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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새 해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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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새 해의 다짐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8/01/03 01:12 수정 2018.01.04 09:20
▲ 사진: 김덕권칼럼니스트

새 해의 다짐

새해가 되면 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곤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럼 무술년(戊戌年)을 맞이하면서 저 또한 무엇을 다짐하면 좋을까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래도 새 해의 목표와 다짐을 정하고 <지성여불(至誠如佛)>의 심정으로 달려야 연말에 회한(悔恨)에 물들지 않고 그나마 아쉬움이 덜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은 삶에 활력을 줍니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한 차원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그 목표를 이루었을 때에 느끼는 희열(喜悅)은 무엇에 비길 수없이 큰 보람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저는 심신을 수양하고 우리 [덕화만발] 카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삼불(三不)’을 무술년의 새해 다짐으로 삼아 보았습니다. ‘삼불’은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금기사항 세 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불위(不違)’ ‘불사(不辭)’ ‘불퇴(不退)’를 말합니다. 불위(不違)는 어기지 않는다는 것이요, 불사(不辭)는 버리지 않겠다는 뜻이며, 불퇴(不退)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마음의 다짐입니다.

첫째, 불위의 도입니다.

불위란 도(道)를 어기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럼 도란 무엇인가요? 무릇 ‘길’을 이름입니다. 길이라 함은 무엇이든지 떳떳이 행함을 이름이지요. 그 길에는 <천도(天道) 지도(地道) 인도(人道)>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늘이 행하는 것을 ‘천도’라 하고, 땅이 행하는 것을 ‘지도’라 하며, 사람이 행하는 것을 ‘인도’라 합니다.

이 ‘인도’에도 부모와 자녀의 도, 상하(上下)의 도, 부부의 도, 붕우(朋友)의 도, 동포(同胞)의 도가 있습니다. 이 여러 가지 도에 당연한 길을 아는 사람이 곧 도를 아는 사람이요, 당연한 길을 모르는 사람은 곧 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중에도 제일 큰 도는 곧 우리의 본래 성품(性品)인 <불생불멸(不生不滅) 도>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도>입니다. 이 두 가지 도를 아는 사람이 가장 큰 도를 아는 사람이며, 이 두 가지도에 어긋나지 않겠다는 것이 바로 ‘불위’인 것입니다.

둘째, 불사의 도입니다.

이는 사람을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사람이 서로 사귀는데 그 좋은 인연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대개 유념(有念)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하고, 무념(無念)할 자리에 무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념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무슨 일이든지 남에게 은혜를 입고도 그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은혜를 입힌 처지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섭섭함을 줄 때에는 의리(義理) 없이 상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념할 자리에 무념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무슨 일이든지 남에게 은혜를 입힌 다음 보답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은혜 입은 사람이 혹 내게 잘못할 때에는 전일에 내가 은혜 입혔다는 생각으로 더 미워하는 마음을 내는 행위입니다. 바로 이런 행동이 사람을 버리는 행위입니다. 사람을 버리면 세상을 버림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재상이었던 관자(管子)는 ‘삼수(三樹)’에서 이렇게 말합니다.「終身之計 莫如樹人 一樹百獲者 人也」‘평생을 두고 해야 할 일은 사람을 기르는 일이니, 하나를 심어 백을 얻는 것이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진시황의 생부(生父)이자 <여씨춘추(呂氏春秋)>를 편찬한 진나라의 여불위(呂不韋)는 일찍이 장사에 투자하면 그 이익이 백배나 되겠지만 사람에게 투자하면 그 이익이 무한하다고 했지요.

그리고《대학(大學)》에는「得衆得國 失衆失國, 즉, 사람을 얻으면 나라를 얻을 것이요, 사람을 잃으면 나라도 잃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맹자(孟子) 역시 <진심편(盡心篇)>의 ‘군자삼락(君子三樂)’에서,「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즉,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로 크나큰 군자의 즐거움이다.」라고 하였으니, 새삼 사람의 소중함을 더 일러 무엇 하겠는지요?

셋째, 불퇴의 도입니다.

한 번 세운 서원(誓願)은 기어이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발현(發現)입니다. 그럼 우리의 가장 큰 서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진리와 합일하는 것입니다. 그 서원은「天地靈氣 我心定 萬事如意 我心通 天地與我 同一體 我與天地 同心正」즉, 진리와 더불어 내가 하나 된다는 말이지요. 진리와 하나 되는 그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부처 아닌가요?

그 불퇴의 도 가운데의 하나가 메마르고 삭막한 이 사회를 반드시 ‘맑고 밝고 훈훈하게 만드는 덕화만발의 세상으로 인도하겠다.’는 서원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나날이 혼탁해가는 이 세상을 무슨 수로 맑고 밝고 훈훈한 낙원세계로 이끈다는 말이냐”고 힐난(詰難) 할지도 모릅니다. 태산이 높다고 오르지 못할까요? 저 한 사람 아니 전 세계에 편만해 계신 우리 덕화만발 가족 모두가 저와 한 마음 한 뜻으로 실행해 간다면 언젠가는 이루지 못할 일도 아닐 것입니다.

옛날의 서가모니 부처님도 무려 500생을 닦아서 부처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탓합니다. 해 보는 것입니다. 저 한 사람이 행하면 저 한 사람이 행 한 것만큼, 우리 덕화만발 전 가족이 힘써 행하면 행한 만큼 낙원은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속적인 욕망을 넘어 특별한 신심(信心)으로 행하는 것이 서원입니다. 내 한 몸, 내 한 가족을 뛰어넘어 이웃과 세상과 나라, 세계, 일체생령(一切生靈)을 위해 우리의 정성을 다 바치는 사람이 보살이고 부처입니다.

원(願)은 큰 데에 두고, 공(功)은 작은 데에부터 쌓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우에는 괘념(掛念)치 말고 공덕 짓기에만 정진하고 또 정진하면, 자연 큰 공과 큰 대우가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어차피 한 세상입니다. 초로(草露)의 인생을 살고 갈 것인가 아니면 불보살의 인격을 누리고 살 것인가는 각자의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불위(不違)’는 도를 어기지 않는다는 것이요, ‘불사(不辭)’는 한 사람도 버리지 않겠다는 뜻이며, 불퇴(不退)는 한 번 세운 서원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마음의 다짐입니다. 어떠한 역경 · 난경 앞에서도 이 새해의 다짐을 조금도 쉬지 않고 계속 정진하여 물러가지 아니하는 것, 이것을 우리의 새 해 다짐으로 내세우고 또 한 해 힘차게 달려가면 어떨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월 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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