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그림 하나가 벽에 걸리면 창문이 돼 준다. 아련한 창밖풍경은 우리를 무한의 공간으로 데려다 줄것만 같다. 화병은 그곳으로 길을 안내하는 표식판이다. 그림을 마주하고 있으면 명상에 빠져들게 된다. 존재의 심화에 들게 만드는 울림이다. 존재의 전환,의식의 각성이라 할 수 있다. 한 편의 시에서 얻은 감동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이치라 하겠다. 열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반미령 작가의 얘기다.
6월 7일까지 인사동 갤러리가이아에서 반미령 초대전 'Encounter, 신세계를 꿈꾸며'가 열린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작품과 안팎의 공간이 하나되는 작품을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자리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작품은 조선시대 대표 화가 안견과 정선의 작품에 창(문)을 만들어 오늘로 불러내고 있다. 작가가 4~5년 전 전시회에서 만났던 황홀한 경험이 계기가 됐다. 안견의 걸작 ‘몽유도원도’와 정선의 ‘금강내산’에 과거로 향하는 창을 낸 작품 ‘Encounter-안견과 만나다’ ‘Encounter-정홀선과 만나다’를 내놓았다. 작가는 수백년 전의 화가지만 마치 오늘 바로 옆에 있는 대선배 화가를 만난 듯 기뻤다. 몽유도원도와 금강내산을 각각 화폭에 아크릴화로 원본에 가깝게 그린 후, 생명를 상징하는 복숭화 나무와 복숭화, 또 영원성을 상징하는 푸른 하늘과 바다가 보이는 창과 아치형 출구, 과거의 흔적을 담은 벽 등을 그림으로써 과거와 현재 뿐 아니라 미래가 만나는 화폭을 형상화 하고 있다. 초현실주의 화풍의 면모가 보이는 이유다.
작가는 벽이 만든 공간에 창(문)을 만들어 현실공간 너머를 환기시키더니 최근작품에선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 현실공간과 그 너머 밖의 공간을 변증법적으로 하나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작가에게 화폭은 면벽수행하는 스님의 토굴같은 것다. 갇혀진 화폭과 토굴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그 밖’을 보는 창을 얻게 된다. 안과 밖에 하나되는 순간이다. 작가는 수없는 붓질에서 화폭에 하나의 창을 만들었고, 수행자는 깨달음의 창을 얻는 것이다.
최근작 빛으로 가득한 공간은 창(문)의 윤곽마저 희미하다. 경계가 무화된 무한한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의 소리,무한으로의 내밀한 부름이라 하겠다. 자신을 마주하는 본질적 세계의 형상화다. 밀로슈의 ‘사랑입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내 마음속에는 우주의 은혜로운 노랫소리가 터져나왔다. 저 모든 성좌들이 네 거야, 그것들은 네 안에 있단 말이야.....무너지라,사랑없는 경계들이여! 나타나라,진짜 먼 곳이여!”
반미령 작가는 홍익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동경예술대학 대학원에서 유화를 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