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뉴스프리존]박종철 기자= 제천미술관 건립을 놓고 제천시와 제천미술협회 등 제천미술계가 정면 충돌하고 있다.
제천시가 구 노인종합복지회관 건물에 제천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특정 작가의 작품 전시를 위한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미술협회 등 미술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제천시와 미술계의 갈등은 최근 문화재단과 미술협회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제천은 지금 미술관건립을 둘러싸고 홍역을 앓고 있다.
제천시와 제천문화재단이 시립미술관 건립에 반발해온 제천미술협회에 올 사업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 것을 놓고 ‘보복성’논란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지난 9월 24일 제천문화재단이 제천미술협회의 사업비에 대해 '보조금 부정수급은 범죄다'는 현수막을 내걸며 제천미술협회를 범죄단체로 몰았다.
이에 대해 제천미술협회는 '이미 확정된 2021년 문화예술지원기금 지원 불가 결정은 보복성 행정인가?"라는 강수로 대응했다.
이러한 갈등은 제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제천시립미술관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비춰진다.
시가 추진하는 김영희 작가 닥종이 공예 작품 전시를 주제로 한 제천시립미술관 건립과 관련해 미협이 반발의 수위를 낮추지 않자 초강력 압박용으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제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제천시립미술관 건립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 내막을 들여다 보자. [편집자 주]
# 사안의 발단과 논란의 과정
제천시는 구 노인복지관을 이전하면서 이 건물을 제천시립미술관으로 만드는 사업을 착수했다.
시는 2018년부터 특정 작가를 선정한 후 그 특정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고, 구 노인복지회관을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미술관을 조성하는 그림을 그렸다. 특정작가는 김영희 닥종이 인형 작가다.
그후 제천시는 2020년 9월 25일 김영희 미술관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 용역비를 제천시의회에 상정했지만 당시 제천시의회는 이 용역비 상정안을 부결했다.
제천시의회에서 용역비를 부결한 것이 공론화되자 이를 뒤늦게 알게된 제천 미술인이 이 사업의 부당함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를 기점으로 제천 미술인들은 제천시의 그릇된 미술 행정임을 지적하는 한편 이를 시정하기 위해 제천시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10여개월 동안 많은 의견을 개진하였지만 미술인들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천시는 2020년 10월 27일 주민설명회를 개최해 참석한 주민들 투표를 통해 김영희미술관 건립 찬성14 반대2 라는 결과를 얻었다. 이에 대해 제천미술인들은 '이날 주민설명회는 제천시가 의도적으로 미술인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개최한 설명회로 정당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제천시의 입맛에 맞게 개최한 주민설명회와 그 참석 인원으로만 의견을 물은 것으로 공신력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제천미술협회가 2021년 5.9.~6.24.까지 46일간에 걸쳐 제천미술협회 회원(62명)을 상대로 '김영희 닥종이미술관건립'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찬성 1명, 반대 54명이라는 제천시의 조사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음을 밝혔다.
이 두 조사결과만으로 볼 때 제천시민들은 대부분 찬성하는 반면 미술인들만 반대한다는 모양세로 보여진다. 하지만 제천시가 개최한 주민설명회에 대해 미술협회는 '제천시가 제천시에 우호적인 단체 및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라고 진정성을 폄하했다.
제천미술협회가 조사한 제천미술인 대상 조사에서는 미술인 전원이 제천시가 준비하는 미술관건립 사업을 찬성하지 않고, 제천미술인이 바라는 시민과 공공미술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제천시립미술관 건립이 필요하다에는 96.6%가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제천미술인들은 올바른 미술관 건립을 위해서는 미술관의 개념, 취지, 목적 등이 분명해야 하는데 제천시가 진행하는 미술관건립의 청사진은 독선적이고 편협적이다며 제천시의회에 간담회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제천시의회는 2020년 11월 23일 미술인들과 간담회를 열고 미술인들의 의견을 청취했지만, 미술인들의 요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채 2020년 추경 예산에서 시의회는 용역비 상정안을 의결했다.
