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유락
장자(莊子 : BC 369~BC 289?)의 말씀 중에 ‘고중유락(苦中有樂)’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괴로움 속에도 즐거움이 있다는 뜻이지요. 장자는 말로 설명하거나 배울 수 있는 도(道)는 진정한 도가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도는 시작도 끝도 없고 한계나 경계도 없는 것입니다. 인생은 도의 영원한 변형에 따라 흘러갑니다.
이처럼 장자는 도 안에는 좋은 것, 나쁜 것, 선한 것, 악한 것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참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환경, 개인적인 애착, 인습(人習), 세상을 낫게 만들려는 욕망 등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장자의 인품을 보면 여간 괴팍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장자는 개인의 안락함이나 대중의 존경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예측불허의 성인(聖人)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의복은 거칠고 남루했으며 신발은 떨어져나가지 않게 끈으로 발에 묶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비천하거나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친한 친구인 혜시(惠施)가 부인의 상(喪)을 당한 장자를 조문하러 와서 보니, 장자는 돗자리에 앉아 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혜시가 장자에게 평생을 같이 살고 아이까지 낳은 아내의 죽음을 당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자,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죽었을 때 내가 왜 슬프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아내에게는 애당초 생명도 형체도 기(氣)도 없었다. 유(有)와 무(無)의 사이에서 기가 생겨났고, 기가 변형되어 형체가 되었으며, 형체가 다시 생명으로 모양을 바꾸었다. 이제 삶이 변하여 죽음이 되었으니 이는 춘하추동의 4계절이 순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내는 지금 우주 안에 잠들어 있다. 내가 슬퍼하고 운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모른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슬퍼하기를 멈췄다.”
그리고 장자의 임종(臨終)에 즈음하여 제자들이 그의 장례식을 성대히 치르려고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장자는 “나는 천지로 관(棺)을 삼고 일월(日月)로 연벽(連璧)을, 성신(星辰)으로 구슬을 삼으며 만물이 조상객(弔喪客)이니 모든 것이 다 구비되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라고 말하면서 그 의논을 즉시 중단하게 했습니다.
이와 같은 장자의 기괴한 언동은 그의 숙명론(宿命論)에 대한 깨달음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장자에 의하면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 즉 도(道)로 통한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장자의 도관(道觀)은 말로 설명하거나 배울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장자》에 나오는 유명한 ‘나비의 꿈(胡蝶之夢)’이 있습니다. “언젠가 나 장주는 나비가 되어 즐거웠던 꿈을 꾸었다. 나 자신이 매우 즐거웠음을 알았지만, 내가 장주였던 것을 몰랐다. 갑자기 꿈을 깨고 나니 나는 분명히 장주였다. 그가 나비였던 꿈을 꾼 장주였는지 그것이 장주였던 꿈을 꾼 나비였는지 나는 모른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음이 틀림없다. 이것을 일컬어 사물의 변환이라 한다.”
장자는 ‘도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도가 없는 곳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장자야말로 무애자재(無碍自在)의 도를 깨친 위대한 사상가가 아닌가요? 장자가 말합니다. “지극한 즐거움(至樂)을 나는 무위(無爲)를 참된 즐거움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것이 속인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기에 옛말에 ‘극치의 즐거움이란, 육체적인 즐거움이 아닌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극치의 영예란 명예가 없는 것을 영예로 여긴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장자(莊子)는 인간이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여덟 가지 과오(過誤)를 저지르지 않으면 ‘지락(至樂)’에 이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고중유락’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한 번 알아봅니다,
첫째, 주착(做錯)입니다.
자기 할 일이 아닌데 덤비는 것을 주착이라 합니다.
둘째, 망령(妄靈)입니다.
상대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의견을 말하는 것을 ‘망령’이라 합니다.
셋째, 아첨(阿諂)입니다.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말하는 것을 ‘아첨’이라 합니다.
넷째, 푼수(分數)입니다.
시비를 가리지 않고 마구 말을 하는 것을 ‘푼수’라고 합니다.
다섯째, 참소(讒訴)입니다.
남의 단점을 말하기 좋아하는 것을 ‘참소’라고 합니다.
여섯째, 이간(離間)질입니다.
타인의 관계를 갈라놓는 것을 ‘이간질'이라 합니다.
일곱째, 간특(奸慝)입니다.
나쁜 짓을 칭찬하여 사람을 타락시킴을 ‘간특’이라 합니다.
여덟째, 음흉(陰凶)입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비위를 맞춰 상대방의 속셈을 뽑아보는 것이 ‘음흉’이지요.
어떻습니까? 어딜 가도 먹는 나이는 막을 수 없고, 인생의 황혼은 짙어지는 법입니다. 파란만장한 한 평생이었습니다, 그간에 어찌 저라고 실수가 없겠습니까?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이 여덟 가지 과오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고중유락’의 지경에 이르지 않을 런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2월 1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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