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나의 일상은 나의 거울이란 말이 있다. 소소한 일상이 쌓여서 결국 나를 이루기 때문이다. 빅데이터시대 나의 일상의 데이터들은 바로 나를 말해주는 요소가 된다. 황주리 작가는 꽃 등 식물의 풍성한 잎사귀 위에 일상의 모습을 얹어 놓고 있다. 일상의 모습이 무성한 잎 같은 나를 만들어 가는 원천임을 형상화하고 있는 듯하다.
부처님오신날인 19일부터 오는 6월 8일까지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리는 ‘그대 안의 붓다’전이 열린다. '그대 안의 붓다'전은 일상과 함께 하는 삼라만상도 결국은 ‘나’라는 것을 말해주는 전시다. 작가가 10여년간 틈틈이 그려온 그림들이다. 캔버스는 물론 돌과 접시, 쟁반, 시계, 세상의 모든 사물들 위에 붓다를 그려 넣었다. 그중에는 오래전 어머니가 딸의 혼수품이라 사두고는 쓰지도 않고 모셔둔 귀한 접시들부터 뉴욕 체류 시절 사둔 각 나라의 값싸지만 오래된 쟁반들도 있다. 붓다는 결국 그의 마음이자 그이다.
다양한 사물들 위에 그린 다양한 붓다의 형상들은 사물에 깃든 나의 마음이라 할 것이다.
세상의 사물들 중에는 귀하고 값비싼 것들도, 흔하디흔하고 값 싼 것들도 세월이 많이 흐르면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한정판으로 남아 골동품으로 낡아간다.
사람은 가도 그 사물들은 사라지지 않고 질기게 살아남는다.
사물의 쓸모를 변환시켜 마음을 불어넣는 ‘그대 안의 붓다’를 작업해온 세월은 내게 작가로서 더 유명세를 타거나 미술시장에서 비싼 값을 자랑하는 작가가 되려는 일체의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 내게 마음을 쉬는 자유를 선물한 귀한 시간들이었다
그는 그렇다고 특정 종교의 신자는 아니다. 일상의, 삶의 철학으로서 다양한 종교를 바라 볼 뿐이다.
일찍이 프로이드는 ‘붓다는 마음을 발견한 최초의 심리학자’라고 말했다.
사실 내가 붓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굳이 종교적인 이유에서는 아니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이별했을 때 마다 슬픔에 지친 내 마음을 어루만져준 건 즐겨 읽고 듣던 선지식의 법문들이었다.
어쩌면 나는 무신론적 성향이 강한 사람 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불교는 내게 종교라기보다는 내 삶에 가장 영향을 미친 생철학이다.
특히 그는 베트남 출신 승려로 세계 4대 생불로 추앙받는 틱낫한 스님의 말씀을 좋아한다. 틱낫한 스님은 "불교가 부처님만을 경배해야한다고 오해하는 분이 계십니다. 불교는 요가처럼 실천입니다. 기독교인이면서 불교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신부님은 프랑스의 절에 살고 계십니다. 그분은 제게 불교가 자신을 더 좋은 기독교인으로 만들어준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좋아합니다"라고 했다.
황 작가는 살면서 수많은 불상들을 보았지만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08년 교육방송에서 방영하는‘세계테마 기행’의 진행자로 스리랑카를 다녀온 뒤부터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불상들을 보면서도 그의 작업과 무슨 연관이 있을지 생각조차 못했다. 아프리카 원시미술이 20세기 서구 현대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피카소도 모딜리아니도 자코메티도 위대한 아프리카 미술과 세상의 원시미술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이름 없는 선사시대 예술가들은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지 않았다. 그 예술품들은 모두 신에게 받친 겸허하고 절실한 제물이며, 예술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생겨난 이후 모든 예술품이 상업화되면서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작가의 허락 없이 어떤 작품이미지도 사용할 수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황 작가는 종종 마음의 저작권에 대해 생각한다. 미술작품에 작가의 이름을 남기기 시작한 건 언제 부터였을까?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부터 세상의 수많은 익명의 걸작들을 생각한다. 예술가로 불리기 이전의 익명의 예술가들에게 그는 늘 마음의 큰 빚을 진 기분이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가면 ‘앙코르 국립 박물관’내에 천개의 불상을 모신 방이 있다.
사진을 찍는 것도 금지되어있고 변변한 책자도 없어서, 너무나 아쉬운 마음으로 눈과 마음에만 담고 돌아왔다.
그곳에 모셔진 천 불상들의 얼굴은 옛날 옛적 그 지역에 살았던 농민들의 얼굴을 그대로 조각한 것이라 한다.
그 온화하고 인간적인 얼굴들에 깊은 감동을 받은 이후, 나는 내 시각으로 바라본 천 분의 현대적 불상들을 그리는 중이다.
어쩌면 모든 사람의 단 하나 뿐인 삶은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다.
그는 앙코르 박물관에서 만난 천 불상들의 각기 다른 얼굴들을 마음속에 품고 돌아왔다. 세계의 유수한 박물관에서 본 어떤 유명한 작품들 보다 가슴 저미는 감동을 받았다.
동양의 불상은 동양의 유일무이한 보물이다.
각 나라의 불상들을 새로 발견하며 불상의 형상을 재해석한 ‘모던 붓다’를 그리고 싶은 열망을 지니게 되었다.
아프리카 미술에 심취해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한 피카소나 모딜리아니처럼, 나는 태국으로 라오스로 미얀마로 수많은 불상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 이후 내가 뒤늦게 만나 깊이 매료된 불상들은 바로 한국의 ‘미륵반가사유상’이다.
세상을 뺑 돌아 비로소 내 집을 찾듯, 나는 우리의 반가사유상을 내 마음의 언어로 변주한다.
그리다보니 내가 그린 붓다의 얼굴은 바로 내 얼굴이다.
앙코르 박물관의 천 불상들이 그 동네 농부들의 얼굴이듯 내가 그린 모던 붓다들은 바로 나 자신의 자화상, 우리 모두의 자화상, ‘그대 안의 붓다’들이다.
이 팬데믹 시대에 우리 모두의 마음이 나를 향한 연민에서 타인을 향한 연민의 마음으로 열려가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위로의 축제를 꿈꾼다.
황주리 작가는 평단과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화가인 동시에 산문가이며 소설가이기도 하다. 유려한 문체로 ‘날씨가 너무 좋아요’, ‘산책주의자의 사생활’등의 산문집과 그림 소설 ‘한번 단 한번 단 한사람을 위하여‘ 등을 펴냈다. 기발한 상상력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한 그의 글과 그림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리들 삶의 순간들에 관한 고독한 일기인 동시에 다정한 편지이다. 동시에 촘촘하게 짜인 우리들 마음의 풍경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