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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탐럼] 선과 악
오피니언

[덕산 탐럼] 선과 악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21/08/01 22:56 수정 2021.08.01 22:59

무엇이 선(善:Good)이고 어떤 것이 악(惡:Bad)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기독교에서는 야훼가 에덴동산에 특별히 둔 두 그루의 나무 가운데, 먹으면 선악을 알게 된다는 선악과나무의 열매를 아담과 이브가 따 먹은 데서부터 선과 악이 생겼다고 설명합니다.

어떤 종교에서든 선과 악. 혹은 옳음(right)과 그름(wrong)의 기준은 그 종교의 근본적인 교설(敎說)에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그것은 곧 사물의 기원과 그 본성 그리고 그 종교에 의한 삶의 목표와 이상에 대한 것이지요. 그런데 선과 악, 삶(태어남)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무아(無我)와 자아(自我), 잘함과 못함, 오른쪽과 왼쪽, 위와 아래, 무상(無常)과 유상(有常), 유신론과 무신론 이런 것들은 모두 인간의 마음에서 만든 개념일 뿐, 절대적인 진리는 아닌 것이지요.

어느 학교의 강의 시간에 교수는 칠판에 ‘선과 악’이라 써놓고 강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쌍의 부부가 유람선을 타고 여행을 하다가 큰 폭풍우로 해상 재난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배의 구조 정(救助艇)에는 자리가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 때 남편은 부인을 남겨두고 혼자 구조선에 올랐고, 부인은 침몰하는 배 위에서 남편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교수는 여기까지 얘기하고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이 상황에서 부인이 남편에게 무슨 소리를 외쳤을까요?” 듣고 있던 학생들은 모두 격분하여 여기저기에서 떠들며 대답을 했습니다. “당신을 저주해요.” “당신을 남편으로 선택한 내 눈이 삐었지.” “어디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나 봐라.” 하는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습니다.

이때 선생님 눈에 한 학생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학생에게 다가가서 나지막하게 물었습니다. “그럼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 학생은 의외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교수님, 제가 생각했을 때 부인은 아마 ‘우리 아이들 잘 부탁해요.’ 라고 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너 이 얘기 어디서 들어봤니?” 학생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니요. 그런데 제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아버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선생님은 감격해 하며 다시 교단에 서서 말했습니다. “정답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습니다.

“배가 침몰한 뒤 남편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자녀들을 잘 키웠고, 그 남편도 몇 년 후에 병으로 죽었단다. 자녀들이 아빠의 유물을 정리하던 중, 아빠의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아빠와 엄마가 배를 타고 여행을 갔을 때 이야기가 적혀 있었지. 그 때 엄마는 이미 고칠 수 없는 중병에 걸려 있어서 세상을 떠나보낼 마지막 위로의 여행중이였단다.

그때 마침 큰 폭풍우를 만나 사고가 발생하였고, 아빠는 자식들을 위해 마지막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버릴 수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빠의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여보 미안하오. 그 때 당신이 나의 등을 떠 밀지만 않았다면, 나도 당신과 함께 바다 속에 빠져 죽고 싶었지,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소. 우리들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자식들 때문에 당신만 깊고 차가운 바다 속에 잠들게 할 수 밖에 없었소. 천국에서 당신과 다시 만날 그날만을 고대하며 당신 몫까지 아이들을 잘 키우겠소.”

교수가 이야기를 끝내자, 그렇게도 흥분하여 떠들던 학생들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교실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무겁고 숙연한 분위기에 학생들도 이미 이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는 것을 선생님도 알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선과 악이란 어떤 때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게 판단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만 상대를 가볍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참으로 선이고, 내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참으로 악인가요? 나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가요? 선이라고 판단되는 것이 내 이득과 상반되고, 악이라고 판단되는 것이 내 이득에 부합될 때도, 나는 악을 멀리하면서 일말의 흔들림 없이 기쁘게 선을 행할 수 있을까요?

내게 유리하고 득이 되면, 팔이 안으로 굽듯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을 선으로 왜곡하거나, 악인지 잘 알면서도 버젓이 그 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내게 불리하고 손해가 되면 선도 악으로 왜곡하거나 모른 체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우리 이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을 냉정하게 자문해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단순하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죽은 지식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올곧은 세상을 앞당기는 일은 요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진리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 마지막에는 선악을 모두 초월해야 할 대상일 것입니다. 선악업보가 끊어진 자리에서 선악업보의 차별이 생겨나는 것이며, 사생(四生)은 심신작용을 따라 진급과 강 급으로 은생어해(恩生於害), 해생어은(害生於恩)으로 무량세계(無量世界)를 전개해 가는 것입니다.

본래 선악 염정(染淨)이 없는 우리 본성에서 범성(凡聖)과 선악의 분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중생은 그 영지(靈智)가 경계를 대하매 습관과 업력에 끌리어 종종의 망상이 나고, 부처는 영지로 경계를 비추되 항상 자성을 회광반조 하는지라 그 영지가 외경에 쏠리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악을 구별하는 부처와 중생의 다른 점이고 부처와 중생의 차이가 아닐 런지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8월 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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