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80회
발견
채성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현관 벨을 눌렀으나 기척이 없었다. 문을 밀어보니 잠기지 않은 채 쑥 밀리었다.
“으흑흑…, 흐흐흑….”
베란다 쪽에서 신음소리인지 울음소리인지 들려왔다. 채성이 베란다 쪽으로 다가가자 애춘은 아파트 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뉴스에서 모기업 사장이 투신자살했다는 뉴스가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생에 대한 압박감! 혹시 애춘이 자살…?
애춘이 발을 들었다. 채성은 날듯 재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애춘은 눈을 감고 채성을 뿌리치고 뛰어내리려 힘껏 발돋음 했다. 채성은 힘껏 그녀의 몸통을 두 손으로 둘러 끌어안았다. 애춘은 몇 번 발돋움하다가 기절하듯 쓰러졌다.
“이봐! 정신… 정신 차려!”
침대로 옮기는 중 잠깐 애춘은 눈을 떴다.
“누구세요. 모르시는 분인데 나가주세요, 제발 나가란 말이에요!”
발악하듯 애춘은 고함을 지르더니 오열했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왜, 무엇으로 날 더 괴롭히려고… 이 나쁜 자식아!”
“다 다, 내가 잘못했소. 집…, 집으로 돌아갑시다!”
“놔두세요. 이렇게 더 살아서 무엇 합니까!”
애춘이 생을 포기한 것을 깨달은 채성은 정신이 아찔했다. 아내가 이토록 삶의 비애와 우울증 속에 헤매고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그럭저럭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잘 지내는 줄로만 알았다. 성형의 재미에 젖어 잘 사는 줄로만 알았다.
“나, 장애춘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야!”
애춘의 힘없는 절규는 이미 삶을 포기한 것으로 보였다. 그동안 우울증 증세가 많이 호전되어 나았다고 생각했던 채성은 갑자기 그녀가 두려워졌다. 채성은 핸드폰으로 화순 댁을 불렀다.
“예, 지금 빨리 아파트로 좀 와 주세요!”
채성은 침대 위에 누워있는 애춘을 바라보았다. 침대 맡에는 수면제의 봉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늘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흐느끼던 애춘은 지쳤는지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다. 거친 숨소리를 내며 순한 어린아이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 한 시간이 지나서 화순 댁이 도착했다.
“투신자살을 하려 했습니다.”
“네에?”
화순 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요즘은 애춘이 예전처럼 그렇게 웃지도 않고 의기소침 할 때가 많았었다. 화순 댁이 준비해 둔 냉장고의 회덮밥이 부패되도록 먹지도 않았고 과일도 채소도 모두 무르거나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화순 댁은 애춘이 부르면 필요한 것을 냉장고에 채우고 청소와 빨래를 해주고 돌아가곤 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후 한동안 많이 좋아지는 듯 했는데….”
“자, 우선 이 사람을 평창동 집으로 옮깁시다. 이곳은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이 위험합니다!”
“네, 그렇게 하셔야죠. 언제 또 뛰어내릴지 모르잖아요!”
두 사람은 애춘을 들어 올려 채성의 승용차에 실었다. 마치 죽은 시체처럼 애춘은 인기척을 느끼면서도 꼼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