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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수동태, 어른들은 과잉능동태..
사회

아이들은 수동태, 어른들은 과잉능동태

N 기자 입력 2015/05/13 06:30

아이를 키우면서 그 존재를 알게 된 '육아사전', CCTV 뺨치는 학부모 카톡방, 평판과 경험으로 부모들을 달래고 이끌던 육아공동체는 어디에

"어리다고 마냥 놀려도 될까요?" 어리다고 놀리면 안 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놀려라"다. 이때 '놀리다'는 말은 '짓궂게 굴거나 흉을 보거나 웃음거리로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놀게 해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창대하고, 갈수록 창대해지는 수동태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사전'이란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육아에 필수적인 물품 설명뿐 아니라 자주 나오는 육아 질문(FAQ)에다 우리말 뜻까지 새롭게 쓰는 사전이다. 육아사전의 첫 번째 장은 '출산 준비물' 리스트로 시작한다. 인터넷에서 '신생아 용품'이라고 검색하면 널리 회자돼 예비부모들을 압박하는 80가지 정도 되는 방대한 물품 목록을 볼 수 있다. 물론 이걸 다 살 필요는 없고 여기서 사지 않을 것을 빼야 한다. 그다음 장은 '육아 환경' 편이다. 국민 장난감과 국민 유모차 같은 '국민' 항목과 여러 줄임말을 포함한다. 임산부 게시판을 탐독하다보면 자동차 뺨치게 복잡한 유모차 모델명은 절로 외우게 되지만, 촘파(초음파)로 뱃속 아기가 건강한지 확인하고 베페(베이비페어)에 가서 윰차(유모차)를 구입하는 부모 준비 생활은 어느 정도 몸에 붙어야 할 수 있다. 몇 날 며칠 날밤을 새워야 하는 가격 비교는 필수 과목이고, 장난감·놀잇감 해외직구는 앞서가는 부모들이라면 거쳐야 할 보수 교육 과목이다.



세상의 오해와는 달리 '된장 부모'만 이렇게 갖추기에 열심인 게 아니다. 선량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들은 육아용품을 소비할 때도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고민한다. 가끔 폭주하는 경우를 보면, 이 육아 철학이란 것도 부모들의 푸닥거리 같기는 하다. 아이 내복을 얻어 입히면 오래 산다는 말을 듣고 신생아를 안고 돌아다니며 내복을 얻어온 친구가 있었다. 검소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열중한 나머지 초등학교 시절 친구한테까지 전화를 돌려 아이 물건을 물려받은 친구도 있었다. 내 경우엔 환경호르몬이 없는 물티슈나 나무 장난감을 직접 제작하느라 아기와 눈 맞출 시간이 없었다.

육아용어사전의 세 번째 항목은 '수동태'다.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에게 가장 의존적이고 결정적인 시기, 36개월까지 부모가 먹이고 입히고 들려주고 놀아주는 아이들 세상은 온통 수동태다. 문제는 이 수동태 장은 시작도 창대하지만 갈수록 더욱 창대해진다는 것이다. 아이가 '얼집'(어린이집)에 간 첫해부터 엄마들은 무슨 간식을 '넣어줄까'로 고민한다. '넣어준다'는 말은 만능이다. 엄마들은 항상 아이의 다음 성장 단계를 선행했다가 나이에 맞는 책을 책장에 '넣어주거나' 문화센터에 '넣어줘야' 한다. 장난감은 아이가 원해서 계획 없이 사게 됐다면 '사준 거고', 아이의 성향과 지능 개발을 고려해서 샀다면 '들여줬다'고 표현해야 뜻이 잘 통한다. 취학 전 아이를 둔 부모의 양대 관심으론 어떤 책을 '읽혀야' 할지와 아이가 언제 영어에 '노출되도록' 해야 할지를 꼽을 수 있다.

'놀리다' '풀리다'는 곧 사전 등재될지도


초등학교에 보내도 수동태는 줄지 않는다. "놀려도 될까요"라는 질문은 학부모 상담 게시판에 자주 나오는 질문 중 하나다. 저학년 학부모들은 아이를 하루 몇 시간이나 놀려야 할지, 고학년 학부모들은 보호자 없이 애들끼리 놀려도 될지, 어떤 문제집을 풀려야 할지를 두고 심각하게 토론한다. 국립국어원은 요즘 많이 사용되는 말이라면 비표준어라고 해도 상당히 관대하게 인정하는 편인데 '놀리다' '풀리다'의 새로운 말뜻도 곧 국어사전에 등재될지 모른다.

