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체프린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요? 그 생각을 하다가 문득 가황 나훈아의 노래 <아 테스형!>가사가 떠올라 한 번 읇 조려 봤습니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 형」
어느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칡넝쿨을 거두려고 붙들었는데, 그것이 하필 그늘에서 자고 있던 호랑이 꼬리였습니다.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린 나무꾼은 깜짝 놀라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화가 난 호랑이는 나무를 마구 흔들었습니다. 나무꾼은 놀라서 그만 손을 놓아 나무에서 추락했는데, 떨어진 곳이 하필 호랑이 등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호랑이가 놀라 몸을 흔들었고, 나무꾼은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호랑이는 나무꾼을 떨어뜨리기 위하여 달리기 시작합니다. 나무꾼은 살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호랑이 등을 더 꽉 껴안고 있었지요. 그런데 한 농부가 무더운 여름에 밭에서 일하다가 이 광경을 보고는 불평을 합니다.
“나는 평생 땀 흘려 일하면서 사는데, 어떤 놈은 팔자가 좋아서 빈둥빈둥 놀면서 호랑이 등만 타고 다니는가?” 농부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호랑이 등에 매달려 있는 나무꾼을 부러워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때로 남들을 보면 다 행복해 보이고, 나만 고생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뜨거운 뙤약볕에서 일을 하고, 남들은 호랑이 등을 타고 신선놀음을 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사람 사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나와 똑같은 외로움 속에서 몸부림을 칩니다. 남과 비교하면 다 내 것이 작아 보이는 법입니다. 남의 밥에 콩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이 아닌지요?
남과 비교하면 불행해 집니다. 비교해서 불행하지 말고 내게 있는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인생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생을 희극처럼 살아도 짧은 세월인 것입니다. 세계적 갑부였던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이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을 한탄을 하며 크게 후회 하였지요.
내가 친구가 없는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친구를 얻는 일은 전적으로 내하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친구로 삼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는 ‘오무(五無)를 들었습니다.
무정無情), 무례(無禮), 무식(無識), 무도(無道), 그리고 무능(無能)한 인간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참된 친구란 어떤 사람일까요? 《논어(論語)》에 공자(孔子)님이 제시한 세 가지 기준이 나옵니다. 먼저 유익한 세 친구인 ‘익자삼우(益者三友)’는 정직한 사람, 신의가 있는 사람, 그리고 견문이 많은 사람이지요. 반면 해로운 세 친구인 ‘손자삼우(損者三友)’는 아첨하는 사람, 줏대 없는 사람, 겉으로 친한 척하고 성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찌 ‘익사삼우’만 있겠습니까? 내가 먼저 남에게 ‘손자삼우’보다, ‘익자삼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어디 그런가요? 손해만 입히는 친구를 어쩌다가 만난다 해도 한 번 ‘턱 빠지게 웃고 넘어 가면 인생이 한 층 풍요로 와 질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익자삼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친(切親)으로 사귀었으나 어느 순간 배신으로 말 못할 슬픔을 느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결 같이 나를 사랑하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오직 ‘덕화만발’의 이념을 추구하는 ‘도반(道伴)’과 ‘동지(同志)’뿐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반’이란 함께 불도를 수행하는 벗이기 때문입니다. 도로서 서로 사귀는 동무로 불도(佛道)의 성취를 공동목적으로 하여 수행한다는 데 뜻을 두고 있어 변함이 없고 한 결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이해(利害) 관계를 떠나 영생의 진리ㆍ의리로써 심월상조(心月相照)ㆍ심심상련(心心相連)하는 법 동지. 법 형제이기 때문이지요.
정산(鼎山) 종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옛 성인이 ‘돕는 벗 세 가지가 있나니, 곧고 너그럽고 앎이 많은 벗’이라 하셨는 바, 삼세의 숙연(宿緣)과 윤기(倫氣)로 얽힌 우리 동지들은 세세생생 서로 도울 동지이요 도반이라, 서로 서로 곧고 바르게 깨우치며 너그럽고 알뜰히 인도하여, 되어야 할 것이니라.”
우리 친구를 가려서 믿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인심이 하수상하여 가슴 아픈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실한 도반, 동지를 덕화만발 가족 중에서 구해야 하지 않을 런지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4월 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