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열린 전국 철자 맞히기 대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열세 살 소년이 ‘echolalia [èkouléiliə]’의 철자를 틀리게 얘기했으나 심사위원이 잘못 듣고 맞았다고 하는 바람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심사 위원에게 솔직히 털어놓았고 결국 탈락했다고 합니다.
다음 날, 뉴욕타임스는 이 정직한 아이를 ‘철자대회 영웅’으로 신문에 소개했습니다. 이 아이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더러운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빛나는 양심인가요? 베트남 해방영화제작소 ‘반 레(52)’ 감독이 지난 3월부터 촬영에 들어간 다큐멘터리영화 <원혼의 유언>을 6개월 만에 완성했다며 ‘한국인의 빛나는 양심’이라는 글을 한겨례신문에 실어 요약 정리해 널리 알립니다.
【이 영화 <원혼의 유언>은 의 한국의 <한겨레21>의 구수정 통신원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한국의 젊은 여성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영화 속의 주인공을 사랑한다. 처음 영화기획 차 그를 만나던 순간부터 제작이 끝나고 배포를 기다리는 이 순간까지 그에 대한 내 애달픈 사랑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한국의 한 여학생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양민학살 현장을 누비며, 그 희생자들을 위무(慰撫)하고, 수십 년간 암장되어 있던 역사의 진실을 세상에 공포했다는 사실은, 영화감독인 나를 강렬히 유혹했다. 역사의 진실을 찾아나서는 진지함, 그 지난한 노정(路程) 위의 성실함,
그리고 진실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용기와 인류보편에 대한 공정한 애정… 나는 그것이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 젊은이들의 표상이라고 보았다. 2000년대를 살아갈 한국의 젊은이들이야말로 1970년대부터 줄기차게 이어온 민주화 투쟁, 그리고 80년 광주가 낳은 ‘자식’들 아닌가!
그리고 그 현장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처절한 육성이 영화 전반에 흐른다. 영화는 쓰라린 역사의 편린(片鱗)들을 들추어내지만, 그것은 결코 한 민족의 약점을 들추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젊은이들의 빛나는 양심, 역사를 곧추세우려는 헌신적인 노력, 베트남 희생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인류에 와 닿는 아름다운 애정에 대해 ‘경의(敬意)’를 바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침묵하는 우리 베트남인들에게 각성을 촉구한다. 더 이상 과거의 고통에 갇혀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이 지구촌 곳곳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학살의 고리를 끊어내는 반전평화의 투쟁에 동참할 것을!
올해 베트남 정부가 제작경비를 지원한 영화는 단 세편에 불과하다. 우리 손에 쥐어진 예산은 20분짜리 영화를 만들기에 빠듯한 금액이었다. 나는 경비를 쪼개고 또 쪼갰다. 60년대 전장을 누비던 구식 촬영장비에다 편집기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필름을 자르고 이어 붙어야 할 정도로 퇴물이었지만, 제작팀만은 베트남 최고의 촬영인력들로 구성하였다.
베트남에서 내노라하는 감독들이 기꺼이 내 수하에 들어와 조감독, 촬영감독 등을 맡아주었다. 그것은 <원혼의 유언>에 보내는 베트남 영화인들의 지지와 애정이었다. NG는 용납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영화의 주역을 맡아주었던 <한겨레21>의 구수정 통신원이 촬영 도중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을 때, “아이고, 저 비싼 필름이 날아가는구나” 눈앞이 아찔했을 정도니까.
<원혼의 유언>에는 구수정 통신원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한국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살풀이춤으로 베트남의 억울한 혼과 넋을 달래준 김경란 선생, 위령제 때 취재하는 것도 잊은 채 귀한 눈물을 펑펑 쏟던 황상철 기자, 그 외 1분1초가 아까워 점심까지 거르며 헌신적으로 도와 준 모든 분들, 그들은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다. 아니, 우리 베트남인들 모두의 친구이다.
<원혼의 유언>이라는 최종적인 영화 제목이 결정되기까지 ‘신세기의 불꽃’ ‘기자의 자격’ ‘아름다운 참회’ ‘부고’ 등등 수많은 이름들을 두고 고민했다. 결국 나는 한국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사죄와 과거청산 노력이 베트남 원혼들의 유언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라 보았다.
보통 영화 제목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결정되는데, 이번처럼 수시로 그 제목이 바뀔 정도로 고심해본 적도 없다. 극작가를 제쳐두고 내레이션을 직접 쓴 것도 처음이다. 그건 내가 이 영화에 가지는 편집증적 애착이었다. 그동안 몇 차례의 간이시사회를 통해 <원혼의 유언>을 시청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화 속의 한국인들에게 매료되었다.
일본 스자이 영화 배급회사의 사장인 유타카 고지마는 “감동적인 영화다. 특히 영상이 아름답다”며 찬사를 건넸다. 통역을 맡았던 유학생 아코 아키바는 “영화를 보며 내내 울었다”며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국인들을 향해 연신 “아름다워요”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원혼의 유언> 개봉을 앞두고 해방영화사를 찾는 몇몇 일본영화사와 배급사들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가 일본에서보다는, 한국에서 상영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원혼의 유언>은 한국과 베트남간의 진정한 화해와 우정을 위해 바치는 나의 작은 애정인 까닭이다.】
어떻습니까? 한국인의 빛나는 양심을! 저는 이 영화를 세상에 널리 알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일본 사람들의 사죄를 요구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베트남 국민들에게 한국인의 빛나는 양심을 보여주면 어떨 까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4월 1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