유람선 2층 뱃머리에 걸터앉아 음유시인의 노래를 목청 높여 불러보자. 청평호반 둘레길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겠지만, 거꾸로 뱃전에서 형형색색 그대로 강물에 투영되는 산자락과 계곡들, 사연 깊은 나루터, 이야기 풍성한 마을들을 바라보는 것도 제법 호사스러운 복이 아니겠는가?
북한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천하 명경지수, 청평호수에는 문화가 구름에 달 가듯이 흐르고 있다. 이 고귀한 수상문화의 현장에 서서 육중한 청평댐이 가로막은 북한강 수상교통 요지를 되짚어보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혈맥, 나라 곳간을 채우는 젖줄, 끊임없이 흐르는 북한강줄기 언덕 한편에 서서 잠시 인문학적 사유(思惟)를 한번쯤 곁들여 보는 것도 값진 추억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