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기록 '아동 학대' 미제
부모의 아이 살해 뒤 자살
[서울= 연합통신넷, 심종완기자]2014년 3월3일은 일곱살 철이(가명)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로 한 날이었다. 학교 입학을 손꼽아 기더리던 철이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대신 철이는 엄마와 함께 오전에 비디오로 영화 <겨울왕국>을 봤다. 점심으로 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었다. 엄마는 오후에 맥주 두 캔을 마신 뒤, 저녁 무렵 철이에게 알약 한 알을 건넸다. 수면유도제였다. 철이는 비타민으로 알고 먹었다. 철이는 안방 침대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이날이 학교 입학일인지도 알지 못했다.
철이가 잠들자 엄마는 방 안에 번개탄을 피웠다. 캠핑을 위해 사둔 것이다. 한 살배기 둘째 딸 영이(가명)가, 잠든 철이 옆에서 놀았다. 엄마는 방문과 창문 틈을 휴지와 테이프로 틀어막았다. 세 사람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엄마는 빚에 시달렸다. 사업 실패가 반복됐고 인터넷 도박에도 빠졌다. 가족과 친척은 물론이고 친구들에게까지 손을 벌렸다. 재혼한 남편과 별거에 들어갔다. 두 번째 결혼마저 위기에 처했고, 인간관계는 끊어졌다. 고립이 가속화되자 우울증이 찾아왔다. 삶을 포기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눈에 밟혔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세상을 떠나기로 했다.
세 사람은 다음날 오전 별거중이던 아빠에 의해 발견됐다. 다행히 엄마와 영이는 살았다. 그러나 수면제를 먹은 철이는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영이는 공기보다 가벼운 일산화탄소를 피하려는 듯, 침대 밑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엄마의 자살 시도에 애꿎은 철이가 생명을 잃었다. 엄마와 둘째 영이도 치명상을 피하지 못했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엄마는 한쪽 팔이 마비됐고, 영이는 정상적인 성장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엄마는 올해 초 열린 재판에서 살인 혐의로 8년 형을 선고받았다.
엄마는 수사 과정에서 "남편이 재혼하면 새엄마가 얼마나 잘해줄까 싶었다. 시어머니도 아이들을 별로 예뻐하지 않았다. 내가 죽고 나면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동반자살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남겨질 아이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아이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자살 시도 전 메모에는 이렇게 썼다. "영이를 당신(남편)에게 주기에는 아까워 데려간다. 당신 때문에 내 인생 망쳤다. 내가 당신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복수다."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소유물 정도로 생각하고, 심지어는 남편에 대한 복수심마저 자식에게 투영한 것이다.
남매 데리고 번개탄 피운 엄마
사회는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지만…
동의없이 생명 빼앗는 행위도
아동인권 침해한 신체학대
한 해 평균 13명꼴 목숨잃어언론은 이 사건을 '세 가족 동반자살 시도'라는 제목으로 짧게 보도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정확한 명칭은 동반자살이 아닌 '자식 살해 후 자살'(살해 후 자살)이다. 동의 없이 어린 자식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점에서, 아동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신체학대 행위에 해당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동반자살이란 명칭 자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어른들이 합의한 뒤 하는 동반자살과, 자녀를 죽인 뒤 혹은 자녀와 함께 자살하는 '자식 살해 후 자살'은 다르다"고 말했다.
살해 후 자살은 영아살해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현황이나 통계가 없다. 보건복지부, 통계청 등 어느 기관도 이를 집계하지 않고 있다. 중앙자살예방센터가 2013년부터 펴내고 있는 '자살 실태 조사' 보고서에도 관련 내용이 없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등 부자연스러운 죽음을 뜻하는 '변사'를 확인하는 경찰이 관련 통계에 가장 근접해 있지만, 이를 정리하거나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가해자인 부모가 사망해버려 조사할 수 없는 탓이 크다.
'오죽했으면 저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동정심이 살해 후 자살을 아동학대로 보는 시선을 가로막는다. 아동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일반 아동학대와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철이 사례에서 보듯, 살해 후 자살이 그릇된 애정의 발산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통계는 없지만 살해 후 자살은 우리 사회에 상당히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의 '과학적 범죄분석 시스템'(SCAS) 자료를 분석한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녀살해' 논문을 보면, 2006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집계된 부모의 자녀살해 사건(230건) 가운데 가해자가 자살한 경우가 44.4%(102건)에 이르렀다. 이 중 19살 미만 미성년 자녀는 90.0%로, 실제 자살한 부모에 의해 살해되는 아동은 92명으로 추정된다. 한 해 평균 13명꼴이다. 논문을 쓴 정성국 박사(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검시조사관)는 "자식을 죽인 뒤 자살하거나 동의 없이 자살로 이끄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동반자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부모의 심리는 자살자가 남긴 유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2006년 중학생 남매에게 청산가리를 먹이고 자살한 남성(38살)은 "세 식구 영원히 함께할 수 있도록 줄로 묶고 갑니다. 같이 있게 해주세요"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다섯살 아들을 목 졸라 죽이고 자살한 여성(27살)은 "아들이 고생할 거 생각하면 내가 못 견뎌. 그래서 데려가"라고 유서를 썼다. 혼자 남을 자식이 걱정돼 함께 죽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족 내 자녀살인을 동반한 자살사건 분석'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쓴 이상현 경북 경산경찰서 서장은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가해자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살해 후 자살이 동양권, 특히 한국과 일본에 집중돼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가족의 생존이 온전히 개인에게 맡겨진 한국 사회의 특수성도 한 요인으로 거론된다. 박형민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한국 사회는 아동 안전망이 부족하다. 자식이 홀로 남겨져도 살아갈 수 있는 안전망이 있다면 나의 삶을 끊을 때 자식 삶까지 함께 끊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1989년 7.4명에서 2009년 31명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병원에서 깨어난 철이 엄마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금전적으로 힘든 시기에 도망치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둘째 영이를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이 먼저 떠난 아들에게 속죄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엄마가 법원에 낸 반성문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