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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비밀조직" 70대 노인 입에 놀아난 280명..
사회

"대통령 비밀조직" 70대 노인 입에 놀아난 280명

온라인뉴스 기자 입력 2015/05/08 09:41
김기춘 前 비서실장 등 인맥 사칭

사업 미끼로 15년간 120억원 챙겨

미심쩍어하는 모집책에 믿음 주려

국방부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연출

일당 9명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

"우리는 대통령 지시로 만든 비밀조직이다. 대통령의 최측근이 될 수 있는 기회다."

정부 고위급 인사와의 인맥을 사칭해 2001년부터 15년 동안 280명에게 120억원 상당의 취업ㆍ사업 사기행각(본보 4월 14일자 14면(http://www.hankookilbo.com/v/1fde9c2a5bb144309304ab731536d8d5))을 벌인 민모(78)씨는 영민하고 치밀했다. 피해자들은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준 전 국방부 장관 등 이름을 거침없이 거론하며 비밀조직에 취업 시켜주고 국방부 사업권을 따게 해주겠다고 떠드는 70대 노인의 말을 종교처럼 신봉했다.



민씨의 사탕발림은 국방부 감사실에서 근무했던 사촌형과의 인연으로 가능했다. 젊은 시절부터 형을 통해 국방부 체계와 내부인사 동정을 줄줄이 꿰고 있던 그는 어느새 스스로를 거물급 인사로 둔갑시켰다. '민의 제2사령부' '정부재단 통일준비위원재정지원단' 등 있지도 않은 국방부 산하 조직을 내세운 민씨의 현란한 화술에 모집책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는 모집책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기 위해 동선까지 치밀하게 계산했다. 지령을 내리는 접선 장소로는 항상 서울 이태원의 한 호텔을 선택했다. 이 호텔은 국방부 청사와 불과 1㎞ 거리 안에 있다. 회의를 마친 뒤 미심쩍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국방부에 들르겠다"며 고급 승용차를 타고 국방부 앞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하지만 민씨가 한 일이라곤 미행한 모집책이 떠나는 것을 확인하는 동안 입구 위병소에서 군인들과 잡담을 나눈 것뿐이었다.

민씨의 언변에 속아 모집책이 된 사람들도 나중에는 사기임을 깨달았지만 자연스럽게 민씨와 공범이 되었다. 모집책들은 '회장님(민씨)'을 내세워 주변 지인들에게 공무원 취업 혹은 평택 미군기지 이전공사 수주 등 국방부 내 각종 사업권을 알선해 주겠다고 꾀었다. 피해자를 안심시키는 수단으로는 언론보도를 적극 활용했다. 여직원이 관련 기사를 인터넷에서 꼼꼼히 발췌해 모집책에게 전달하면 정부 사업 동향과 인사 이동 등을 조직의 구성ㆍ일정과 연관시켜 현혹하는 식이었다. 가령 올해 2월에는 "청와대 비서실장이 새로 임명되는데 회장님이 안보특보로 가게 되고 전원 청와대로 소집된다. 정부 5개 부처 이사관급 5명으로 대표이사진이 꾸려지고 예산 7,000억원을 배정받는다"며 그럴싸한 시나리오를 짰다. 공무원 취업 유혹에 속아 1년간 2,000여만원을 날린 A(35)씨는 "뉴스로 확인 가능한 얘기만 하는 통에 의심을 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공문서 위조는 뒤따르는 필수 코스였다. '재단법인 국방경영위원회'란 유령단체 명의로 특별채용 임명절차를 안내하는 우편물을 발송했다. 그러나 해당 단체의 주소는 확인 결과 이태원 내 한 도로였다. 사기가 들통날까 두려워 "비밀조직이라 모두 도청 및 위치 추적이 이뤄지고 있다"며 문자 메시지와 우편물은 바로 삭제ㆍ폐기하라고 피해자들을 속였다.

굳건히 형성된 믿음은 마약과도 같았다. 지금까지 민씨는 사기죄로 6년 6개월이나 실형을 살았지만 모집책들은 "일이 틀어져 잠시 교도소에 다녀오겠다"는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일부는 사식과 용돈까지 넣어주며 옥바라지를 했을 정도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 성동경찰서 신이식 악성사기전담팀장은 "민씨는 구속된 다음 조사를 받는 와중에도 피해자한테 전화가 오면 '곧 나간다'며 호언장담했다"며 "뛰어난 임기응변에 연륜이 더해져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민씨 일당 9명은 사기 혐의로 지난달 30일 검찰에 송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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