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뉴스프리존]안데레사 기자=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74)이 한국인 최초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지난해 한국 영화 최초로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루지 못한 유일한 성과다.
윤여정은 25일(현지시간)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2년 한국 영화사이래 처음이고 연기상을 받은 최초의 한국 배우이자, '사요나라'(1957)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64년 만에 역대 두 번째로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은 아시아 여성 배우가 됐다.
윤여정은 마리아 바칼로바, 글렌 클로즈, 올리비아 콜맨,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의 마리아 바칼로바,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스, '맹크'의 어맨다 사이프리드,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맨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친 결과다. 수상자 호명은 '미나리'의 제작사인 A24를 설립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직접 나섰다.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삭 정(정이삭) 감독이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고 연출한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미국 남부 아칸소주 농장으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다.
한편, 윤여정은 딸 모니카(한예리) 부부를 돕기 위해 돕기 위해 미국으로 간 한국 할머니 순자 역을 맡아 가슴을 뭉클하게 연기했다.
같은 연배의 여배우들이 외모 등으로 스타덤에 올라 주연을 꿰차고, 나이가 들면 원숙미를 강조하는 과정을 겪었다면, 윤여정은 데뷔 초반부터 강렬한 작품에 도전했고, 나이가 들어서도 동년배 배우들과는 다른 색깔의 연기를 선보였다. 윤여정은 스스로 "나는 배고파서 연기했는데 남들은 극찬하더라"며 '생존형 배우'라고 했지만, 그 선택들은 연기의 스펙트럼을 무한정으로 넓힌 결과를 낳기도 했다. ◇ 모두의 할머니, 전형적이지 않은 연기로 찬사 딸을 위해 먼 길을 나선 순자는 가장 고운 옷을 골라 입고, 고춧가루와 멸치 등 한국 음식 재료와 아픈 손주에게 먹일 한약을 바리바리 싸 들고 미국으로 건너온다. 전형적인 한국 할머니다. 동시에 순자는 고생하는 딸을 보면서 눈물짓고 슬퍼하는 대신 긍정적인 태도로 활기를 불어넣는다. 손주를 사랑하지만, 응석에 쩔쩔매며 끌려다니지도 않는다. 여느 미국 할머니들처럼 쿠키를 구워주는 대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화투를 가르치고, 고약한 말을 서슴없이 던지기도 한다. 순자는 리 아이작 정(한국명 정이삭) 감독이 자신의 할머니를 반영해 만든 인물이지만 정 감독은 윤여정에게 자신의 할머니를 흉내 낼 필요가 없다고 했고, 윤여정도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영화에서 손주 데이비드가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아요"라고 외치는 대사가 윤여정표 순자를 대변한다. 외신들은 영화 속 순자와 70대 한국 배우인 윤여정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포브스는 윤여정의 50여년 연기 경력을 소개하며 "독특한 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오스카 레이스를 점치면서 "윤여정의 역할은 엄청나게 웃기고 약간 가슴 아픈 것 이상"이라며 "영화를 좋아한다면 그녀도 사랑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할리우드리포트 역시 윤여정 인터뷰를 게재하며 "첫 번째 영화 이후 정확히 50년 만에 미국 영화 데뷔를 한 73세(만 나이)의 윤여정은 역동적이고 궁극적으로는 가슴 아픈 할머니 연기했다"고 언급했다. 한국 관객들은 순자가 손자를 "데이빗아"라고 부르고, "어이구, 내 새끼"라며 예뻐하다가도 "이놈의 새끼"라고 꾸짖는 장면에서 향수를 느꼈다. 