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까마득한 우주의 시그널 쏟아지는 별빛이 밝다. 밥먹듯, 하품하듯, 잠꼬대하듯, 화내듯, 사랑하듯, 노래하듯, 춤추듯, 폭풍치듯, 꿈꾸듯, 열병의 습관처럼 나는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앞에 놓인 캔버스에서 침묵의 대지와 바다를 본다. 거침없이 맥박 치는 싱싱한 대지의 숨결을 느끼고, 끝없이 밀쳐 일어서는 바람과 파도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태양과 거친 흙의 봉인을 풀고 달빛을 삼켜 매혹하는 붉은 열매의 농익은 달콤한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다시 천공의 광활한 물길에 몸을 깊이 담가본다. 반짝이는 금빛 물고기떼를 쫓아 정신없이 헤엄치다 보면 블루홀 그 끝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아름다운 불꽃을 본다. 창백한 달이 횃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달 차오르는 한여름 작업실에서 이은 작가가 캔버스에 담아낸 풍경이다.
이같은 작품은 8월 21일까지 금산갤러리에서 열리는 이은 개인전 ‘Spellbound(스펠바운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스펠바운드는 마음을 빼앗긴, 넋을 잃은 뜻을 지녔다. 작가가 마음을 빼앗긴 풍경을 보여주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LG 시그니처 아트 갤러리에서 개최 되었던 온택트 전시 ‘별 많은 밤 지구를 걷다’전에서 호평을 받았던 회화 작품을 포함한 영상과 퍼포먼스까지 선보인다. 전시장에 소금산을 만들어 영상을 투사한 작품은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홍익대학교 회화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예술대학교 대학원에서 벽화를 공부한 작가는 캔버스위에 한자를 바르고 그 위에 자연 재료인 석회와 규사를 바르고 마른 후 스크래치를 내고 작업을 한다.
별과 달의 이미지를 빠른 붓질과 드리핑을 통해 형상을 구현해 간다. 직관적으로 우주적 영감을 그려내고 있다. 고요한 듯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드 넓은 공간들이 만들어지면서 작가 나름의 회화적 서사가 되고 있다.
작가가 그림 재료들과 여러방식으로 씨름을 하는 것은 우주와의 소통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얽혀 있다는 양자물리학을 연상시킨다. 빛이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한 양자중첩현상은 기존의 우리의 인식구조를 허물고 있다.
“양자역학은 입자 단위의 작은 미시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로 양극단이 동시에 공존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물리 세계 중 하나다. 이는 마치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 있음과 없음이 서로 얽혀 있는 미지의 세상과도 같다. 세상 모든 것은 상호의존적이고 끊임없이 변하며, 실체가 있는 고정불변의 존재는 없다는 불교의 연기법을 떠올리게 해준다. 우주적 사고로 나가는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현대인은 과거 종교가 개척했던 통로뿐만 아니라 철학과 과학, 그리고 예술의 통로를 따라 우주 또는 신 또는 무한자와 만난다.
“G. 주커브의 ‘춤추는 물리’의 일부 내용을 소환해 본다. 우리의 우주는 그 숱한 검은 구멍(블랙홀)에 빨려들어가고 있으며, 결국 다른 우주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 한편 다른 우주는 우리 우주로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그것이 또 다시 검은구멍에 빨려 들어가서는 또 다른 우주로 흘러나간다. 이 과정은 끊임없이 진행되어 연쇄반응을 일으켜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無終 無始의 춤이 이어진다. 과거 고대인들이 사유했던 춤주는 신(神)에의 모습은 천체의 운행과 율동의 에너지다.”
그의 작업에 대해 김노암 평론가는 “인간의 정신은 굳이 과학의 힘을 빌어 우주선을 타지 않아도 우주를 교감하며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생각이든다. 상징과 은유가 하늘 가득한 세계에서 작가는 자코메티와 브랑쿠시의 정신과 조우한다. 춤추는 우주를 느끼며 존재하는 개인, 상승하는 정신. 작가에게 세계의 모든 것은 회화적 상상력을 위한 물질이자 정신의 재료”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