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버려지는 새 생명
생계·주거지원 확대 필요…"아이와 함께 살 길 열어줘야"
자립 위해선 학교·취업시장 차별도 없애야
(서울=연합통신넷, 안데레사기자) 2009년 12월 설치된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에 2010년에는 4명이 버려졌으나 2011년 37명, 2012년 79명에서 2013년 252명, 작년 253명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5월 설치된 군포시 새가나안교회 베이비박스에는 작년에 27명, 올해 4월까지만 13명의 아기가 각각 담겼다.
이중 아이를 맡기고 나서 찾아가는 부모는 전체의 20∼30% 선이다. 나머지 아기들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 보육시설에서 자라거나 입양된다.
3일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와 관악구청 등에 따르면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버려지면 교회가 이를 경찰서에 신고한다.
경찰은 교회의 진술을 받고 아이의 유전자 검사를 한 후 사진을 찍는다. 혹시 모를 범죄 연루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경찰 조사 결과 문제가 없으면 구청은 교회에서 인수인계를 받은 후 아기를 서초구에 있는 서울시립어린이병원으로 데려가 건강검진을 받게 한다. 부모가 쪽지에 따로 적어두지 않으면 신생아 예방접종도 병행된다.
검진 결과 이상이 없으면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로 옮겨진다.
아기가 큰 병에 걸린 것으로 드러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시립어린이병원은 따로 격리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아 큰 비용이 들어가는 개인 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 그런데 보호자격인 베이비박스는 정식 인가를 받은 시설이 아니어서 이에 대한 예산이 보전되지 않는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시설 자체가 사실상 '불법'이기 때문에 편성되는 예산이 없어 병원에 구걸하다시피 치료비를 감면받거나, 가까스로 후원을 받는 식으로 입원시키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병에 걸린 아이들은 이처럼 입원했다가 치료가 끝나고 나면 시 아동복지센터로 옮겨진다.
아기들은 가게 될 보육시설을 기다리며 이곳에서 며칠 머물다가 시설로 가게 된다. 이어 후견인이 지정되면서 출생신고가 되고, 해당 시설장이 입양을 고려하면 입양될 수 있다.
관계자들은 이렇게 아기들이 옮겨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계속 거처를 옮겨다니는 과정에서 심리적, 정서적 불안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주사랑공동체교회 관계자는 "교회에서 사나흘, 아동복지센터에서 이삼일 등 최소 일주일간 아기는 안정할 수 없게 된다"며 "이곳에서 영아 임시보호소를 운영하겠다고 구청에 신청했지만 불법 시설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관할 구청도 고민이 있다.
서울시에 있는 베이비박스가 유명해지면서 전국에서 아이를 버리러 난곡동까지 오는 형국인데, 현행 아동복지법상 서울에서 발견된 유기 아동은 서울시내 보육시설로 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청 관계자는 "유기 아동이 늘어나면서 서울 안에 있는 보육시설은 더 이상 아기를 받을 수 없을 정도로 포화 상태가 됐다"며 "복지부에 서울에서 버려지는 아기더라도 지방 보육시설에 보낼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할 수 있는지 질의한 상태"라고 말했다.
여전히 버려지는 새 생명
"아기 아빠도 없이 임신해 아이를 낳는 여자라고 손가락질당하고, 일하던 편의점에서 쫓겨나기까지 한 상황에서 아이를 혼자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올해 다섯 살 된 딸 진주(가명)와 함께 사는 정수진(34·여)씨는 5년 전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 온다.
당시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낳아 직접 키우려 마음먹었지만, 생계에 대한 압박과 주위의 차가운 시선을 이기지 못해 진주를 입양기관에 보냈다가 바로 데려오며 눈물을 쏟았다.
정씨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같이 살아보려 동사무소를 찾아 도움을 청했지만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아 힘들었다"며 "이후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아이와 함께 살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살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 미혼모의 힘겨운 '홀로서기'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가는 부모 중 상당수는 정씨처럼 아이와 함께 살고 싶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포기한 미혼모나 미혼부다.
이들이 현실적으로 체감하는 가장 높은 벽은 생활고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 권희정 연구원은 "10대나 20대 초반에 출산한 미혼모의 경우 학업을 마치지 못한 경우도 많고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자립하기 전까진 외부의 지원이 필수"라며 "이후에도 홀로서기를 위한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2년 발간한 '한부모 가족의 생활실태와 복지욕구 보고서'를 보면 한부모 가족의 월평균 소득은 93만3천∼98만9천400원, 지출은 101만8천800∼115만5천원으로 '적자 가계부'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 가운데 양육비 비중은 절반에 육박했다.
정부도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미혼모 등에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원 규모를 보면 아동 양육비 월 10만∼15만원, 자립지원촉진수당(만 24세 이하만 해당) 월 10만원, 중·고등학교 자녀 학용품비 연 5만원 등으로 '기저귀 값'을 대기에도 빠듯한 수준이다.
삶의 기반이 되는 주거도 불안정하다.
급한 대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모자가족복지시설 등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작년 말 기준으로 이런 시설은 전국 123곳, 2천536가구에 불과해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마저도 입소 가능 기간은 1∼5년으로 제한돼 있다.
◇ 학교·취업시장서 차별 없애야 '홀로서기' 가능
싱글맘이 학교나 일터에서 받는 차별도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8년 벌인 '청소년 미혼모 교육권 실태조사' 결과 청소년 미혼모의 81%가 공부를 계속할 의지가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주위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 등으로 자퇴를 강요하며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여고생이 임신했다는 이유로 자퇴를 강요한 인천의 한 고등학교의 행위를 인권침해라고 판정하고 학교장에게 여고생의 재입학을 권고해 이 학생은 학교로 돌아가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학교 현장에서는 미혼모라는 이유로 쫓겨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권희정 연구원은 "학습권 보장이라는 측면과 함께 미래에 좋은 일자리를 얻어 튼튼한 생활 기반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라도 미혼모를 학교에서 내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취업 전선'에서도 크고 작은 불이익이 존재한다.
200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미혼모의 32.9%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가장 심하게 느끼는 순간으로 '취업할 때'를 꼽았다.
이웃관계(17.4%)나 가족관계(11.2%), 혹은 결혼할 때(11.2%)보다도 직장을 구할 때 가장 심한 편견과 차별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박영미 대표는 "미혼모 대다수가 아이와 함께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고 당당하게 살길 원하지만, 노동시장 진입부터 차별당하고 있어 쉽게 자립기반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기업과 사업주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