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농부라고 소개해도 되려나… 흉내 아닌 진짜 농부 되기 멀었구나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았다. 지난달부터 속을 썩이던 팔꿈치가 가만히 있어도 쿡쿡 쑤셔댔다. 본격적인 농사철이고 할 일은 지리산만큼인데 ‘괜찮겠지’ 하다가 팔을 못쓰게 될까 봐 걱정이 됐다. 침 만큼이나 주사도 싫지만 엑스레이라도 찍어보고 그냥 저냥 쓸 수 있는지 알아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역시나 병원은 만원이었다. 휴일 다음날이라 그런지 서 있기도 힘들었다. 점심시간 전에만 진료 받을 수 있어도 다행이겠다 싶었다. 간호사처럼 분홍색 가운을 입은 직원은 연신 질문을 쏟아 붓는 어르신들에게 똑같은 대답을 하느라 짜증을 참아내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어머니, 기다려 보셔요. 저도 언제 순서가 돌아올지 몰라요.” 표준말로 또박또박 대답하던 직원이 동료가 다가오자 눈을 질끈 감으며 낮은 소리로 하소연 한다. “아야, 대그빡 깨져불겄다야. 니 쪼까 여그 좀 있어라. 나 좀 찌끄리고 올랑게.”
병원에서 조우하신 어르신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농사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모판은 넣었는가?” “엊그제 할망구랑 300판 넣어 부렀네.” 나는 140판 넣는 것도 힘들었는데 70대로 보이는 노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두 분이 한참 말씀을 나누시다가 모내기 방법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다투더니 마음상한 한 쪽을 달래보려는 듯 다른 분이 물었다. “근디 여긴 워쩐 일이당가” “아프니께 왔지. 자네는 밥 먹으러 병원에 왔당가” “......워디가 안 좋은디 그랑가” “다 안 좋은디 그렇게 물으면 어쩐댜. 워디 좋은데가 남았는 지를 물어봐야제” “......밥은 묵었는가” “자네는 왜 아까부터 병원에서 밥 타령인가” “......”
한참 지나서 화장실 다녀온 분홍색 직원이 내 이름을 불렀다. “아버님, 다음 순서니까 문 앞에 계세요.” 그 직원을 쳐다보며 속으로 ‘아줌마 같은 며느리 둔 적 없거든요!’ 하며 진찰실로 향했다. 나름 깨끗하게 입고 갔건만 의사는 진찰을 하더니 “농사 지으시죠? 이건 쉬어야 낫는데 그럴 수는 없을테고...” 한다. 점집에 온 것도 아닌데 내가 뭔 일 하는지는 알아맞히면서 처방은 하나 마나한 얘기만 했다. “스테로이드 주사가 일시적인 효과는 있는데 자주 권하기는 그렇고...” 대형병원의 20초 진료보다는 나았지만 결정장애가 있는 의사와 얘기하는 것도 쉽진 않았다.
병원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070-‘이 떠서 퉁명스럽게 받았더니 잘 아는 후배였다. “형, 저예요. 목소리가 왜 그래요?” “응. 또 쓸데없는 전환줄 알고… 잘 지내지?” “예. 형은 완전히 적응했나 봐요. 이제 정착하신 거죠?” “정착? 야 뭐 꼭 외국 간 사람한테 얘기하듯 하냐.” 대답은 그랬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느낌은 묘했다. ‘나는 아직도 적응 중인가? 이제 자리를 잡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혼자서 제주도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일행을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스쿠터를 빌렸다. 바닷길은 바람도 세고 그게 그거 같아서 산길로 접어드니 익숙하고 마음이 편했다. 무슨 작물을 심었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오토바이 세우고 흙을 퍼서 거름기가 있는 지 만져보고 다녔다. 경운기보다 트랙터가 많은 게 이상했고, 왜 저렇게 넓고 평평한 땅을 놀리는지 의아했다. 신라 왕릉 같은 오름을 보면서도 ‘구례 같으면 저런데도 다 고사리 밭으로 만들었을 텐데’ 하며 아까운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변해버린 나를 봤다.
예전 같으면 바닷가에서 한동안 풍경을 즐기며 멋스럽고 이국적인 색깔에 매료됐을 법 했다. 파란 건 풀이요 까만 건 흙이라며 보기 좋다고 했을 거다. 여기 저기 달덩이처럼 곱게 솟은 오름에 올라 석양을 반사하는 주황색 억새를 바라보며 혼자 영화를 찍었을 거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던 누구의 말처럼 나는 이제 흙에 많이 가까워진 걸까. 이제 나를 농부라고 말해도 되려나.
