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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발굴 역사를 한눈에…<서울의 발굴현장> 발간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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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발굴 역사를 한눈에…<서울의 발굴현장> 발간 1961년 이후 2015년까지 10년 단위로 발굴 유적을 정리

김원기 기자 입력 2017/12/26 09:48 수정 2017.12.26 09:54

[뉴스프리존,서울=김원기기자] 서울역사편찬원(원장:김우철)은 그동안 산, 고개, 하천, 성곽, 시장, 길, 능묘, 누정 등 서울의 유형문화를 시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내고향 서울 시리즈를 발간하여 왔다. 이번에 제9권은 <서울의 발굴현장>은 1961년 강동구 명일동의 청동기시대 집터를 처음으로 발굴한 이후 2015년까지 55년 동안의 서울 지역 유적 발굴 이야기를 담았다. 즉 무엇을 발굴하였는지, 왜 발굴하였는지, 발굴한 유적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지를 1961년부터 10년 단위로 살펴보았다.

서울 발굴의 역사는 대도시로서 서울의 형성과 발달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70년대 서울 지역 확대를 위한 강남 개발 과정에서의 백제 고분 발굴, 1980년대 서울올림픽을 대비한 몽촌토성과 조선 궁궐의 발굴과 복원, 1990년대 시민들의 문화의식 향상으로 보존된 풍납토성의 발굴은 서울의 도시발달사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서울 발굴 역사를 10년 단위로 살펴보았다. 이에 1960년대는 ‘순수 발굴의 시대’, 1970년대는 ‘도시화의 시작과 함께’, 1980년대는 ‘복원을 위한 발굴시대’, 1990년대는 ‘구제발굴의 전성시대’, 그리고 2000년 이후는 ‘발굴을 위한 발굴’로 연대별 특성을 규정하고 발굴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각 연대별로 발굴된 유적들을 보면 당시 서울의 도시 발달 방향과 관심 분야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1961년 명일동의 청동기시대 집터 발굴 이후 1960년대 서울 발굴의 큰 특징은 순수 학술발굴의 모습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는 아직까지 서울의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았고, 사업이나 복원을 위한 구제발굴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1968년 암사동 유적이 야구장 건설로 파괴될 상황에 처하자 당시 고고학자들이 대학연합발굴단을 결성하여 유적을 발굴한 사실은 1960년대 발굴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1970년대 발굴은 서울의 도시화, 특히 강남 개발을 위한 발굴 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강남 개발을 통한 서울 확장 과정에서 사업을 위한 발굴이 이루어진 것이다. 발굴보고서의 ‘이 불행스러운 조사작업’이라는 표현은 당시 발굴에 대한 고고학자들의 학문적 고뇌를 읽을 수 있다. 현재의 석촌동 고분군과 방이동 고분군은 이러한 강남 개발 과정에서 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남아 있는 유적들이다.1980년대 발굴의 특징은 강남에서 강북으로 발굴지역이 확대된 것이다. 이는 서울올림픽 개최와 무관하지 않다. 즉 국제적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강북에서는 조선시대 궁궐 복원을 위한 발굴이, 강남에서는 체육시설 조성 과정에서 몽촌토성 복원을 위한 발굴이 이루어진 것이다. 즉 1970년대 ‘개발’을 위한 발굴에서 1980년대는 ‘복원’을 위한 발굴로 그 조사 방향이 전환된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희궁의 원형 복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1990년대 발굴은 풍납토성으로 대표된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서울의 도시 발달은 더욱 탄력을 받아 1990년대에는 곳곳에서 재건축사업이 이루어진다. 풍납동 지역 역시 그러했다. 처음 풍납토성 발굴은 재건축사업을 위한 구제발굴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발굴 이후 한성백제 관련 유적들이 속속들이 확인되었고, 2000년 5월에는 풍납토성 발굴현장을 굴삭기로 파헤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그동안 국민들의 관심 속에 묻혀 있던 풍납토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으며, 이후 학술발굴로 전환되어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성백제의 도성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풍납토성은 1990년대 이후 향상된 시민들의 문화의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적이다.

2000년 이후 서울 지역 발굴의 특징은 이전 시기보다 상대적으로 발굴건수와 내용이 증가하고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풍납토성 훼손 사건으로 인한 국가의 엄격한 규제와 서울시의 ‘4대문안 문화유적 보존방안’ 지침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4대문 안인 종로구와 중구, 서대문구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시전행랑 터, 건물 터, 집터, 우물 등 생활유적이 많이 발견되어 조선시대 서울 이해의 새로운 자료를 제공하였다.

또한 이 책에서는 각 연대별 대표적인 유적들을 살펴보았는데, 1960년대는 암사동 유적, 1970년대는 석촌동 고분군과 방이동 고분군, 1980년대는 조선 궁궐과 몽촌토성, 1990년대는 풍납토성과 아차산 일대 보루들, 2000년 이후는 한양도성을 꼽았다.

전체 분량은 약 540쪽으로 발굴 모습, 발굴 이후 복원된 유적과 유물 등 발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관련 사진 320여 장을 수록하였다. 또한 연대별로 1장의 지도에 발굴 유적 위치를 표시하여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하였으며, 발굴 연도, 발굴기관 등 발굴 관련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부록으로 정리하였다.

김우철 서울역사편찬원장은 “아무쪼록 이 책이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유적들이 어떠한 발굴과정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아울러 서울 시민들이 2천년 서울 역사를 조금 더 이해하고 애정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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