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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기록 '아동 학대'..
사회

부끄러운 기록 '아동 학대'

온라인뉴스 기자 입력 2015/05/11 20:42
음성 파일 틀자 충격적 내용이.."넌 처맞아야 돼"
파출소 밖으로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아기 돌려주세요. 안 때렸어요. 제 배 아파 낳은 애를 제가 왜 때려요. 잘 키울게요. 아기 주세요, 제발." 20대 초반의 여성은 자신을 심문하는 경찰 앞에서 손을 비볐다. "지금 이 시간부터는 아이를 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진짜 안 때렸어요?" 경찰은 단호했다. 조사를 함께 하던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녁 8시, 4월이었지만 바람이 차가웠다. 아직 돌도 안 된 솔지(가명)의 엄마는 집에서 막 나온 듯 허술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앳돼 보였다. 파출소에 와서야 자신이 아동학대 가해자로 신고됐고, 자신과 아이가 분리될 거란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계속 울었다. 그는 아이 아빠와 헤어진 뒤 홀로 아이를 키우며 "밤마다 아이에게 미안해서 운다"고 했다.





면담만으로 아동학대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 엄마와 대화를 나눈 뒤 상담원들과 따로 조사실을 나와 "아이 엄마가 측은하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하지만 잠시 뒤, 경찰이 확보한 증거자료 속 아이 엄마의 모습은 반전이었다. 음성 파일을 재생하자 조금 전 흐느끼던 바로 그 목소리가 사납게 흘러나왔다. "울지 마라, 이 새끼야. 자다가 왜 울고 지랄이야. 너는 그냥 쳐 맞아야 돼." 아이의 뺨과 맨살을 짝짝 때리는 소리가 수십차례 반복됐다.

"한 살짜리 아이가 이 정도의 학대를 받는다면 죽는 것도 시간문제일 수 있어요. 경찰의 말대로 지금 당장 아이와 엄마를 분리해야 합니다. 증거가 없이 가해자 면담만으로 조사를 벌였다면 곧바로 엄마와 아이를 분리하지 못해 극단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겠네요." 상담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 4월16일, 기자는 하루 동안 한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과 동행했다. 하루 종일 충분한 조사 없이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이어졌고, 출동을 마치고 바로 다시 출동했으며, 문전박대를 당한 뒤 더 이상의 권한이 없어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상담원들은 우리 사회가 학대받는 아동들을 위해 배치해놓은 최전선에 있었고, 모든 책임은 그들에게 쏠려 있었다.

전국에 있는 51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대부분 정부가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 비영리 민간법인에 위탁한 기관들이다. 아이를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임은 모두 이 업무를 위탁받은 민간의 어깨 위에 올려져 있다. 중앙 기관이 있기는 하지만 그곳도 '컨트롤 타워'는 아니다. 학대 아동 지원 업무, 경찰이나 구청 등과의 협력 수준도 제각각이다. 상담원 한 명이 받는 연봉은 2400만원 수준이다. 야근 수당, 휴일 근무 수당은 따로 없다.

인구 230만명 정도가 사는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이곳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 수는 10명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지난 9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례법)'이 시행되면서 늘어난 숫자다. 사회복지사로서 의지를 갖고 입사했다가도 못 견디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절반 이상의 상담원의 경력이 1년 남짓이었다.

학대받는 아동 위해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사회복지사
그러나…
그도 고통으로 울었다


'업무량'이라 할 수 있는 신고 건수는 늘고 있었다. 지난 1~3월에 이 지역에서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만 130건이 넘었다. 세 달 사이 1인당 13건 이상의 가정이 관리 대상으로 추가된 셈이다. 해당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비교적 경력이 긴 3년차 여성 상담원의 경우 현재 담당하고 있는 학대 가정 수만 140건이 넘었다. 하루에 한 집씩만 방문하려 해도 넉달이 넘게 걸린다.

상담원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가정 수가 늘어나면 기존에 관리하던 가정 중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가정'을 내려놓아야 한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이를 '사례 종결'이라 부른다. 하지만 학대 가해자와 피해자가 여전히 한집에 사는 상태에서 관찰을 종결할 '적당한 선'을 찾는 일은 어렵다. 사례 종결 뒤에도 재학대는 빈번히 발생한다.

동행 취재를 한 하루 동안에도 신고는 이어졌다. 신고를 받고 낮 시간에 경찰과 함께 출동한 곳은 한 초등학교였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는 "어려서부터 아빠에게 맞아왔다. 무섭다"고 했다. 특히 몇 달 전 중학생인 누나가 아빠에게 심하게 맞아 경찰이 출동했다고 했다. 함께 사는 할아버지까지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에게 맞아야 한다"고 아빠 편을 들었다고 한다.

