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뉴스프리존]이미애 기자=경남 김해시 진영읍에서 수십 년 째 고철업체를 운영해 온 박학재 씨. 지난 12일 김해세무소로부터 세무조사 결과 통지서를 받았다. 그런데 자신의 고철업체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자신 명의의 부동산 매매와 관련해 세무조사를 스스로 요청한 결과 통지문이다.
자신이 자신 명의의 부동산을 팔고 세무서에 스스로 세무조사를 요청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세무조사 요청 배경에는 기막힌 개인사와 함께 행정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부동산 ‘명의신탁’으로 수십억 양도세 떠안은 ‘형님의 눈물’
박 씨가 그 동안 진행해 온 재판의 판결문과 감사원에 대한 심사청구 결과, 그리고 세무서에 보낸 호소문을 종합하면 사건의 발단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어느 날. 박 씨는 김해세무서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통지서를 받았다. 2011년 귀속 양도소득세 미납액 3억9900만 원에 가산세를 포함해 총 4억766만 원을 납부하라는 독촉장이었다.
자신은 그만한 세금을 납부할 만한 재산도 없었고, 특히 부동산을 매매한 적도 없는데 거액의 양도세가 부과되고 미납된 상태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박 씨의 주장이다. 즉시 세무서로 달려가 사실관계를 확인한 박 씨에게는 그날부터가 ‘지옥’이었다.
<뉴스프리존>이 확인해 본 사실관계는 이랬다. 박학재 씨에게는 여러 개의 고철업체를 소유할 정도로 성공한 친동생 A씨가 있다. 박 씨가 동종업계 사업을 권유했고, 필요한 부동산까지 사준 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거기에 사업에 필요하다고 해서 동생 회사에 자신의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은 물론 통장까지 맡길 정도로 서로 신뢰하는 형제였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2004년 5월부터 11월 사이 네 차례에 걸쳐 김해시 진영읍에 있는 8필지의 땅이 박 씨 명의가 됐다. 박 씨도 몰랐던 이 땅의 일부인 4필지는 7년이 지난 뒤인 2011년 동생이 대표이사로 있는 B회사에 양도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양도소득세가 미납된 것이었다.
업어주고 도와줬던 친동생은 “내 땅 아니다” 세금납부 거부
당시 동생 A씨의 회사 직원으로 근무했던 정남준 씨를 만나 ‘명의신탁’에 의한 부동산 매매의 전후 사정을 들어봤다. 그는 <뉴스프리존>에 “동생 A씨가 박 씨와 상의 없이 회사에 보관돼 있던 박 씨의 인감을 이용해 부동산을 매입했고, 역시 박 씨 모르게 땅을 팔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부동산 매매대금은 박 씨의 통장으로 입금됐다가 다시 A씨의 회사로 이체됐다. 이 과정에는 A씨의 회사 직원으로 근무하던 정남준 씨가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박 씨는 동생을 찾아가 “나는 알지도 못하는 땅이었고 내가 사거나 판 땅이 아니고 실소유자는 동생이니 동생이 양도소득세를 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생 A씨는 “그게 왜 내 땅이냐. 형님 이름으로 땅을 사고 판 것이니 형님이 내는 것이 맞다”며 거부했다.
수차례의 설득 과정에 박 씨는 동생 A씨로부터 온갖 폭언과 함께 폭행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사건은 박 씨가 창원지방법원에 과징금부과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하면서 본격화됐지만, 대법원까지 이어진 기나긴 재판 끝에 박 씨가 패소했다. 서류상 소유자가 엄연히 박 씨이고, 박 씨의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이 첨부된 매매계약서를 토대로 법원은 동생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관련 직원 구속됐던 김해세무서 “동생이 실소유자” 판단 번복
그런데 다시 변수가 생겼다. 부동산 매매대금이라고는 손에 쥐어본 적이 없는 박 씨가 결국 2017년 1월 감사원에 김해세무서의 양도소득세 부과 처분에 관한 심사를 청구했고, 그해 12월 감사원은 국세청장에게 시정조치를 요구하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국세청 지시를 받은 김해세무서는 박 씨 명의의 땅을 매입한 동생 A씨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 지난 12일 일부 부동산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A씨가 납부하라고 통지한 것이다.
명의신탁에 의한 부동산 매매로 형제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됐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동생 A씨와 세무서 직원이 구속되는가하면, 국세청 지시에 의한 이번 세무조사 결과 역시 ‘선택적 세무조사’라는 것이 박 씨의 주장이다.
박학재 씨는 “자신의 부동산 매매와 관련해 세무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느냐”면서 “세무서가 자신들의 잘못을 덮거나 축소시키기 위해 당초 요청한 4필지 전체가 아니라 1필지에 대해서만 세무조사를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박 씨는 특히 “부동산 매매 대금이 모두 통장으로 오갔으니 자금 흐름만 파악해도 부동산 실소유자가 누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세무서에서 왜 기본적인 조사조차 하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세무당국의 철저한 보완조사를 거듭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