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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생명의 아우성...그 그로테스크를 화폭에 담고 싶..
문화

"꽃은 생명의 아우성...그 그로테스크를 화폭에 담고 싶다"

편완식 기자 wansikv@gmail.com 입력 2021/05/03 10:52 수정 2021.05.04 15:34
동양화의 기운생동 유화로 담아내는 김진숙 작가
''덤불속 개나리도 꽃을 피어내야 존재감 드러나"
4~30일 강남 연우갤러리 초대전
생명성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김진숙 작가

[서울=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어느 봄날에 나는 쿄토의 오래된 매화나무 사이를 걷고 있었다. 거칠고 매마른듯한 고매(古梅)의 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죽은 등걸같은 가지에서 꽃망울이 막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생명의 에너지를 토해내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봐 왔는가,  반문하며 걷고 또 걸었다. 4일부터 30일까지 강남 연우갤러리에서 초대전 을 갖는 김진숙 작가의 이야기다.

작가의 작품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꽃이 아닌 꽃을 피워내는 생명성에 주목하게 됐다. 이전의 꽃이 그냥 꽃이었다면 지금의 꽃은 생명의 에너지가 담긴 꽃이다. 

사실 조형화작업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캔버스와 수많은 날들을 씨름해야 했다.  이제 됐다 싶으면 또 아니었다. 신기루 같이 손에 잡히는듯 했다가  사라졌다. 사막을 헤메는 심정같아 포기도 여러번 생각했다. 그즈음  활짝 핀 개나리가 눈에 들어 왔다. 집 앞 화단에 거짓말처럼 피어난 노란 꽃무더기의 실체를 알아 챈 어느 날 아침, 개나리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희망이라는 꽃말도 마음에 와 닿았다.  생명은 사랑과 희망이 아닌가.

생명력이 강한 개나리꽃은 우리 주변 어디에도 있다. 길가나 울타리에서 방어막이 되어 주기도 한다. 꽃이지면 자잘한 잎이 무성한 이름 모를 관목으로 여름을 나고, 심란하기 그지없는 알 수 없는 덤불로 겨울을 지내다 초봄의 기운이 덮치면 개나리는 맨 먼저 꽃을 피워 제 존재를 온 세상에 힘껏 알린다. 생경한 노랑의 색채가 주변을 물들이면 그제야 우리는 그곳에 있었던 알 수 없던 덤불이 개나리임을 깨닫는다.

눈여겨보아도 잘 알 수 없던 식물이 꽃을 피워 비로서 제 이름(존재)를 알리듯이 오랜 동면에 들어있다 그림을 그리며 나의 이름을 되찾고자 해던 간절했던 지난 시간들의 기억들이 개나리와 동질감을 불러일으켰다. 

생명의 존재감을 극대화시키는 색채의 강렬함과 수 없이 많은 꽃송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큰 과제였다, 군집된 꽃무더기의 어지러움 속에서 나름의 질서를 찾아주고 가장 효과적으로보일 수 있는 형식을 모색해야만 했다.

우선을 질감이 필수임을 깨달았다. 단색으로 마감한 바탕에 색면 추상에 가까운 화면을 만들고 모델링페이스트를 이용해 캔버스 표면에 두툼한 질감을 형성하고 그 위에 켜켜이 물감을 쌓아 얹었다.

바닥을 성형하는 지난한 작업을 감수해야 했다. 물감이 마른 후 또 다음 층을 입히는 몇 번의 반복된 작업은 기다림의 시간을 요한다.

제 이름들을 터드려내는 꽃들의 생명성이 비로서 화폭에 얼굴을 내밀어 주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쏟아져 나오는 생명의 흐름을 다만 나는 주워담아 엮을 뿐이다.

군집으로 피어난 개나리 무더기에서 모티브를 찾았으나 시선은 바람결을 타고 흐르는 수양버들이나 봄빛에 흐드러지는 벚꽃의 군무, 때로는 오래 묵어 긴 가지가 출렁대는 은행나무로 옮겨 갔다.

길게 늘어져 흔들리는게 좋았다.  생명의 아우성을 보는듯했다.  빛에 따라 출렁이는 모습은 바로 생명의 깃발이다. 나는 다만 회폭에  빛이 그리는 드로잉을 담아낼 뿐이다.

눈으로 들어 온 자연계의 한 장면을 재현한다는 것은 단지 외형의 닮은 꼴 묘사만으로는 실현하기 힘들었다. 오감으로 체득했던 장면과 감정을 보는 이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하는 바람으로 추상과 구상, 이미지와 물질이 공존하는 그림을 만들었다. 전통적인 구상화로서는 표현하기 힘든 내 자신 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에서다.

김진숙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뭐라할 수 없는 묘한 감흥이 일렁인다. 왠지 그로테스크하기도 하다. 그로테스크는 15세기 이탈리아 고대 로마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물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시작하여 초기에는 기괴한 것,뒤틀린 것, 이질적인 것의 조합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20세기에 들어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기존 질서의 전복을 시도하기 위한 미학적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았다. 인간 심리의 복잡성과 다양함을 드러내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무너뜨려 보편적 인식을 확장해 주고 있다. 시각에서 오감으로의 확장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는 자신의 기존의 아우라를 깨고 자신만의 꽃을 피워내려 한다. 동양화의 기운생동을 서양화의 질감에 심어놓고 있는 모습이다.  미술계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다.  

어김없이 또 봄이다.  올해도  개나리 노란빛이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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