모판을 넣어둔 못자리 살펴봤다. 하얗게 부직포를 씌워 놓은 모판 바닥이 촉촉해야 하는데 물이 다 빠져서 맨땅이 드러나 있었다. 전 이장님께 부리나케 달려갔다. “아버님, 못자리가 말랐던데요. 물 대야 되는 거 아닌가요?” 여전히 몸이 안 좋으신지 누워계시던 어르신이 어서 오라며 몸을 일으키셨다. “걱정 안 해도 되야. 아침에 보고 왔네. 처음엔 바닥에 물기만 있어도 다 빨아들이는 벱이여. 오히려 물이 많아서 넘치면 모가 녹아부네. 내일쯤 물 들여보내면 될꺼이구마.”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큰일났나 싶다가도 어르신의 “괜찮네” 한마디면 세상이 평온해진다.
농장으로 돌아와 울금과 생강밭을 마무리하고 땅콩 심은 두둑을 정리하고 있는데 장씨아저씨가 들어오신다. “좀 쉬었다 허지.” 커피 한 잔 달라는 말씀이다. “농막이 워낙 지저분해요. 들어가시자 하기도...” 아저씨는 아랑곳 하지 않고 앞장서신다. “깨끗허면 농막이 농막인가? 막 쓰니께 농막이지.” 갸우뚱했지만 참 듣기 좋은 말씀이다. 마침 동네 동생이 관리기를 빌리러 왔기에 차 한 잔 하고 가라며 함께 들어갔다.
바람이 세게 불길래 “올해는 태풍이 온다나 봐요” 했더니 “오믄 오는 거지 뭘 걱정이당가. 죽는 거 걱정하면 어떻게 살겄는가. 안그려?” 지당하신 말씀이다. “땅콩 심은 건 새들이 안 파먹을까 모르겠네요” 가스렌지에 물 얹으며 여쭤봤다. “뭔 소리여. 새들은 아무리 새 대가리라 허더라도 먹을 거 찾는 데는 귀신이여. 빨대 꽂듯 쏙쏙 빼먹네.” 커피를 드렸더니 물이 많다고 뭐라 하신다. 못 들은 체 했다. “뭐라도 덮어 놓아야 될까요?” “투명비닐 씌우면 싹 나는 거 보이고 거기만 구멍 뚫어주면 좋겠구만. 비닐 안 쓸거 아녀.” “볏짚 좀 덮을까요?” “볏짚은 추울 때 땅속 뎁히고 풀 막는 효과는 있지만 새를 막든 못혀. 새가 뭐 땅 속 콩은 눈에 보여서 빼 먹간디? 한 번 보면 지 식구들 다 델꼬 와서 먹어버린당게.”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가만히 있는데 동생이 뭔가 생각난 듯 얘기했다. “형님 그거 있잖아요. 하얀 거. 그물.” “하얀 그물?” “거 왜 작년에 콩 씌웠던 거, 여자 속치마 같은 거 말이여라.” “아! 한랭사. 맞다. 그거 씌우면 되겠네요.” 동생은 한 건 했다는 뿌듯한 표정이다 “제가 형님 자재 관리꺼정 해주네요. 형님은 나 아니면 워찌 산당가요.” 가만히 있으면 고맙다는 말이나 들을 것을 꼭 공치사를 하고 지나간다. “자넨 작년에 써 놓고도 몰랐단 말이여? 농사일지 안 써? 글만 많이 보면 뭐한댜. 써먹어야지. 서울 것덜 보면 헛똑똑이랑게. 그러면서 무신 농사를 진다고. 안적 멀었네” 아저씨가 혀를 차시면서 농막을 나가셨다. 커피 물이 많아서 화가 나셨을까. ‘서울 것’으로 봐 주신 건 고맙지만 뒤끝은 찜찜했다.
