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뉴스프리존]이미애 기자=친동생에게 명의를 빌려줬다가 거액의 '새금폭탄'을 맞아 파산 위기에 처한 김해시의 한 고철업체 대표 박학재 씨는 요즘 행정소송 때문에 바쁘다. 김해세무서가 양도소득세 7억5000만 원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며 박 씨에게 부과한 양도소득세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이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땅이 아니라 명의신탁이었다는 박학재 씨의 탈세 제보, 그리고 탈세를 위한 '부동산 다운계약서' 작성, 탈세 제보자에 대한 거액의 추가 세금징구 등 얼키고 섥히면서 실타래처럼 복잡해진 '진실게임'의 한 단면이 있었다.
탈세 제보 뒤 날아온 '청천벽력'
박 씨는 자신이 밟아보지도 못했던 땅, 매매대금이라고는 만져보지도 못했던 땅, 감사원이나 국민권익위는 물론 별건 재판에서도 실소유주는 박 씨의 동생 A씨로 판단한 부동산의 양도소득세 등 5억9000만 원을 자신이 납부해야 했다. 당초 4억700만 원에서 가산세가 더해진 것이다.
고철업체를 운영하는 박 씨는 회사마저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회사를 살리기 위해 우선 자신이 납부한 뒤 동생 A씨에게 소송을 해서라도 돌려받겠다며 부랴부랴 자신의 땅을 팔아 5억9000만 원을 납부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박 씨는 자신이 실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땅을 실제로 매매한 동생이 부동산 매입자들과 결탁해 실거래 금액이 아닌 매매계약서를 작성해 탈세했다는 제보까지 해야 했다. 자신의 땅이라면 왜 탈세 제보를 하느냐, 자신의 땅이 아니기 때문에 탈세제보를 했다는 것이 박 씨의 설명이다.
그런데 또 다시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김해세무서가 매매대금을 낮추는 방법으로 세금을 탈루한 것이 맞다며 박 씨에게 이미 납부한 세금에 7억5000만원을 더해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고 통보한 것이다.
회사를 살리려는 마음으로 부득이하게 땅을 팔아 자신이 '대신' 세금을 납부한 박학재 씨. 탈세를 제보한 뒤 이뤄진 7억5000만 원의 추가 징구금을 합치면 박 씨에게 부과된 세금은 총 15억4000만 원이 된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 그 이면에는...
이처럼 '부동산 명의신탁'으로 인한 김해시와 김해세무서의 양도소득세 및 지방세 부과와 과징금 추징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면서 7년째 송사로 이어지고 있다. 논란의 이면에는 동생과 세무공무원의 결탁, 그리고 법조계의 오랜 관행이었던 '전관예우'도 있었다는 것이 박학재 씨의 주장이다.
박 씨가 김해시장을 상대로 창원지방법원에 처음 제기한 과징금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는 법원이 박학재 씨의 손을 들어줬다. 실소유자가 동생 A씨로 판단했고, 따라서 박 씨에게 부과된 과징금 부과는 잘못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A씨가 부산고등법원에 제기한 항소심에서는 결과가 뒤집어졌다. 왜 부산고등법원은 다른 판단을 했을까. 여기에는 '전관예우'로 볼 수 있는 정황이 있다는 것이 박 씨의 주장이다.
당시 피고 측 변호인은 부산고등법원의 부장판사 출신으로, 법복을 벗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첫 재판이 바로 박 씨가 제기한 과징금부과 처분 취소 소송이었다고 한다. 박 씨가 "창원지방법원의 판결을 부산고등법원이 뒤집은 데는 전관예우가 작용됐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박 씨의 동생 A씨가 세무서 직원에게 뇌물을 주고 세무조사가 중단된 데 대해 수사사 이뤄지고, 재판 결과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돼 두 사람이 구속된 것도 이 때 쯤이다.
그 이후 김해시와 김해세무서의 양도소득세, 지방세, 과징금 징수가 본격화되고, 박 씨의 외로운 '전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스모킹건' 있었지만...부동산 실소유자 인증하는 '각서'
그런데 26일 오후. <뉴스프리존>에 의미있는 문서 한 장이 들어왔다. 자신은 실소유자가 아니라며 각종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는 박학재 씨의 친동생 A씨가 작성한 '각서'다.