한편 당초 김영희미술관이란 이름으로 추진되었던 제천미술관은 ‘제천시립미술관’으로 명명됐다. '김영희미술관'으로 추진하는데는 행정적인 문제와 미술계의 반발이 너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후 제천시는 2021년 초부터 타당성조사를 위한 용역을 의뢰하고 타당성조사를 위한 중간보고회(2021.4.27)와 최종보고회(2021.6.17)를 거쳤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미술인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게 미술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사안이 이렇게 흘러가자 2021년 7월 12일 제천 미술협회가 주축이 되어 제천사생회, 색누리회, 제미회, 충북서도협회, 충북미술협회, (사) 한국미술협회가 뜻을 모아 올바른 제천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칭 비대위)’가 구성 됐다.
비대위는 성명서를 통해 "합목적성에서 벗어난 부지 선정과 공간 계획, 운영 계획 등을 바로 잡고자 한다"고 공표했다. 또 비대위는 올바른 미술관 건립을 위해 제천시와 충청북도,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천 미술계의 의견을 개진했다.
비대위가 공식 출범되자 제천시는 2021년 7월 22일 56개 시민 단체들로 구성된 ‘범시민 추진위원회’를 발족했고, 추진위원회는 제천시가 추진하는 미술관 사업에 찬성하는 성명서를 발표 했다.
이러한 논란이 있는 가운데 문체부는 지난 7월 30일 제천시가 제출한 제천시립미술관 건립에 대한 타당성 심의를 진행했다. 문체부의 타당성 심의 내용에는 제천시가 추진하는 제천시립미술관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과 미술계의 반응이 적시됐을 것으로 보인다. 또 심의자료에는 시민은 물론 제천미술계도 찬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을 것이라는 미술계의 우려가 있다.
하지만 비대위가 문체부에 미술인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제천시의 독선적 미술관 추진을 지탄하는 진정서를 제출한 터라 문체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아직 미지수다.
비대위는 '미술관 건립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민들과 미술계 모두가 공감하는 방향으로 올바르게 추진되길 바라는 것이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문체부는 1차 서류심의를 거친 후 지난 9월 24일 현장실사를 진행했다. 문체부의 실사를 미리 알지 못했던 비대위는 뒤늦게 실사 현장에 도착해 제천시 직능 단체가 동원된 '제천시시립미술관' 찬성을 외치는 주민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실사 장소인 구 노인종합복지회관 앞에는 제천미술협회가 미리 집회신고를 해 놓았기 때문에 다른 단체나 주민들이 집회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실제 현장은 법적 권리 및 제재가 보장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체부는 1차 서류심의, 2차 현장실사를 취합해 3차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비대위는 문체부의 현장실사를 통해 제천미술계의 입장을 전달하고 제천시의 일방적 추진을 알리고자 했으나 동원된 주민들의 방해로 그 뜻이 무산된 듯 하다.
이렇게 시작된 제천시와 미술계의 갈등은 문화재단이 보조금 지급을 놓고 미술협회의 부당한 지출을 문제삼으며 미술협회를 범죄단체로 몰아가면서 제천시, 문화재단과 미술계의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그동안 물밑 추진되왔던 '제천시립미술관' 건립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미술계의 마음을 포용하지 못한채 수년째 표류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처음부터 제천미술계의 의견을 배제한 채 독단적으로 이 사업을 추진해 온 제천시의 일방통행식 행정에 기인한 당연한 결과다'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 제천시가 만들고자 하는 '김영희 미술관'의 주인공 김영희는 누구인가?
제천시와 제천미술계의 갈등의 가장 큰 요인은 제천시가 건립하려는 미술관이 특정인을 위한 전시공간으로 구상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제천시는 "김형희 작가만을 위한 '김영희 미술관'이 아니고 '제천시립미술관'이다"는 해명을 하고 있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 보면 '김영희 작품 전시'를 위한 미술관으로 평가되기 충분해 보인다.
