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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가 그린 고구려 그림..
문화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가 그린 고구려 그림

편완식 기자 wansikv@gmail.com 입력 2021/06/03 11:48 수정 2021.06.04 14:26
고분벽화 답사 기반...16~27일 무우수갤러리 개인전
"볼수록 표현주의,추상주의로 다가와....현대미술이라 해도 손색 없어
산수화 다운 양식...전세계 미술사에 전례없는 높은 수준의 회화 유산“
고구려그림의 탄력있는 필선에 매료됐다는 이태호 교수
고구려그림의 탄력있는 필선에 매료됐다는 이태호 교수

[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고구려산수화풍은 산수화 초기형태로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전체로 볼 때도 발전된 형식으로 여겨진다. 평면성에 충실하면서도 앞과 뒤,입체개념을 녹여냈다. 서구에선 17세기 들어서야 네덜란드에서 산수화 개념의 풍경화가 비로서 등장했다"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가 오는 16일부터 27일까지 인사동 무우수갤러리에서 ’고구려를 그리다‘ 개인전을 갖는다. 1998년 8월과 2006년 5월 평양지역 주요 벽화고분을 실견했던 감명을 되살려 본 시도다.

전시에서는 면지에 그린 수묵담채화 35점을 2부로 나누어 보여준다. 이 교수는 강요배 작가와 금강산 답사 때 덕흥리벽화고분, 강서대묘와 중묘를 무덤 안에 들어가 볼 기회를 가졌다. 남북공동 벽화고분 조사작업에도 참여했다.

이번 전시는 2019년 10월 무우수아카데미에서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한 강의와 중국 길림지역 답사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지난 9월 무우수아카데미 이연숙 원장이 운영하는 덕주출판사에서 ’고구려의황홀, 디카에 담다‘라는 책을 냈다. 올해 몇 군데 수정하고 영문 글을 추가해, 재판을 찍게 됐다. 이를 계기로 지난 3년간 쌓인, 고구려 벽화 따라 그리기나 고구려 땅 스케치 작업을 모아 꾸민 전시다.“

고구려 그림의 탄력 넘치는 필력에 끌렸다는 이 교수는 고구려 화가의 기세(氣勢)를 배우는 자세로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털어 놓았다.

 

”나는 석사 논문으로 ‘한국의 고대 산수화’에 대해 썼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산과 나무 그림을 살피며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다. 이번 '고구려를 그리다' 전시를 위해 산과 나무를 따라 그리다 보니, 내 미술사연구 첫 논문을 다시 열어보는 기분이었다. 인물풍속의 배경이거나 장식으로 산수표현이 등장하던 6~7세기 동아시아 미술사에서 고구려가 가장 산수화다운 회화 형식을 완성했다. 수렵도의 산악과 수목 표현에서 진일보한 현무도 좌우의 두 그루 소나무 그림이나 강서대묘의 동서 천정 받침에 각각 등장하는 산수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교수는 디카에 담아 온 고분벽화를 지난해 9월부터 다시 살펴보면서 감흥에 젖어 눈길 가는 대로 그리기 시작했다.

”4~7세기에 집중해 그려진 고구려 고분벽화는 정말 황홀하다. 고분의 캄캄한 내부에 불빛이 들때, 선명한 무덤주인의 생전 생활 장면과 장식들이 그러했다. 붉은색과 초록색, 분홍색, 노랑색, 갈색, 흰색 등이 먹선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표출했다.,여러 신분의 사람들과 갖가지 동물, 신선과 용봉 같은 상상의 세계, 해와 달과 별의 하늘 세계, 연꽃이며 인동초 꽃이며 구름 등의 상서로운 문양들은 활기차다. 특히 후기 사신도나 장식무늬의 이미지들은 세련되고 정치한 회화성을 뽐낸다. 실제로 세계미술사에서 4~7세기에 고구려 만큼 그림다운, 수준 높은 회화 유산을 남긴 지역이나 나라를 찾기 쉽지 않다.“

이 교수는 벽화를 따라 그리며 고구려를 다시 맛보았다.

”고구려의 색채와 선묘를 신바람나게 익혔다. 그릴수록 벽화들이 표현주의로, 추상주의로 다가왔다. 구름무늬나 장식화들은 천오백년 전의 고구려 고분벽화가 곧바로 현대미술로도 손색없지 싶었다. 고구려의 회화가 우리 민족예술 형식의 근원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너무나 현대적인 이미지여서 자랑스러웠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 고구려 화가의 기세를 배우는 기회가 됐다.

”무덤 현장에서 눈에 들었던 채색의 화려함과 더불어, 탄력 넘치는 선묘가 가장 흥겨웠다. 후기 사신도 벽화의 경우는 웅혼한 형상에 섬세한 디테일을 조화시킨 기량이 일품이라 내 솜씨로는 턱없이 부족함으로 다가왔다. 호남리사신총의 현무, 진파리1호분의 주작, 강서중묘의 청룡과 백호를 그려보니 그러했다.“

이 교수는 고구려 후기 벽화의 유려하고 우아한 감수성이 백제 미의식과 연관을 재확인했다.

”나는 일찍부터 고구려 후기 사신도 배치나 연화문 같은 도상이 백제의 영향이었음을 주장했었다. 공주 송산리6호분 사신도나 무녕왕릉 출토 금관 장식과 무덤 내벽을 쌓은 벽돌문양에 그 연원이 있음을 진파리1, 4호분 벽화 문양을 그려보며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사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도상이나 문양은 당시 고구려인들이 생각하던 사후 영생과 관련된 상징물이다. 살아생전의 부귀나 화복, 장수 등 상서로운 길상(吉祥) 도안들과 악귀를 막아달라는 벽사(僻邪)의 수호신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조선 후기 이후 생활 장식 그림인, 이른바 민화(民畵)가 이를 잘 계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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