이날 아이는 애써 자신의 상황을 어른들에게 알렸지만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상담원은 학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아이의 부모, 누나, 할아버지 등을 따로 만나기로 했다. 상담원은 "아이를 때려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보니 맞는 아이는 많고 말리는 어른들은 적다"고 말했다.

그러니 '말리는 어른'의 역할은 오직 상담원의 몫이다. 상담원은 신고가 접수되면 현장 조사, 사례 판정, 사후 관리 순으로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가해자의 잘못을 캐내 피해자를 구조하는 조사 업무와 가해자와 피해자의 치료를 돕는 관리 업무가 모두 상담원들의 몫이다. 미국의 경우 사후 관리는 아동보호기관이 아닌 지역사회의 여러 기관이 담당하는 영역이다.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온 지 7년이 넘도록 사후 관리를 하고 있는 가정을 상담원과 함께 방문했다. 이제 중학생, 고등학교이 된 아이 둘이 엄마와 살고 있었다. 40대 중반인 엄마는 우울증을 오래 앓고 있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 무작정 가서 문을 두드렸다. 오후 5시인데도 자다 일어난 엄마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집 안에 들어서니 똥 냄새와 쓰레기 냄새가 진동을 했다. 전형적인 방임 사례였다. 무기력한 엄마는 집 안 정리도 하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가지 않고 집 안에서 자고 있었다. 현관부터 거실까지 오래된 쓰레기가 널부러져 썩어가고 있었다. 화장실 문을 여니 문 앞에 똥을 싸두었다. 변기는 고장난 지 오래였다.

상담원 1명이 140건 담당
격무에 박봉, 잦은 이직
민·관 협력체계 미비에
방문가정 문전박대로 힘빠져
사망아동 다루다 보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시달려
"죽은 아이 얼굴 떠올라
늘 공포 짓눌려 살아요"


아기 때부터 방임에 시달려온 아이들은 지능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다. 아이큐는 40 수준이었다. 냄새가 난다고 학교에서도 놀림을 당했다. 그런데도 아이들과 엄마를 분리하지 못했다. "1년 전쯤에 아이를 차에 태워 심리 검사를 받게 하려고 했더니 아이가 문을 잡고 버티며 완강하게 거부했다"고 상담팀장이 말했다. 이날 거둔 수확은 엄마를 설득해 청소 서비스를 받도록 한 것이었다.

다음 집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부모가 피해망상,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엄마는 "국가가 나를 음해한다"고 하며 딸을 돌보지 않았다. 2012년부터 부모의 학대 사실을 알고 관리해온 집이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아이도 부모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완강한 거부 앞에서 상담원들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작년 여름부터 좀처럼 연락이 닿지 않는 집이라 방문 전부터 상담원들의 걱정이 컸다. 부모가 소유하고 있다는 주택 앞에 도착했다. 은색 대문을 두드렸다. 잠시 뒤 비쩍 마른 중년 남자가 대문 안쪽의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누구요?" "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나왔습니다. 잠시…." "필요 없어요!" 남자는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았다.

그때였다. "살아 있다, 살아 있어요!" 한 상담원이 외쳤다. 집 안쪽, 온갖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쌓여 있는 창문 너머에서 아이가 눈을 빼꼼히 내밀고 상담원을 바라봤다. 잠시 밖을 보던 아이는 곧 안으로 사라졌다. "아이를 잠깐이라도 봤다는 게 큰 수확이네요." 상담원은 작은 사실에 기뻐했다.

하지만 이대로 갈 순 없었다. 동네 탐문을 시작했다. 바로 앞집 2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아주머니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그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아이의 집과 담도 없이 붙어 있는 옆집도 찾아갔다. 세입자들이 사는 층은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꼭대기에 사는 집주인은 "옆집을 전혀 모른다"고 했다.

우연히 마주친 앞집 남성은 "난 전혀 모른다"고 손사래를 치다가 불쑥 "애가 있는 것 같던데 거의 나오질 않는다"고 말했다. 그 동네의 통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역시 "외부와 단절된 집 같아 보였다"고 할 뿐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니 구청이나 주민센터의 손길도 미치지 않는다. 철저하게 고립된 집. 아이에게 가닿을 방법이 없었다.

"이러고 있는 사이에 아이가 죽으면 어쩌나, 상담원들은 늘 공포에 짓눌려 살아요. 지역사회 안에서의 관리 체계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위험에 처한 아이들은 전부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의 책임이죠." 한 상담원은 "샤워할 때마다 내가 관리하다 죽은 아이 얼굴이 떠올라 괴롭다"고 했다.

그날 밤 9시, 솔지를 찾아 어린이집으로 갔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시각, 11개월 아기는 혼자 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애가 먹을 것만 주면 울진 않는데 통 웃지를 않는다"고 했다. 아이를 데리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운영하는 학대아동 쉼터로 향했다. 아이는 낯선 이의 품 안에서 금세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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