아이들이 수동인 세상에서 부모는 능동이다. 내 친구는 아이를 사립초등학교에 보냈는데 같은 반 친구 엄마 중 하나는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수업을 마칠 때까지 학교 근처를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체육 시간엔 벤치에 앉아 지켜보다가 아들과 눈이 마주치면 손을 흔든단다. 우리 아이 학교엔 부모들이 들어갈 수 없다는 규칙이 있으니 담장에 귀를 대고 아이들이 나와 노는 소리를 듣는 엄마들이 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자리를 바꾸는데 그때마다, 우리 아이는 얌전한 짝을 만났으면 좋겠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니 가운데 앉혀달라, 갑순이를 좋아하니 그 아이하고만 짝을 하겠다는 엄마들의 '자리 민원'이 들끓는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내 친구는 아이들에게 말 한마디 할 때마다 그 뒤에 있는 엄마들에게 촉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입학식 바로 다음날 한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자기 아이에게 들으니 짝이 어수선한 성격이라는데 짝을 바꿔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단 한 달도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갑돌이가 주먹을 휘두르거나 다른 친구들의 연필을 빼앗았다면 바로 그날 저녁에 전화를 걸어온다. 그 아이와는 갈라놓았으면 좋겠고요, 우리 아이는 급식 시간에 밥을 못 먹어도 야단치지 마시고요…. 엄마들의 민원이 센 학교일수록 교실은 졸 치우고 차 보내는 엄마들의 장기판이다. 이것은 엄마들의 불안 해소, 혹은 욕구 실현을 위한 원격 게임이다.

유치원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법제화되고 나면 그다음엔 교실 차례일지도 모른다. 학부모가 되고 나서 안 사실인데 엄마들의 카톡방은 CCTV 뺨친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별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반 엄마들의 카톡방에 모인다. 준비물, 단원평가, 숙제는 뭐가 있는지 부지런히 문답이 오간다. 그런 이야기 중에 오늘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나셨으며, 어떤 아이가 수업 중에 벌떡 일어났는지도 알게 된다. 복도에선 뛰면 안 되고 현관에선 뛰어도 되며, 다른 반 환경미화와 우리 반 환경미화는 어떻게 다른가 등등 엄마들이 알아야 할 것은 많고도 많다. 우리 선생님은 어느 빵집 빵을 좋아하시는 것 같고 아메리카노를 드시는지, 라테를 드시는지 같은 고급 정보를 수없이 주고받다보면 이 사람이 아이의 선생님인지 우리 회사 부장님인지, 내가 1학년인지 아이가 1학년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학기 말이 되면 만들어지는 뒷담화방


"우리 반 아이들 생파(생일파티)는 어떻게 할까요?" "생선(생일선물) 액수를 정했으면 좋겠어요, 공평하게." "다 같이 한두 시간 '놀리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육아언어사전은 학교를 만나서 이렇게 심화된다.

알콩달콩 정보를 주고받는 카톡방의 3월 밀월기가 지나면 뜻밖의 파국을 맞기도 한다. 누가 누구를 때렸다는 이야기가 올라오면 때렸다는 소리를 들은 아이의 어머니는 분개해서 그 말을 한 사람과 카톡 결투를 벌이기도 한다. 학기 말이 되면 아이들이 어떤 시험을 볼지 '정보'를 주고받는데 시험 결과에 실망한 엄마들은 카톡에선 절대 아이에게 공부를 안 시키는 것처럼 이야기하던 엄마가 알고 보니 학원을 여럿 보내더라는 뒷담화방을 만들기도 한다.

어디까지가 부모들의 강박이고 자아도취인지, 어디까지가 정말 아이를 위한 건지를 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정보, 너무 많은 지식, 너무 많은 소비의 선택지 속에서 살고 있으며 책 하나를 잘못 고르거나 결정적 시기를 놓치면 아이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 수도 있다는 불안에 쫓긴다. 평판과 경험으로 부모들을 달래고 이끌던 육아공동체는 이제 온라인에나 있을 뿐 현실엔 없다.

N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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