제천시가 내놓은 '미술관 건립 계획도'만 보더라도 총 4층 규모의 전시 및 보관, 작업실 중 1,2,3층의 공간을 모두 김영희 작가의 작품전시 및 작업실 등 상설전시공간으로 구성되고 4층만 기획전시실, 공용공간 등으로 계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제천시는 처음부터 '김영희 닥종이 공예가'를 염두에 두고 기념관 또는 미술관 건립을 계획한 것이 그동안의 과정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지금도 '제천시립미술관'이란 명칭으로 미술관을 건립하겠다면서 미술관의 대부분의 공간을 김영희씨의 작품 전시공간과 연구실로 사용하겠다는 청사진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천시는 왜 '제천시립미술관'을 김영희씨를 위한 미술관으로 만들려고 할까. 김영희씨의 존재가치와 그의 작품의 가치가 과연 제천시립미술관을 '김영희 미술관'으로 꾸밀 많큼 미술계의 대단한 족적을 남긴 작가인가?
제천시가 당초 김영희 닥종이 공예가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제천미술관을 만들게 된 배경에는 김영희 작가의 명성과 인지도도 있지만 제천시의 강력한 의지가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천시의회에 미술관 건립 타당성 검토 용역비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의회에 보고한 내용을 보면 제천시가 이 사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제천시가 그토록 공을 들이는 김영희 작가와 그 작품세계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시민들 주로 주부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김영희씨는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란 책의 저자다. 닥종이 공예가로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닥종이 공예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유명 작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김작가는 지난 1981년 독일로 건너가 독일 등 유럽을 주 무대로 40년간 작품 활동을 벌여왔고 1981년 작품집 ‘인형들의 가족’이 편집 출간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71년 그의 작품이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소개돼기도 했다. 김작가의 닥종이 예술작품은 한국적 질감이 물씬 베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작가는 미술작품 외에도 작가로서 1993년 출간한 에세이집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를 집필해 5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고 2012년에는 '엄마를 졸업하다'라는 에세이를 펴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천은 나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작든 크든 작가는 설 자리에 서야 한다” 면서 "작가의 정서와 연결이 돼야 이른 바 ‘뮤지엄’이 될 수 있다”고 제천과 '닥종이 예술'과의 인연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면면을 볼 때 김영희 닥종이 공예가의 예술성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지역민들은 김영희 작가의 인지도에 비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주로 외국에서 작품활동을 해 왔고 닥종이 공예가 대중에 접하기 쉬운 분야가 아니기 때문일 수 있다.
# 김영희 미술관 건립을 위한 과거 행보와 제천시 추진 과정
김영희 미술관 건립 시도는 제천시가 추진하기 이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최초 2008년 원주가 김영희 작가의 요청에 따라 '한지조형박물관'건립을 추진했지만 원주시의회에서 제동이 걸리면서 무산됐다.
당시 원주시는 호저면 고산리 구 입암분교 부지 2479㎡에 사업비 25억원을 들여 닥종이 인형 전용 공간인 '한지 조형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을 원주시의회에 제출했지만 원주시의회는 한지관련 사업의 중복투자 등을 들어 반대했다. (2008.9.11 강원도민일보 보도 내용 중)
이후 김영희 작가는 2010년∼2014년까지 꾸준히 제천시에 '닥종이 김영희미술관 건립'의 문을 두드렸지만 제천시에서 논의는 되었지만 공론화되지는 않았다.
또 김 작가는 원주시에 이어 부산시에도 미술관 건립 유치활동을 벌였지만 이 또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이 김 작가는 2008년부터 원주, 부산 등지에서 본인의 미술관을 건립하기를 희망하고 유치활동을 벌였지만 타 지역에서 유치에 어려움이 있자 제천이 고향이라는 명분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제천에 김영희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는 미술계의 전언이다.
제천시에서 본격 논의 된 시점은 2018년 11월 16일 “김영희 닥종이 박물관 유치하자”며 '유치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부터다. 당시 김 작가는 박물관 위치에 대해 의림지 일원을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김 작가는 제천시에 '김영희 박물관' 설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고 제천시 유력인사의 제안으로 본격적으로 '김영희 미술관 건립'을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020년 12월 16일 제천시의회의 질의에 제천시가 답변을 통해 밝힌 내용이기도 하다.
