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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석 칼로 화강석에 새기듯 붓질하는 박대성 화백..
문화

금강석 칼로 화강석에 새기듯 붓질하는 박대성 화백

편완식 기자 wansikv@gmail.com 입력 2021/08/17 17:21 수정 2021.08.18 14:06
”붓과 먹...서법에서 내 그림이 배태돼“
23일까지 인사아트 개인전
내년 라크마 등 미국순회전
불국사 설경 작품앞에 선 박대성 화백
'불국사 설경' 작품앞에 선 박대성 화백

[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동양의 붓은 천병만마(千兵萬馬)를 일으킨다. 필은 들면 가늘어지고 더 높이 들면 더 가늘어지고 누르면 더 굵어지고 자유자재롭다. 서양 붓은 마음 놓고 이렇게 좌우 사방을 쓸 수 없다. “

수묵화의 대가 소산 박대성(朴大成, b.1945) 화백이 23일까지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겸재 정선부터 이상범, 변관식의 진경산수화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는 박 화백은 전통에 머물러 있던 수묵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그는 새가 하늘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듯한 초점인 부감법(俯瞰法)과 다시점(多視點)을 적절히 이용하여 한 화면에 담기 어려운 빼곡한 산맥과 그 사이의 문화재를,강조와 생략을 통해 역동적으로 배치한다. 담대하면서 섬세한 붓질과 농묵, 담묵의 조화로 탄생한 그의 수묵화는 마치 광각렌즈를 통해 보는 듯한 파노라믹 뷰를 평면적으로 연출한다. 막사발이나 청화백자 같은 한국 전통 도자기의 표면을 사실적이면서도 담백하게 그려냄으로써 수묵화 주제의 다양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불국사 설경
불국사 설경

이번 개인전의 제목 정관자득(靜觀自得)이다. 사물이나 현상을 고요히 관찰하면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다는 의미다. 금강산, 천제연, 소나무 등 자연의 소재를 통찰력 있게 그려낸 신작뿐만 아니라, 작가가 수집한 전통 도자기와 공예품을 사실적으로 그린 ‘고미’ 연작 또한 대거 전시되고 있다. 소규모 정물화도 함께 전시되어 작가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아우르는 전시다.

#靜觀自得...한국화의 모더니즘 성과

박대성 작가는 서양의 미술사조를 그대로 수용하는 대신 독창적인 방식으로 한국화의 모더니즘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내년 7월 미국 서부에 위치한 LA 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그의 개인전이 개최될 예정이다. 이어서 하버드대학교의 한국학연구소(CGIS)를 시작으로 다트머스대학교(Dartmouth College) 내에 위치한 후드 미술관(Hood Museum of Art),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Stony Brook), 메리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Mary Washington)에서 순회전이 열린다.

미국 순회전 기간에 맞춰 다트머스 대학교의 김성림 교수를 중심으로 미국 미술사학자들이 집필한 한국 현대미술을 다루는 서적도 출간된다. 서구에서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을 미술사적으로 비교 분석한 최초의 서적으로, 한국 전통 수묵화의 현대화에 앞장선 박대성 작가도 다룬다.

금강산

전시장에 들어서면 단연 압도하는 풍경은 ‘불국사 설경’이다. 눈내리는 소리가 들릴것만 같은 고요한 풍경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소나무 표피 표현이 예사롭지 않다. 갈필이 연상되나 붓을 화폭에 힘껏 찧이긴 모습이다. 먹이 묻은 부분과 묻지 않은 곳이 거칠지만 함께 조화롭다. 탈속적이고 초월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금강석 칼을 들고 화강석 돌에 글씨를 새기듯 붓질을 하는 것이 나의 그림이다.“

박 화백은 그의 필력이 글씨에서 나왔다고 했다. 평생 글씨를 파고든 게 그림의 원동력이 됐다는 애기다. 글씨를 파고 들수록 표현력은 더 풍부해졌다는 것이다.

”붓과 먹이라는 서법에서 나의 그림이 배태됐다.“

그의 이런 화법은 1988년 베이징을 직접 찾아가 만난 중국 현대수묵화의 대가 리커란(1907~1989)도 조언해 준 말이다.

가나문화재단 김형국 이사장은 ”소산의 모더니즘은 다차원을 구사해서 한 화면에 구상성과 비구상성을 함께 구사하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뿐 아니다. 서화동원(書畫同源)이란 말이 소산에게처럼 적절한 경우는 없다. 글씨인가 하면 그림이고, 그림인가 하면 글씨다“라고 평했다.

천제연

# 왜 경주에 머물며  불국사에 몰입했을까

김상옥(金相沃, 1920-2004)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불국(佛國)으로 꿈꾸는 불국사 뜨락, 거기 묘하게 두 개의 꿈과 현실을 세웠다. 하나는 다보탑, 하나는 석가탑, 하나는 곡선, 하나는 직선, 하나는 동(動), 하나는 정(靜), 하나는 환생, 하나는 순교, 하나는 육신, 하나는 영혼, 하나는 전쟁, 하나는 평화...”라 노래했다. 정반(正反), 대척(對蹠)의 둘이 조화됨은 물론 아예 하나가 되고 있음이 불국사의 미학이라 했다. 일본 고고학자는 석굴암 부처님을 보고 “아버지로 보려니 너무나 자비롭고, 어머니로 보자니 너무나 엄격하다”라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나된 모습에 감동을 한 것이다.

“모더니즘이 어쩌니저쩌니 하는데 불국사야말로 모던 중의 모던이다. 비가 오고 나면 백운교, 청운교 사이에 쌍무지개가 뜨고 정월 대보름 날엔 석가탑과 다보탑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보름달은 현실과 피안을 하나로 만드는 풍경이다.”

중학졸업 학력이 전부인 박 화백은 18세 때부터 호랑이 그림으로 유명한 서정묵 문하에서 5년간 그림을 배웠다. 이후 산수화 작가 이영찬 화백과 서울대 동양화과 박노수 교수. 서예가이자 평론가인 석도륜 등과 교류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의 이런 비주류적 야성이 한국화의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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