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뉴스프리존] 서삼봉기자 = 6.25 발발 71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국토의 약 90%를 북한에 점령당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수호했던 낙동강방어선 전투의 도시 칠곡을 찾았다. 6년 전 개관한 호국평화기념관과 처절한 6.25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호국의 다리가 이 곳 호국의 도시 칠곡에 있다.
칠곡은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로 연합군 총반격의 계기가 된 낙동강 방어선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개전 후 국군은 북한군 기습공격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유엔군의 참전 지원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전력의 열세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지 못하여 1950년 8월 1일에는 낙동강 선까지 후퇴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북한군의 집중 공격을 받은 마산·대구·경주 축선을 고수하여 국토의 약 10%만을 간신히 확보한 선에서 북한군의 전쟁목표를 분쇄하고,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공세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렇듯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이라는 천연장애물을 활용하고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공세이전의 전기를 마련함으로써 방어에서 공격으로, 수세에서 공세로, 후퇴에서 반격으로의 대전환을 이뤘다.
칠곡군 석적읍 석적로 226에는 낙동강방어선 전투를 재조명하고,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게 할 목적으로 건립된 전국 최대 규모의 6·25전쟁 전문기념관인 호국평화기념관이 있다.
대구 점령을 위한 북한군의 낙동강 도하를 막은 왜관지구 전투를 기념하는 왜관지구 전적기념관을 지나면 위쪽 언덕에 지하2층 지상4층의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지하 1층으로 입장하면 기념관 로비 중앙에 구멍 뚫린 큰 철모가 보인다. 철모 표면의 쓰인 20개 핵심단어는 이곳 칠곡에서 벌어진 주요 전투를 표현하고 있으며, 철모로 향하는 55개의 탄피는 처절했던 55일간의 낙동강방어선전투를 상징한다.
지하1층은 전투체험관으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고, 지상 1층은 6.25전쟁과 낙동강 전투에 대한 이해를 돕는 호국전시관이다.
4층 전망대에 올라 낙동강과 칠곡보를 바라보니 가슴이 확 트인다. 71년 전 8월, 이 곳에서 낙동강 건너 북쪽을 바라보던 우리 국군과 학도병들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확 트인 전망에 좋았던 기분이 괜히 미안해진다.
야외 평화의 광장에는 6인의 인물상과 한반도가 투각되어 있는 흰색의 호국평화탑이 있다. 조선시대 사각방패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호국평화탑은 결코 뚫리지 않는 낙동강방어선을 상징하며 국군, 유엔군, 경찰, 여군, 학도의용군, 노무자로 구성된 6인 인물상은 낙동강전투에서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대한민국을 지켜냈음을 의미한다.
평화탑 뒤에는 55일간의 낙동강전투 이야기가 새겨진 낙동강 전투 스토리 벽이 55일간의 치열했던 당시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기념관에서 대구 방향으로 5분여를 이동하면 호국의 다리로 불리는 왜관철교가 있다. 이 다리는 일본이 대륙침략을 위해 1905년 부설한 경부선 철교였다. 6·25전쟁 때 국군이 일방적으로 밀려 낙동강이 최후 방어선이 되자 북한군이 낙동강을 건너지 못하도록 유엔군에 의해 1950년 8월 3일 밤 8시 30분 작전상 교각 일부가 폭파되었다.
현재는 철로로 이용되지 않고 보행자들이 다닐 수 있도록 개조하였으며, 6·25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건축물로 2008년 10월에 등록문화재 제406호로 지정되었다.
호국의 다리 남쪽 언덕은 나라 사랑이 깃든 애국동산이 있다. 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들이 잠들어 계신 곳이다. 동산에 올라 호국영령을 희생을 기리는 위령비와 순국의사 기념비에 참배하며 6.25전쟁 71주년을 맞아 호국의 도시 칠곡의 정신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