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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한국인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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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한국인의 본성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21/06/22 23:30 수정 2021.06.22 23:32

요즘,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가장 큰 특질이 뭔가?”를 묻는다면 대부분은 “빨리빨리”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라고도 합니다. 밥 먹고, 일하고, 말하는 일상생활 모든 영역이 빠르게 진행되니,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걸음걸이조차 빠릅니다.

그래서 ‘한국인은 천성적으로 급한 성격인 모양’이라고 여기며 지나치곤 합니다. 물론 저 역시 행동이 무척 빨랐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이 나이를 먹고 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어른들은 절대로 뛰지 않았습니다. 급히 걷지도 않았지요.

비가 오더라도 그냥 맞으면 맞았지 피하려고 뛰는 것을 권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한국인의 본성은 ‘빨리 빨리’는 아닌 것이 자명합니다. 아마 한국인의 본성은 <나누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가 해 보았습니다. 장편소설 <대지(大地)>로 193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벅(1892~1973) 여사가 1960년에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녀는 일행과 함께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경주 시골길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한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달구지에는 가벼운 짚단이 조금 실려 있었고, 농부는 자기 지게에 따로 짚단을 지고 있었습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상하게 볼 광경이었습니다. ‘힘들게 지게에 짐을 따로 지고 갈 게 아니라, 달구지에 짐을 싣고 농부도 타고 가면 아주 편할 텐데...’ 통역을 통해 그녀는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왜 소달구지에 짐을 싣지 않고 힘들게 짐을 지고 갑니까?” 그러자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에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저도 일을 했지만, 소도 하루 종일 힘들게 일했으니 짐도 나누어서 지고 가야지요.” 그녀는 농부의 말에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저 장면 하나로 한국에서 보고 싶은 걸 다 보았습니다. 농부가 소의 짐을 거들어주는 모습만으로도 한국의 위대함을 충분히 느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간 뒤, 이 모습을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비록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존귀하게 여겼던 농부처럼 우리는 본디 작은 배려도 잘하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인 사고로 꽉 차 있지는 않은가요?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고 함께 걷는 것.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존귀하게 여겼던 농부의 배려 심을 닮아가는 것. 배려심이 부족한 지금 우리에게 강한 울림을 줍니다.

마음을 자극하는 사랑의 명약은 진심에서 나오는 배려입니다. 이것이 한국인의 본성이고 정(情)이 아닐까요? 한국에서 정은 인간 본성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속성이면서도 인간 행위의 양태(樣態)이기도 하지요. 더 나아가서 그것은 인간 의식의 내용으로써 인간관계의 매듭을 엮는 기능을 다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정은 감정과 거의 동의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은 인간 본성과 관련된 사회윤리적인 것이며, 아울러 심미(審美)적인 것이기도 해서 서정(抒情)과 거의 동의어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의 쓰임새가 다양할 것은 쉽게 예상될 수 있습니다. 인간본성·수양·인품·인간관계 등에 걸쳐 쓰이면서, 자연을 대상으로 삼은 시적(詩的) 체험에까지도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유학(儒學)에서 정은 인심(人心)론 내지 인성(人性)론의 테두리 안에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인심도심도설(人心道心圖說)」에서,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심통성정도설(心統性情圖說)」에서 각기 정을 다루고 있는 이외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심(心)과 의(意)들이 서로 물고 있는 연관의 고리 속에서 정을 말하고 있음은 바로 이 때문인 것입니다.

정산(鼎山) 종사법어 <공도 편 57장>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먼저 자기의 기운을 화하게 한 후에 사람을 널리 교화하는 것이 공부인의 심법이요 지도자의 덕이니, 지도자들은 은악양선(隱惡楊善)을 주로 하여 저 사람이 폭력으로써 대하면 인(仁)으로 용서하고, 저 사람이 교사(巧詐)로써 대하면 진(眞)으로 바루며, 저 사람이 권세와 이해로써 대하면 공의(公義)와 정의(情誼)로 응하여, 능히 천하 창생을 심화(心和) 기화(氣和)로써 두루 교화(敎化)하여야 하나니라.」

그럼 ‘은악양선’은 무슨 뜻일까요? 상대방이 실수로 잘못한 행동은 덮어주고, 선한 행동은 드러내준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실수를 덮어줄 때,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분발하게 하여 다시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는 행위, 그리고 상대방이 잘한 일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드러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렇게 지도자들은 은악양선을 주로 하여 저 사람이 폭력으로써 대하면 인(仁)으로 용서하고, 저 사람이 교사(巧詐)로써 대하면 진(眞)으로 바룹니다. 그리고 저 사람이 권세와 이해로써 대하면 공의(公義)와 정의(情誼)로 응하여, 능히 창생(蒼生)을 심화 기화로써 두루 교화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인의 본성은 결코 ‘빨리 빨리’ 가 아닙니다. 그것은 ‘배려’이고, ‘정’이며, ‘은악양선’일 것입니다. 우리 어서어서 우리의 본성을 찾으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6월 2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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