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토중래(捲土重來)’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흙먼지를 휘날리며 다시 돌아오다’라는 뜻이지요.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오강정시(烏江亭詩)’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초패왕 항우(楚覇王 項羽)가 한고조(漢高祖·劉邦)에 패해 자결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쓴 시로, 그 마지막 장면이 <사기(史記)> ‘본기’에 실려 있습니다.
항우(項羽 : BC 232년~BC 202년)는 중국 진나라 말기의 장군이자, 초한전쟁 때 초(楚)나라의 군주입니다. 우(羽)는 자이며, 이름은 적(籍)이지요. 초나라의 명장 항연(項燕)의 후손으로, 처음에는 숙부 항량을 따르며 진왕 자영을 폐위시켜 주살합니다. 그 후 서초 패왕(西楚 覇王)에 즉위했습니다.
항우가 유방의 군대에 쫓겨 오강에 다다랐을 때, 그 지역 정장(亭長)이 항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동이 작기는 하지만 땅이 사방 천리이고, 백성의 수가 몇 십만에 달하니 왕 노릇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대왕께서는 서둘러 강을 건너십시오.” 그러자 항우가 한탄하며 말했습니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데 내가 강을 건너서 무얼 하겠는가? 강동의 젊은이 8000명이 나와 함께 서쪽으로 갔지만 이제 단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했다. 설사 강동의 백성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아준다 한들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 설사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이 항우의 마음이 부끄럽다.”
항우는 결국 그곳에서 최후의 전투를 벌이다 스스로 목을 찌르고 맙니다. 천하를 호령했던 영웅의 최후답게 참으로 장엄한 장면입니다. 최후까지 자존심을 지키며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장면에서 항우가 왜 압도적으로 우세한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는지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 부하들의 충언을 듣지 않았습니다.
원래 항우는 신하들의 간언을 제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하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여기서도 정장의 말은 귓등으로 흘리며 자신의 신세 한탄만 하고 있지요.
둘째, 패배를 하늘의 뜻으로 돌렸습니다.
변명하고, 자포자기하며, 남 탓으로 돌렸습니다. 운명이 이미 자신의 패배를 결정했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순자(苟子)>에는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지 않고, 운명을 아는 사람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남을 원망하는 자는 곤궁에 빠지게 되고, 하늘을 원망하는 자는 뜻이 없는 자다”라고 했습니다.
셋째, 힘만 믿었지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힘만 자랑했습니다. 어려서 글을 배웠지만 공부를 끝내지 못했습니다. 검술 역시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숙부인 항량이 화를 내며 꾸짖자 항우는 “글은 이름을 쓸 줄 알면 되고, 검은 한 사람만 상대하는 것이니 차라리 만 명을 대적하는 것을 배우겠습니다.” 대충 뜻만 알고는 끝까지 배우려 하지 않았으니 무슨 지혜가 있었겠습니까?
넷째, 인내심이 없고, 의지가 부족했습니다.
천하 쟁패의 길에 나서서도 ‘범증’이라는 훌륭한 신하가 있었지만 끝내 내치고 말았습니다. 지나친 자존심이 다른 사람의 충언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했던 것이지요.
다섯째, 덕(德)이 부족했습니다.
덕이란 도덕적, 윤리적 이상 실현을 위한 사려 깊고 인간적인 성품을 말합니다. 그래서 덕이 있는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크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덕을 길러야 합니다. 용장(勇將)이 되지 말고 덕장(德將)이 되어야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항우와 유방의 쟁패를 그린 <초한지(楚漢誌)>와 장대한 역사대하드라마 ‘초한지’에서 항우의 성공과 실패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자기의 성공은 자기가 잘난 탓이고, 자기의 실패나 잘못은 다른 사람과 환경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에 우리는 항우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늘의 탓으로 돌리는 마음 자세로는 결코 올바른 자신을 정립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사람은 닥쳐온 고난에 쉽게 좌절하고, 작은 위기에도 스스로 무너지고 말지요. 이 ‘권토중래’의 시를 한번 살펴봅니다.
「병가의 승패는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勝敗不可兵家期)/ 부끄러움을 품어내고 치욕도 이겨내야 하는 것이 진정한 남자다(包羞忍恥是男兒)/ 강동에는 젊은 호걸들도 많은데(江東子弟多才俊)/ 흙먼지 휘날리며 다시 돌아올 것을 왜 알지 못하는가(捲土重來未可知)」
그렇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예외 없이 어려운 순간이 찾아옵니다. 뜻하지도 않게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때 해야 할 일은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며 힘을 기른다면 곧 이겨낼 기회가 옵니다. 조급해하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않는다면 ‘권토중래’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권토중래의 영광을 차지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까요?
1) 지도 받는 사람 이상의 지식을 가질 것이요,
2) 지도 받는 사람에게 신용을 잃지 말 것이요,
3) 지도 받는 사람에게 사리(私利)를 취하지 말 것이요,
4) 일을 당할 때마다 지행을 대조하는 것입니다.
5) ‘삼학 팔 조’를 닦아 삼대 력의 위대한 법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7월 1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註> 삼학 :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
팔조 : 信. 忿. 疑. 誠. 不信. 貪慾. 懶怠. 愚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