이에 앞서 이상천 제천시장은 2020년 6월18일 시의회에 보고한 ’노인종합복지관 확장·이전 보고회‘에서 “현 복지관 건물이 이전되면 김영희 닥종이 전시관 등 관광객을 모으는 문화시설로 활용할 것을 신중히 검토 중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제천시는 "김영희 닥종이박물관 유치추진위가 가동 된 후 귀국한 김영희 작가의 의지 표명에 따라 미술관 건립사업을 본격 가동하게 됐다"고 했다.
그 후 김영희 작가의 '제천김영희미술관' 건립행보는 2020년 8월 제천시의회에 업무보고를 시작으로 본격 논의되고 추진됐다고 보여진다.
# 제천미술계가 반발하는 이유
비대위는 '예술은 창작성, 예술성을 포함하여 과거를 토대로 현재보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며 편향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천시의 일방통행식 행정에 대해 지적한다.
제천시립미술관 건립 추진에 있어 제천시의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진행과정, 제천미술인의 의견이 왜곡되게 반영된 점, 공공성을 져버린 비상식적인 특혜성 사업계획, 합목적성에 부합하지 않는 공간계획과 운영계획 등이 그것이다.
비대위는 성명서를 통해 '제천시립미술관은 자료의 수집·관리·보존·전시,교육 및 전문적,학술적인 조사,연구, 보존과 전시 등의 공공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특히 지역을 대표하는 공공미술관으로서 제천 시민과 미술관을 찾는 관람자에게 다양하고 폭넓은 미술세계를 제공함은 물론 문화예술향유의 공간으로 활용되야 하지만 제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미술관은 제천시립미술관이라고는 하지만 실상 내용은 한 작가의 개인작품을 10억에 매입하여 미술관을 건립하는 특혜성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즉, 제천시가 추진하는 제천시립미술관은 공립미술관의 기능을 상실한 무늬만 공립인 개인미술관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나아가 비대위는 각기 다른 여러 미술분야의 훌륭한 작가와 다양한 미술세계를 외면하고 미술분야 중 공예, 공예분야 중 한지공예, 한지공예 중 닥종이 작업을 하는 한 작가만을 위해 공공의 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이 편협하고 편향적이라고 지적한다.
제천 시민들에게 다양한 미술세계와 지역미술 역사를 접할 기회를 외면하고 닥종이 인형 작품만을 보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다.
또 '제천시가 지역미술인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사업 과정을 공유하지 않고 일방적이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김영희 작가의 작품 전시를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정해 놓고 그에 맞춰 모든 행정적 절차를 꿰맞추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미술협회 한 회원은 "제천문화재단 대표가 개입하여 제천시와 함께 독일 뮌헨의 해당 작가를 방문하고, 해당 작가와 업무협약을 한 것은 밀실행정이며, 선후가 뒤바뀐 독선 행정이다"고 비난했다.
그는 "오늘날 제천미술역사를 만들어 낸 의미 있는 많은 미술인이 있다. 현대미술의 거장 이중섭 화가가 한국의 고호로 칭송하는 제천의 김례호 선생을 비롯해 제천에 서양화 씨앗을 뿌리내린 윤석원 선생, 한지작업의 창시자 최창홍 선생, 서양회의 거장 안영목 선생, 송계에 시화비를 세운 정대원 선생, 현대조각의 보석인 유영교 선생, 한국예총 예술인대상을 수상한 현수근 선생,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 선생, 서울대 미술대학장을 역임한 조각가 최인수 교수, 도자미술의 최고 권위자 서울산업대 권영식 교수 등 제천을 빛낸 수많은 미술인들이 있다"면서 "이러한 유명한 제천출신 작가들도 당연히 제천미술사에 족적을 남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제천시가 이러한 역사적 가치와 사실들을 무시하고 마치 제천에는 김영희 작가만 유명작가인 것처럼 편향되게 해석하여 그를 위한 시립미술관을 계획하는 것은 제천 출신 수많은 자랑스런 미술인들을 폄하하고 배척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고도 했다.
