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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노란손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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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노란손수건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21/06/09 23:15 수정 2021.06.09 23:18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군가 주변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한 경험을 느껴 본 적이 있으셨는지요?

오래 전에 ‘집으로 가는 길(Going home)’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뉴욕에서 플로리다 해변으로 가는 버스에 활달한 세 쌍의 젊은 남녀가 탔습니다. 승객이 모두 타자 버스는 곧 출발했습니다. 세 쌍의 남녀들은 여행의 기분에 취해 한참을 떠들고 웃어 대다가 시간이 지나자 점점 조용해졌습니다.

그들 앞자리에 한 사내가 돌부처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무거운 침묵, 수염이 덥수룩한 표정 없는 얼굴, 젊은이들은 그 사내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누구일까? 배를 타던 선장?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퇴역 군인?’ 일행 중 한 여자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그에게는 깊은 우수의 그림자 같은 것이 느껴졌지요.

“포도주 좀 드시겠어요?” “고맙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그리곤 다시 무거운 침묵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침이 되었습니다. 버스는 휴게소에 섰고 어젯밤 말을 붙였던 여자가 그 사내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는 수줍은 표정을 보이면서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고 젊은 여자는 그의 옆자리에 가 앉았습니다. 얼마 후 사내는 여자의 집요한 관심에 항복했다는 듯,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빙고’였으며, 지난 4년 동안 뉴욕의 교도소에서 징역살이하고 이제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소. 나는 부끄러운 죄를 짓고 오랜 시간 집에 돌아갈 수 없으니 만약 나를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되거나 혼자 사는 그것이 고생된다고 생각되거든 나를 잊어 달라고 했소. 재혼해도 좋다고도 했소. 편지를 안 해도 좋다고 했소. 그 뒤로 아내는 편지하지 않았지요. 3년 반 동안이나…. 석방을 앞두고 아내에게 다시 편지를 썼소.

우리가 살던 마을 어귀에 커다란 참나무 한 그루가 있소. 나는 편지에서 만일 나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그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달아달라고 말했소. 만일 아내가 재혼했거나 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손수건을 달아놓지 마세요. 그러면 나는 그냥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가버릴 거요.“

그의 얼굴이 그렇게 굳어져 있었던 것은 거의 4년간이나 소식이 끊긴 아내가 자기를 받아줄 것인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자는 물론이고 그녀의 일행들도 이제 잠시 뒤에 전개될 광경에 대해 궁금해 하며 가슴을 조이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승객들에게도 전해져 버스 안은 설렘과 긴장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빙고는 흥분한 표정을 보이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굳어진 얼굴에서 깊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그는 이제 곧 눈앞에 나타날 실망의 순간을 대비하며 마음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을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20마일, 15마일, 10마일. 물을 끼얹은 듯 버스 안은 정적이 감 돌았습니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만이 꿈결에서처럼 아스라하게 일정한 리듬으로 고막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승객들은 모두 창가로 몰려가 숨을 죽이고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버스가 마을을 향해 산모퉁이를 돌았습니다. 바로 그때 ‘와~!!!’ 젊은이들의 함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습니다. 버스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 안았습니다.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20개, 30개, 아니 수백 개의 노란 손수건이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남편이 손수건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까봐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참나무를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장식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빙고 한사람뿐, 그는 넋 잃은 사람처럼 자리에 멍하니 앉아 차창 밖의 참나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이윽고 빙고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늙은 전과자는 승객들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버스 앞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인 ‘피트 하밀’이 뉴욕포스트에 게재한 ‘고잉 홈(Going home)’이란 제목의 글을 영화화 것입니다.

이렇게 노란 손수건은 용서와 포용과 사랑의 표현이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용서해 주고, 고달픈 세월을 마다하지 않으며, 남편을 기다려준 아내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낙원이 어디인가요? 낙원은 따로 없습니다. 이제 집집마다 부처가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댁에 살아가시는 부모님과 아내, 남편, 자식들이 다 부처입니다. 그 가족을 부처로 모시고 불공을 드리면 가정이 낙원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불제중(成佛濟衆)의 대원(大願)을 세우고, 일직 심으로 수행하면 누구나 부처의 위(位)에 올라 마침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지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6월 1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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