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를 수사하고 있는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이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 지사 측에서 사건 관련자들을 회유하는 등 증거인멸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홍 지사는 8일 오전 10시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할 예정이다.
[서울= 연합통신넷, 심종완기자] 검찰은 홍 지사가 국회의원이던 시절 비서관을 지낸 강모씨를 7일 재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특히 홍 지사의 측근들이 홍 지사에게 1억원을 줬다고 진술한 윤승모(52)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만나 진술을 바꾸도록 회유한 정황을 정밀하게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홍 지사가 측근들을 시켜 윤 전 부사장의 진술을 바꾸도록 지시한 것으로 확인되면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홍 지사는 소환 하루 전인 7일에는 출근도 하지 않은 채 변호인들과 수사 대책을 논의했다. 검찰도 검사 출신이자 4선(選) 의원을 지낸 정치인을 상대하는 만큼 돈 전달 과정에 대한 전체 구조를 세밀하게 점검했다. 수사팀은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인근의 한 은행 지점에 수사관들을 보내 5만원권의 돈뭉치로 쇼핑백과 비타 500 상자에 각각 1억원과 3000만원을 담아보는 시연(試演)을 해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홍 지사에 대한 조사 결과가 '성완종 리스트 8인' 수사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홍 지사 역시 정치 생명을 건 중요한 일전(一戰)인 만큼 양측 모두 이번 조사에 사활(死活)을 걸고 있다.
그동안 검찰 수사 과정을 보면 1억원 수수 여부는 물론 증인 회유 의혹, 돈의 명목 등 양측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는 형국이다.
검찰은 한장섭(50) 경남기업 재무담당 부사장으로부터 "홍 지사에게 갖다주라고 (당 대표 경선 당시 홍 지사 홍보특보였던) 윤승모씨에게 1억원을 주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계좌 추적을 통해 1억원의 출처도 확인했다. 중간 전달자로 지목된 윤씨를 4회 이상 조사한 검찰은 전달 과정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진술을 받아냈다. 윤씨는 2011년 당시 한나라당 당 대표 경선 때 자신의 아내가 운전하는 차로 국회 의원회관을 찾아가 홍 지사에게 현금 1억원이 든 쇼핑백을 건넸고, 홍 지사의 보좌관이 쇼핑백을 가져갔다고 밝혔다. 하지만 홍 지사는 금품 수수 혐의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당시 홍 지사한테 쇼핑백을 건네받았다는 나경범 보좌관도 윤씨 주장을 부인했다.
로비 배경을 놓고서도 윤씨는 "성 전 회장이 2012년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을 위해 준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지사가 당 대표가 되면 공천권 일부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성 전 회장이 미리 공천 로비에 나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은 육성(肉聲) 인터뷰에서 "공천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 지사도 "그 사람이 나에게 (돈 줄)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사실상 유일한 증인인 윤씨에 대한 홍 지사 측 회유 의혹도 주요 쟁점이다. 홍 지사 측근인 김해수 전 비서관과 엄모씨가 윤씨에게 전화하거나 만나 "홍 지사에게 주지 않은 걸로 해달라"는 취지로 회유 또는 증거인멸에 나섰다는 것이다. 윤씨는 이런 내용을 녹음해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홍 지사는 "측근들이 걱정이 되어서 전화한 것은 맞지만, 회유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반박했다.
한편 경남기업의 워크아웃 특혜 의혹과 관련, 검찰은 이날 금융감독원과 김진수 금감원 부원장보의 집, 신한은행 본점 등을 압수 수색했다. 김진수 당시 국장 등 금감원 간부들은 지난 2013년 1월 경남기업이 세 번째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신한은행 등 채권단에 '대주주(성완종 전 회장)의 입장을 잘 반영하라'고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1억원 뒤에 '0'이 하나 빠진 게 아니냐"고 말했다. 19대 총선 공천권을 쥐게 되는 여당 대표 선거에서 1억여원만 사용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선관위에 신고한 것은 '뻥'이고 1억원은 장난에 가깝다"면서 "1억원은 캠프에서 먹는 밥과 디저트 값도 안되는 액수"라고 말했다.
당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는 후보별로 수십억원을 쓴다는 소문이 '정설'로 통했다. 특히 2011년 전당대회는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했다. 친박계 주류와 친이계 일부가 지지하는 홍준표 후보, 친이 소장파의 원희룡 후보, 일부 친박계와 대구·경북 세력이 미는 유승민 후보 간 박빙 승부였다. 이 때문에 총선 공천을 보장받으려는 국회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 신진 인사의 줄서기가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특히 과거 5만명이었던 선거인단이 20만명으로 대폭 늘었기 때문에 선거비용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중앙당은 후보 기탁금을 기존 8000만원에서 1억2000만원으로 늘리기도 했다.
홍 후보 측의 과열 선거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재오 의원은 당시 홍 후보를 겨냥해 "수백명씩 호텔로 불러 밥 사주고, 술 사주고, 표 부탁하고 하는 것은 부패가 아니냐"고 밝혔다.
1위를 차지한 홍 지사가 신고한 금액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도 적은 편이다. 2위 유승민 후보는 1억4999만원, 3위 나경원 후보는 2억6440만원, 4위 원희룡 후보는 3억1950만원, 5위 남경필 후보는 2억4721만원을 사용했다고 중앙선관위에 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