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현대미술은 고전적 틀에 대한 해체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스레 장르의 융합도 자유롭다. 그림에 공예적 유리구슬을 붙이고, 때론 액자와 그림의 경계도 넘나드는 유충목 작가의 작업이 그렇다.
기존의 예술론은 언제나 의미와 형식, 내부와 외부, 내용과 용기(容器), 기의와 기표 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매달려 왔다. 내부에 불변의 의미(진리)가 있는 것처럼 여겼다. 데리다는 안과 밖, 그 어떤 것도 특권적 가치를 갖고 있지 않음을 천명했다. 가상과 실제의 구분이 없는 매트릭스의 세상에서 그것들의 가치를 만들어주는 것은 경계선(파레르곤)이라고 말한다. 경계선의 사유, 불확정성의 사유가 미학적인 시대다.
플라톤에게서 현실세계는 이데아을 모방한 것이 지나지 않는다. 그 현실세계를 복제한 것이 미술이다. 복제의 복제물인 시뮬라크르(simulacre)인 것이다. 이데아에 가까운 복제일수록 더욱 권위를 인정받는 위계 질서가 존재했다. 원본보다 더 실제적인 복제, 다 나아가 원본없는 복제 시대를 맞으면서 이같은 위계질서도 무용지물이 됐다. 시뮬라크르 미학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30일까지 갤러리 마리에서 전시(기획, 차경림)를 갖는 유충목작가의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 작가는 유리를 다루는 수공예적인 입체 작업에서 본격적으로 평면 회화 작업에로의 작업 변경(Alteration)을 수행해 왔다. 수 년전 부터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을 모티브로 유리물방 평면화작업을 해왔다. 황마 천의 거친 질감 위에 실제 물방울과 가장 흡사한 소재인 유리 물방울을 붙여 영롱함을 극대화 했다. 보는 시각의 방향과 빛에 따라 생동감 있는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물방울이라는 투명한 물질이 우리의 시각에 포착되는 것은 빛과 그림자를 통해서다. 물의 장력과 빛의 굴절의 만남은 보석같은 영롱함을 선사한다.
작가는 이 같은 모습을 채색 그림에 붙여진 유리구슬을 통해 보여주려고 한다. 바로 시뮬라크르 미학이다. 심지어 유리거울틀에 물방울이 뿌려진듯 유리구슬을 붙인 작품도 있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 극사실로 표현된 윤위동과의 콜라보 작품 도 볼 수 있다. 두 작가의 작품세계가 서로 긴밀히 간섭하며 내밀한 교류와 일루전이 생겨난다. 평면 위에 물감으로 표현된 극사실 물방울과 실물 수공 물방울, 두 개의 영역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중심부와 주변부를 오가며 차례로 파레르곤을 형성하고 보는 이를 색다른 환영의 미감에 빠져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