한편 비대위는 지난 7월30일 이와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제천시립미술관 건립에 따른 문제점'이란 의견서를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했다. 문제부가 그동안의 심사와 실사를 통해 듣고 보지 못한 지역미술인의 의견을 제고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 미술계가 지적하는 모순점
비대위가 지적하는 '제천시립미술관' 건립의 본질적 모순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제천시는 사업 초기부터 미술인과의 의견수렴 과정이 전혀 없이 편파적이고 독선적으로 진행했다. 이는 공정성과 공공성을 배제한 특혜성 논란을 야기시켜 지역주민과 계열간 분열만 초래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한 개인의 작품으로 기획 전시되는 사립미술관에 제천시립미술관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 없고, 미술분야의 극히 일부문인 닥종이 인형 작품만 전시된 미술관을 시민들에게 공공미술관으로 제공 해서는 안된 다는 것이다.
김영희 작가에 대해 한국미술사에서에서 인정하고 평가하는 위상은 제천시가 평가하는 위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이러한 한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사업도 확정하기 전에 해당 작가와 작품구매 협약을 마친 것은 행정의 선과 후가 바뀐 졸속행정이란 것이다.
제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제천시립미술관은 공립이 아니고 공립으로 포장된 사립 김영희 개인미술관임이 분명하다는 것. 지역미술의 자료관리, 보존 및 후대에 물려줄 향토미술의 역사적 가치는 축소, 배제되는 등 폄하되고 있다는 것 등이다.
또 미술계는 구 노인종합복지회관 자리에 시립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은 미술관 목적에 맞지 않는 건물구조와 차량 동선과 주차 등을 고려하지 않은 비합리적인 모순점도 함께 지적한다.
즉, 현 계획 위치의 건물에서는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아 교통 혼잡이 예견되고 실내의 동선 등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으며, 미술관 환경의 중요한 요소인 원활한 진입로, 쉼터, 휴식 공간, 조각공원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무늬만 미술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존의 건물로 아무리 포장을 잘 하여도 일반적인 전시장의 필수 요건인 3.5~4M의 층고를 유지할 수 없고, 계획된 사업지는 작품의 보존, 전시, 연구와 관람자의 감상, 체험, 휴식 등의 합목적성을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제천시의 입장과 미술계의 주장에 대한 해명
제천시는 '제천시립미술관' 건립을 김영희 작가를 위한 공간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에는 달리 이견이 없어 보인다. 당초 제천시가 추진하고자 했던 미술관의 명칭이 '김영희 미술관'으로부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제천시의 목적과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제천시는 현재 추진하는 미술관을 '작은 미술관'으로 소개하면서 타 지자체나 일반적인 미술관과는 그 차별성을 역설하고 있다.
즉, 제천시립미술관은 도시재상차원에서 비어 있는 구 노인종합복지관을 리모델링해서 만드는 미술관인 만큼 타 지자체의 미술관과는 성격 자체가 다르고 사업비도 60억원 정도로 타 지자체의 미술관 건립 비용의 10/1수준으로 규모가 작은 그야말로 '작은 미술관'으로 타 지자체가 추진하는 정식 미술관과는 모든 면에서 다르다는 설명이다.
'김영희 작품 전시'논란에 대해 시는 "김영희 작가의 작품전시 공간에 대한 접촉은 과거 최명현 시장 재임때 부터 논의가 있었고, 이근규 시장 때도 제안되었던 것으로 어느날 갑자기 추진하는 것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제안되온 것을 지금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고 해명했다.
또 시는 "김영희 작가는 국내에서 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작가로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면서 "김영희 작가가 작품을 기증하겠다는 제안에 따라 이를 전제로 이 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이고, 그 동안 현장실사 및 평가를 거쳐 경쟁력있는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면 1석 3조의 효과를 거둘수 있다는 판단하에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추진배경을 역설했다.
10억 작품구입비 지적에 대해 시는 "김영희 작가의 작품은 실제 거래가격으로 구입할 경우 400점을 구입하려면 수십억원이 들지만, 김영희 작가가 선뜻 작품기증의 뜻을 밝힘에 따라 작품사례비 명목으로 점당 200만원~300만원으로 책정한 금액이지 작품구입비의 성격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시는 비근한 예로 울산광역시가 미술관 건립시 150점을 수십억원에 구입한 사례를 제시했다.