봉준호 감독은 "선생님이 지금껏 연기한 캐릭터 중에 가장 사랑스럽다", "잊지 못할 캐릭터가 탄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 '화녀'로 파격적인 스크린 데뷔 윤여정의 스크린 데뷔작은 말 그대로 '파격'이었다. 김기영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춘 '화녀'(1971)와 두 번째 작품인 '충녀'(1972)에서 윤여정은 주인집 남자를 유혹하는 가정부, 첩으로 들어간 집에서 극에 달한 히스테리를 부리는 역으로 당시 20대 여배우들과는 다른 행보를 걸었다. 드라마 '장희빈'(1971∼1972)에서도 악녀 연기로 크게 주목받았다. 그의 악역 연기에 몰입한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아 CF 모델에서 하차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시작부터 '욕망에 충실한 여성' 캐릭터로 각인됐다. 결혼과 도미, 이혼 등으로 공백기를 겪은 후 스크린으로 돌아온 그가 쌓아온 필모그래피는 독보적이다.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2003)을 시작으로 젊은 남자를 탐닉하거나 돈 앞에 한없이 냉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범상치 않은 인물을 주로 맡았다. '바람난 가족'에서는 간암 투병 중인 남편을 두고 공개적으로 불륜을 선언하는 시어머니 병한을 연기했다. 솔직하다 못해 뻔뻔한 병한은 그동안 한국 영화 속 절절한 모정을 드러내는 엄마, 할머니와는 거리가 멀다. 이후 '돈의 맛'(2012)에서는 재벌 집안의 탐욕스러운 안주인 금옥으로 분해 돈에 중독된 최상류층의 욕정, 집착을 연기했다. '죽여주는 여자'(2016)에서는 청재킷을 입고 종로 일대에서 가난한 노인들을 상대하는 박카스 할머니를 맡아 우리 사회의 그늘진 현실을 직설적인 화법으로 후벼팠다. 최근에는 작은 작품이라도 미더운 후배의 작품에 기꺼이 출연하거나, 연기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김초희 감독의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에는 하숙집 할머니 역으로 개런티를 받지 않고 출연했고, 앞서 '계춘할망'(2016)에서는 잃어버린 손녀를 찾아 헤매는 할머니를 맡았다. 도회적인 이미지가 소진된 것 같다는 지적에 선택한 작품이었다. ◇ 김수현 작가와 오랜 인연…'윤여정표' 캐릭터 선보여 그러나 윤여정은 스테레오 타입의 역할도 최대한 자신만의 색깔로 소화하면서 늘 원형보다는 캐릭터로 재탄생시킨 편이다. 특히 원로 작가 김수현과 인연을 맺으면서부터 이런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물론 노희경, 인정옥 등 수많은 스타 작가의 마음을 얻은 윤여정이지만 그의 연기 인생에서 김 작가는 절대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김 작가는 윤여정이 미국에서 조영남과의 결혼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녹음기 편지'로 그를 위로했고, 이혼 후에도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등 각별했다. 김 작가는 윤여정에게 카리스마 있고 깐깐하면서도 도회적인 역할들을 선물했다. 이에 윤여정이 김 작가의 페르소나라는 말도 나왔다. 윤여정이 미국에서 돌아와 재기할 수 있게 해준 작품도 김 작가의 '사랑이 뭐길래'(1992)였다. 윤여정은 이 작품에서 '한심애' 역을 맡아 본래 조용했지만, 시부모 밑에서 시동생이 다섯을 넘어가는 대가족 살림을 하며 수다스럽게 변한 모습과 딸들과 갈등하는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목욕탕집 남자들'(1995∼1996)에서는 감수성 풍부한 며느리 노혜영으로 분해 섹스리스와 늦은 나이의 임신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야기들을 소화하면서 영화뿐만 아니라 김 작가의 드라마를 통해 많은 실험과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윤여정은 재기에 성공한 후에도 드라마에서 철없는 어머니('네 멋대로 해라'), 며느리와 열심히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다 고부협정을 체결하는 시어머니('넝쿨째 굴러온 당신'), 말 많고 유쾌하고 대차고 화끈한 할머니('디어 마이 프렌즈'), 하숙집 투숙객들의 따뜻한 대모('두 번은 없다') 등 수없이 많은 역할을 개성 넘치게 소화하며 친숙하지만 뻔하지 않은 한국 할머니 겸 엄마로 각인됐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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