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바른) 정치를 위한 비결은 ‘군군 신신 부부 자자’이다.
“임금은 임금 노릇 제대로 해야 하고 신하는 신하 노릇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나는 여기에 ‘검검 언언’을 추가하고 싶다.
검사는 검사 노릇 제대로 해야 하고
기자는 기자 노릇 제대로 해야 한다.
음모론자 김어준을 누가 언론인으로 만들었을까
언론인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김어준은 언론인인가 아닌가. 언론인 국가자격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언론인이라는 타이틀은 누가 어떻게 달아주는가. 어느 언론인 말이 여당의 보선을 김어준이 생태탕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보선에 왜 난데없이 생태탕이 등장했을까? 한국쯤 되는 나라에서는 여야를 떠나 큰 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거짓말을 했다가는 그날로 아웃되어야 마땅하다. 내곡동 땅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고, 오세훈은 거듭 부인했고, 그의 말이 거짓임을 증언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나타났고, 그들이 믿을 만한 말을 아무리 해도 오세훈은 부인만 하고 사퇴하지 않았다. 사퇴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은 바로 오세훈 자신이었다. 땅 경작자, 측량기사, 식당주인까지 잇따라 등장해 증언을 해도 오세훈은 “기억 앞에 겸손” 같은 소리나 해가며 슬쩍 넘어가려했다. 보통 상황이라면 언론들이 달라붙어 후보의 거짓 여부를 밝히는 게 상식이다. 오세훈이 그렇게 버티어도 KBS MBC 외에는 관심을 가지고 취재하고 기사화한 곳은 거의 없었다. 동네 통반장도 아니고 무려 서울시장 후보인데도 말이다. 문제 제기를 아무리 해도 버티고 있으니 “이래도 거짓말할래?” 하고 나온 것이 페라가모고 생태탕이다. 상식이 통하는 상황이라면 생태탕이고 뭐고 나올 일이 없다. 그렇게 한심한 상황까지 가게 만든 것은 오세훈도 아니고, 후보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거의 관심도 갖지 않은 언론들이다. 언론들이 달라붙어서 증언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후보의 과거 행적과 거짓말 여부를 검증하는데, 그게 명확하게 드러나면 과연 버틸 후보가 있기는 할까? 한국 언론은 지금 오세훈은 진실을 이야기했고, 증언자들은 모두 거짓말을 했다고 확신하는 건가? 반대로, 증언자들을 취재해서 그들이 거짓을 말하고 오세훈의 말이 맞다는 것만 밝혔어도 누구한테서라도 생태탕 이야기는 나올 일이 없었다. 처음부터 생태탕이 나온 것도 아니고, 김어준이 처음부터 생태탕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어준으로 하여금 생태탕 이야기를 하게 만든 사람들은 바로 언론인, 당신들이다. 그런데도 김어준이 보선을 생태탕으로 만들었다고? 생태탕 이야기까지 나오게 한 장본인은 물론 오세훈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 김어준을 언론인도 아니고 인플러운서(난 이 개념도 잘 모르겠다. 인플러운서는 뉴스를 이야기하면 안 되나?) 정도로만 여기는 바로 그 잘난 한국 언론과 언론인들이다. 음모론자이자 인플러운서보다 언론인 같지 않은 언론인,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언론인, KBS를 통해 나왔다면, 언론사라면 후속 취재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그런 기본도 하지 않는 언론인, 그런 언론인들이 언론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언론인도 아닌 인플러운서이자 음모론으로 재미를 본 김어준에게 또 나설 여지를 줄 수밖에. KBS도 음모론을 펴서 관심을 안 가졌나, 아니면 그게 기사거리조차 안 되어 보였나. 그걸 언론들이 나서서 취재하고 기사화했더라면, 김어준 같은 음모론자가 나설 자리도 없고 나설 이유도 없다. 증언자들이 다른 곳을 외면하고 왜 김어준의 인터뷰에만 응했을까. 그 이유도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맞다. 김어준이 지금 여당의 야당시절부터 음모론으로 재미도 보고,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데는 그 음모론도 작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다. 김어준이 흠결 많은 음모론자이고, 오판한 것도, 잘못한 것도 많다는 주장. 나는 잘 모르겠지만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 보면. KBS보도 이후 한국 언론이 마치 편을 짠 듯이 침묵하고 있는 사안을 거의 유일하게 이야기한 사람이 김어준이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이 대목에 대해서만큼은 김어준이 다른 언론인들보다 열배 백배는 언론인다웠다고 생각한다. 결국 음모론자 김어준이 나서게 한 사람들은 바로 언론인 당신들이다.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니, 음모론자가 그 자리에 올라오는 거 아님? 질문. 김어준은 오세훈의 거짓말을 증명하려고 생태탕까지 이야기했다. 당신들은 오세훈 박형준이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고 믿는 건가? 그렇지 않다면 왜 보도를 하지 않나? 한국의 언론인들은 거짓말 하는 후보가 서울 부산 시장 후보가 되어도 된다고 여기는 건가? 그런 후보가 당선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는 건가? MB는 지금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나?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 언론이 해야 할 일은, 김어준의 생태탕을 비난하기보다는 당선자들의 거짓말 여부를 제대로 검증하는 거다. ‘음모’가 아니라 ‘증언’이 그만큼 많이 쏟아져나왔으니 하는 얘기다. 음모론자 김어준이 음모를 꾸며 거짓말을 했다면 생태탕 이야기가 거짓임을 명백하게 밝히고 김어준이 다시는 공적인 마이크 앞에 앉지 못하게 하는 것이 당신들에게 주어진 책무다. 그게 아니라면, 시장 당선자들에게 끝까지 책임 추궁을 하는 게 당신들이 월급을 받는 이유고. 선거 끝나고 김어준 따위한테 욕이나 하고 있는 게 당신들 일이 아니라고. *사족. MBC의 유명한 뉴스앵커 백모씨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그의 아들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가 삽시간에 퍼졌다. 시중에 떠돌던 루머를 1면 톱기사로 써서 공식적으로 퍼뜨린 신문이 <스포츠서울>이었다. 백씨는 펄펄 뛰었으나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보도해준 곳은 없었다. 샐럽 관련 루머는 재미있으나 루머를 잠재울 반론은 재미없으니까. 그때 백씨를 만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기사를 쓴 첫번째 ‘언론인’(아니라면 건달)이 바로 <딴지일보>의 김어준이었다. 어느 유명인 하나 죽든 말든, 루머가 퍼져 기정사실화되든 말든, 어떤 곳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직후, 백씨를 인터뷰하려고 만났더니 “한국에 언론이라고는 딴지일보밖에 없는 거 같아요”라고 했다. 지금과 비슷한 상황 아닌가. 소재만 다를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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