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여주 남한강 강천보 ‘준설토 야적장’을 가다
▲ “모래바람 탓에 눈도 못 떠… 더워도 창문 닫고 살아
비오면 준설토 흘러내려 배수로 막아 마을 등 침수
왜 저 많은 모래 퍼냈는지…”
“마구잡이로 강바닥을 파헤친 탓에 또 다른 재앙을 몰고 온 것입니다.”
12일 경기 여주시 남한강 강천보 인근에서 만난 농민 박모씨(62)는 사방으로 둘러싸인 모래산을 쳐다보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4대강 사업을 하면서 파낸 준설토가 남한강변 주민은 물론 자치단체에도 고통만 주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채 5년간 방치돼 있다.
여주시가 임차료를 주고 빌린 농경지에 쌓여 있는 준설토는 봄에는 ‘황사 현상’을 유발하고, 여름에는 토사가 마을과 농경지 등을 덮쳐 피해를 입히고 있다. 강천보 인근 지방도를 따라가면 경주 고분군과 같은 거대한 모래더미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20~30m 높이의 모래더미는 주변 산세를 압도한다. 모래산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모래더미 언덕에 오르자 거세게 몰아치는 모래바람이 눈앞을 가렸다. 봄철 극성을 부리는 황사보다 더 심했다. 이 흙먼지는 3~4㎞까지 날아가 주택과 농경지에 피해를 주고 있다. 야적장 근처에서 만난 한 노인은 “몇 년째 모래바람과 흙먼지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다. 기관지도 나빠져 기침을 달고 산다”면서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사업장이 어떻게 이렇게 관리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야적장 주변 곳곳에는 재해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해 설치한 그물망은 여기저기 찢겨 있었다. 배수로에는 쓸려 내려온 토사가 수북이 쌓인 가운데 잡초만 무성해 제구실을 못했다.
주민들은 2년 전 악몽을 떠올리며 또 수마가 닥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야적장 토사가 마을에서 강으로 흐르는 배수로를 막아 마을과 농경지를 침수시키는 피해가 또다시 우려된다는 것이다. 김영수씨(61)는 “비만 오면 준설토가 쏟아져내려 불안하다”며 “왜 저렇게 많은 모래를 퍼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주시에서는 2013년 7월 300㎜가 넘는 집중호우로 5개 마을에 침수 피해가 났다. 이 중 대신면 양촌리(비닐하우스 3만㎡ 침수)가 가장 피해가 컸다. 당시 주민들은 “준설토 야적장에서 토사가 무더기로 흘러내려 침수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대신면 양촌리 야적장에 쌓아둔 준설토는 여주시 전체 준설토의 10%에 달한다.
이항진 여주시의원(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은 “야적장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장마철만 되면 마을과 농경지가 모래로 뒤덮이고 물에 잠길까봐 걱정이 크다”며 “여주시에 수차례 대책을 요구했지만 비가 올 때마다 임시로 배수로를 터놓는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여주시 관계자는 “별도의 예산을 편성해 우선적으로 4대강 사업장(준설토 야적장)의 배수로 정비 등 수해 방지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