2013년 동생 A씨가 형 박학재 씨에게 써준 각서 내용은 문제의 부동산 매매로 인해 발생하는 양도소득세 등 모든 비용을 각서인인 A씨가 부담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당시는 박 씨가 동생을 찾아가 "땅 주인이 세금 내는 것이 마땅한데 왜 나한테 내라고 하느냐"며 형제지간의 다툼이 잦았던 시기다.
당시 박 씨는 동생에게 "나는 땅을 산줄도 몰랐고 판줄도 몰랐다. 땅을 사려고 돈을 지불한 적도 없고 땅을 팔아 만져본 돈도 없다"며 "실제로 땅을 사고 판 동생이 세금을 다 내야되는 것 아니냐"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A씨가 결국 각서를 써줬고, 이 각서는 각종 재판에 증거물로도 제출됐다. 이른바 '빼박'이라고도 할 수 있고 '스모킹건'이라도 할 수 있는 증거물이었지만, 법원의 '증거재판주의'는 먹혀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에 대해 박학재 씨는 "동생이 막강한 돈의 위력으로 세무서 공무원을 매수하고 전관예우가 작용될 수 있는 변호사까지 선임했다고 해서 힘 없고 줄 없고 돈 없는 사람만 억울하게 가산을 탕진하게 만드는 것이 아직도 용인되는 사회냐"고 반문했다.
김해세무서 "법원 판단 기다려 보겠다"
급하게 땅을 팔아 세금을 자신이 '대납'하기까지 했지만, 박 씨의 집은 현재 압류된 상태다. 2금융권에 갚아야 할 돈을 갚으려고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집을 팔려고 해도 김해세무서가 압류한 상태이기 때문에 재산권 행사도 불가능하다.
박 씨에게 부과된 양도소득세 추징금 7억5000만 원은 결국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 소유의 부동산이 아니었다며 김해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양도소득세 과세 처분 취소 청구소송은 내달 2일 창원지방법원에서 마지막 심리가 열릴 예정이다.
이에 대해 김해세무서는 어떤 입장일까? 우선 당시 세무조사 팀장이었던 B씨의 뇌물수수가 밝혀지면서 7년 가까이 곤혹스런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까지 있으니 추징을 취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판단도 있으니 추징을 강행할 수도 없다는 것이 세무서 입장이다.
김해세무서 관계자는 <뉴스프리존>에 "현재 추징금 부과 취소 소송이 진행중인 만큼, 과세시효가 중단돼 있고 공매처분 등도 정지돼 있는 상태"라며 "소송이 끝나면 그로부터 1년까지 과세시효가 인정되고 재판부 판결에 따라 다른 조치가 이뤄지거나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해세무서가 지난 3월 시작한 세무조사 결과를 지난 12일 박학재 씨에게 보낸 결과통지문 내용에 대해서는 적절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세무조사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통보내용은 없이)세무조사를 받은 박학재 동생 A씨의 불복이 예상되고, 불복 결과에 따라 재결정할 방침이라고만 통보한 것은 부적절한 행정처리였다고 인정한다"고 말했다.
다시 시작된 '기나긴 싸움'의 끝은?
친동생을 믿고 맡겼던 인감과 통장으로 이뤄진 부동산 명의신탁, 이 부동산을 매매하면서 발생한 양도소득세와 지방세 납부 의무자가 실소유주 논란과 탈세 논란으로 법정까지 가게 된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우선 김해세무서를 상대로 창원지방법원에 제기한 양도세 과세 처분 취소 소송 결심공판이 내달 2일로 예정돼 있다. 조세정의를 바라는 박 씨 주변인들은 물론 김해세무서도 재판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기에 검찰 수사도 시작된다. 박학재 씨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대통령비서실에 제출한 '양도소득세 탈세 사건 조사 이의신청'이 지난 4월 27일 창원지방검찰청에 배당됐다.
7년이란 긴 시간 동안 자신만의 '외로운 전쟁'을 벌여온 박학재 씨. 그는 "당초의 세무조사가 적법하고 정상적으로 이뤄졌으면 부동산 실소유자가 밝혀지고, 그렇게 되면 자신이 거액의 양도소득세나 지방세를 납부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그는 또 "세무서 직원이 뇌물을 받고 세무조사를 중단한 것이 애꿏은 피해자를 만들어낸 단초가 됐다"는 말로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드러낸 뒤 "사법정의나 조세정의가 아직도 살아있다면, 진실을 가리기 위한 앞으로의 여정이 지난번 처럼 외롭지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