“형님 모판은 넣셨대요?” 동생이 화제를 돌렸다. “엊그제 넣었어.” 대답하고는 그날 찍은 사진이 생각났다. 진흙 묻은 맨발에 작은 꽃잎이랑 이파리가 묻어 색깔 대비가 되는 좋은 사진이라 생각해서 보여줬다. “이거 어떻냐? 괜찮냐?” 물었더니 한참 사진을 들여다본 동생이 답했다. “형님, 발이 많이 부섰네요. 붓기가 안 빠지나 봐요. 통풍이 생각보다 오래 가는갑네요.어째야쓰까” 나 참 기가 막혀서. 지금 그게 평상시 멀쩡한 내 발 모양이고, 붓기 싹 빠진 상태였건만 꽃은 보지 못하고 조금 퉁퉁하게 생긴 발 모양만 보이나 보다. “얌마. 달을 가리켰더니 손가락이 굵네요 뭐 이런 거냐!” 아저씨한테 받은 면박을 동생한테 넘겨줬다.
집에 들어와 씻고 누웠는데 아내가 TV를 켰다. 요즘 방송은 태반이 먹는 얘기다. 흔히 말하는 ‘먹방’이 대세인가 보다. 연예인들이 떼로 나와 맛있다는 집 찾아 다니면서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연예인들은 평소에 감탄사 학습이라도 하는지 먹으면서 연신 희한한 신음소리를 내고, 곧 순직할 것 같은 표정으로 입에 쳐 넣었다. 괜히 보고 있는 아내에게 화를 냈다. “저걸 뭐 하러 봐! 열 번 본다고 한 접시 주는 것도 아니고, 식당이 어딘지 알아봐야 서울 아니겠어!” 통풍 때문에 좋아하던 고기를 멀리한 지 두 달이 넘었는데 TV에 나오는 건 맨날 고기요리 뿐이었다. 보고 있기만 해도 점점 화가 난다. 자발적 채식주의가 아닌 탓에 느끼는 박탈감이기도 했다.
채널을 돌렸더니 이번엔 시간을 정하고 셰프끼리 요리를 해내는 대결 프로그램이었다. 연예인의 냉장고를 털어서 그 재료로 요리를 한다는데 소스나 향신료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많았고, 인스턴트 음식을 이용해 그럴 듯 하게 조리했다. 어디서 온 재료인지, 먹거리의 질은 어떤 지에는 관심 없고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는 코딱지 만한 요리에 환호를 일삼았다. 아내가 “저건 만들기 쉽겠다. 저거 한 번 해보자” 하길래 “된장 찌개나 안 떨어지면 좋겠네” 했더니 입을 삐죽거린다. 뭐라고 할 것 같아 선수로 몰아쳤다. “80년대 5공 시절 3S 정책도 아니고, 이건 뭐 TV만 틀면 먹방에 몸짱에 성형수술에, 완전히 사람들 바보 만드는 대회 중계방송 이구만. 농사에 도움되는 건 하나도 없고 말이야”
듣고만 있던 아내의 말문이 터졌다. “여기 아주 대단한 농부 나셨네요. 왜 아침 6시에 나오는 농촌 프로그램은 한번도 안 보고 내고향 어쩌구 하는거도 안 챙겨본대?. 마을회관 가봐. 다들 드라마 챙겨 보구, 그리고 다 연예인 얘기들 하셔. 뭐 그 분들은 농사 생각 없어서 그런 것만 보시나?” 그래서 그 분들 다 바보됐나? 그리구 간전할머니가 며칠 전에 농장 가보시더니 ‘선재 아빠가 저 풀 다 잡을 수 있으까’ 걱정하시더만. 할머니 자꾸 걱정 끼치지 말고 잘 좀 해봐. 많이 하려구 욕심내지 말고.” “어, 내 얘긴 그게 아니고...” “괜히 고기 못 먹으니까 나한테 시비 걸지 말고 샐러드 많이 해놨으니까 그거라도 많이 먹고 참아봐. 코끼리도 그 큰 몸땡이로도 풀만 먹고 잘 살잖아.” 할 말이 없었다. ‘안 보는데서는 코끼리두 악어 잡아먹는다는 얘기가 있어’ 혀려는 말이 목구멍에서 막혔다.
입하(立夏)가 지났다. 일교차가 크긴 해도 완연한 여름이다. 땀과 한 판 전쟁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농부라면 작물이 쑥쑥 자라는 여름이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당연할 텐데 언제쯤 그렇게 될까. 언젠가 장씨아저씨가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더위 어쩌구 하지 말고 새벽에 일어나서 시원한 때 일 혀. 미련하게 여름 대낮에 땀 쏟으면서 애쓰는 척 허덜 말고.” 60년 차 농부의 말씀이다. 맞다. 새벽별 본 적 없는 나는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