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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천재불용
오피니언

[덕산 칼럼] 천재불용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21/06/09 08:13 수정 2021.06.09 08:15

저의 손주 녀석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원생에서 학생이 되었다고 뽐내는 군요. 원생은 유치원생이고, 학생은 초등생이라나요. 어쨌든 이 할애비는 손주 녀석의 재롱을 보고 싶은데, 영 시간이 없어 할아버지 댁에 올 수가 없답니다.

“무엇이 그리 바쁜데?” “학교 가야지요, 집에 오면 태권도장에 가야지요. 영어교습, 미술교습 등,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참 그렇겠구나? 그럼 언제 노는데?” “놀 시간도 없고요, 나가 놀래도 애들이 있어야지요, 여자 친구 만날 시간도 없어요.” “하하하하하하! 아이구 두(頭)야!”

‘천재불용(天才不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재주가 덕(德)을 이길 수 없어 크게 쓰이지 못한다는 얘기이지요. 요즘 세상이 온갖 재주만이 넘쳐나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요즘 젊은 엄마들이 너 나 할것 없이 자식을 천재로 키우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나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천재가 아니라 덕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엄마들은 왜 모를까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지도자의 위치에서 사회를 이끄는 사람들은 천재가 아니라 덕이 높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천재를 부러워 하지만 천재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덕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머리 좋은 사람으로 키우기 전에 덕을 좋아하고 덕을 즐겨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공자(孔子)는 ‘천재불용’이라 하여 덕 없이 머리만 좋은 사람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공자와 황택(皇澤)의 이야기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공자가 수레를 타고 길을 가는데, 어떤 아이가 흙으로 성을 쌓고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레가 가까이 가도 아이는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얘야. 수레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좀 비켜주겠느냐?” 그런데도 아이는 쭈그리고 앉아 하던 놀이를 계속했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레가 지나가도록 성이 비켜야 합니까? 아니면 수레가 성을 비켜 지나가야 합니까?” 아이의 말에 공자는 똑똑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수레를 돌려 지나가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에게 이름과 나이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이름은 황택이며, 나이는 8살이라 했습니다. 이에 공자는 “한 가지 물어 보아도 되겠느냐?” 그러고는 “바둑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황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주가 바둑을 좋아하면 신하가 한가롭고, 선비가 바둑을 좋아하면 학문을 닦지 않으며, 농사꾼이 바둑을 좋아하면 농사일을 못하니 먹을 것이 풍요하지 못하게 되거늘, 어찌 그런 바둑을 좋아하겠습니까?”

아이의 대답에 놀란 공자는 한 가지 더 물어도 되겠냐고 하고는, “자식을 못 낳는 아비는 누구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허수아비지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연기가 나지 않는 불은 무엇이냐?” “반딧불이 입니다.” 그러면 “고기가 없는 물은 무엇이냐?” “눈물입니다.”

아이의 거침없는 대답에 놀란 공자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아이가 벌떡 일어서며 “제가 한 말씀 여쭤도 되겠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공자가 그렇게 하라고 이르자 아이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주 추운 겨울에 모든 나무의 잎들이 말라 버렸는데 어찌 소나무만 잎이 푸릅니까?”

공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속이 꽉 차서 그럴 것이다.” 그러자 아이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속이 텅 빈 저 대나무는 어찌하여 겨울에도 푸릅니까?” 그러자 공자는 “그런 사소한 것 말고 큰 것을 물어보아라.”하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다시 물었습니다. “하늘에 별이 모두 몇 개 입니까?” “그건 너무 크구나.”

“그럼 땅 위의 사람은 모두 몇 명입니까?” “그것도 너무 크구나.” “그럼 눈 위의 눈썹은 모두 몇 개입니까?” 아이의 질문에 공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공자는 아이가 참 똑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를 가르쳐 제자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아이가 머리는 좋으나 덕(德)이 부족해 궁극에 이르자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 봤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수레에 올라가던 길을 계속했습니다. 실제로 황택의 이름은 그 이후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천재성은 8살에서 끝이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머리로 세상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머리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보다 가슴이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큽니다. 그러므로 머리에 앞서 덕을 쌓고 덕으로 세상을 살 수 있도록 가르치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온갖 거짓과 모순과 악으로 넘쳐나는 것은 지식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덕이 모자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천재교육이 아니라, ‘재주가 덕을 이길 수 없다는 소박한 진리 일 것’입니다. 우리 손주 녀석도 핳애비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래 줄 시간이 비록 없더라도, 제발 덕 있는 사람으로 무럭무럭 자라 주기를 마음 속 깊이 염원해 봅니다.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6월 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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