작품구입비(사례비)의 예산 집행 관련 지적에 대해서는 "작가가 작품의 기증을 제시하면 의회 심의를 거쳐 조례를 제정해 사례비로 지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또 시는 '시립미술관'의 등급기준은 100점 이상의 작품이 보유되야 하기 때문에 시립미술관을 건립하기 위해선 100점 이상 작품을 구입해야 하는데 김영희 작가가 기증의향서를 제출한 상태이기 때문에 작품 보유 문제는 해결된 상태다'고 밝혔다.
김영희 작가가 제천시에 작품기증을 제안하면서 "제천시에서 사례비로 받게 되는 돈은 과거 어려웠던 시절 만들었던 작품은 대부분 매각해 생활비로 사용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이를 다시 회수하는 비용으로 사용하고, 남는 돈은 신규 창작비용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시는 제천시립미술관을 김영희 작가의 작품전시를 위주로 구상하는 배경에 대해 "현실적으로 다른 지역 작가들의 미술을 전시할 경우 이용객이 많지 않을 수 있다. 누가 잘 알려지지도 않은 작품을 보러 가겠느냐"면서 "따라서 지금 추진하는 미술관은 사실상 기념관의 성격이지 정식 미술관이 성격이 아니다"고 밝혔다.
결국 제천시의 추진 목적과 의도는 경쟁력있는 미술관을 만들어 시민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미술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천시민을 위한 것이고 더 나아가 외지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목적이란 논리로 귀결된다.
미술인들은 물론 많은 시민들이 우려하는 주차난에 대해 시는 "전혀 문제될 것 없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아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량의 정체 및 혼잡, 주차난은 오히려 즐거운 비명이 아니겠는가"라며 "그런 상황이 되면 그때가서 해결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제천시의 이러한 입장과 해명을 제천 미술계와 제천시민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제천시가 제시하고 주장하는 정당성과 공공성이 작금의 논란과 갈등을 해소하기 보단 더 큰 논란과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제천시의 입장과 해명은 제천시 문화 담당자와의 인터뷰에 기초한 내용임]
# 타 지자체는 미술관 건립을 어떻게 추진할까?
미술관 건립에 대한 사례는 많은 지자체 및 외국의 사례에서 모범적인 추진과정을 찾아 볼 수 있지만 비근한 예로 제천시와 인접한 충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충주시립미술관건립'을 위한 추진 과정을 살펴보자.
충주시는 '충주시립미술관' 건립 추진에 앞서 '충주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공청회'를 위해 지난 2021년 6.1.~7.19.까지 준비기간을 갖고 공청회를 개최했는 바, 이 공청회 인원 50명 중 일반인 17명 미술인 23명 문화계 4명 관,의회 4명 등으로 참석인원을 배정했다. 50% 이상의 미술인들이 참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준비기간에는 중점적으로 미술인들의 의견을 수렴했고, 미술인들의 80%가 의견수렴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청회의 구성은 좌장에 건국대조형미술학과 학과장을 중심으로 민족미술협회충주지부, 충주목향회, 한국미술협회 충주지부, 건축디자인대표, 지식산업연구원 등 미술계 관련자로 구성했다.
충주시는 공청회에 앞서 6차례에 걸쳐 미술인들과 회의를 거쳤고, 타당성조사 기본계획을 위한 회의도 거쳤다. 공청회는 기획단계부터 소통과 열린대화를 원칙으로 하였으며 미술인들의 요구에 따라 개최됐다.
충주시가 계획하는 미술관은 '로컬미술관'으로 충주시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통해 현 미술인들의 활성화 공간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모토로 하고 있다. 충주시립미술관의 테마는 '중원의 미술관'이다. 국 내,외 중원 미술이 융합된 전시공간으로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는 것이다.
또 충주시립미술관은 충주의 정체성 확보에 주력한다. 동시대 미술품이 제대로 확보돼지 않아 세계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을 인식해 타당성 조사전에 이점을 주목해 흩어져 있는 중원의 미술작품을 확보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계 및 도면계획, 유지관리, 지역특성 등도 타당성 조사시 빠뜨리지 말아야 할 요소에 포함했다.
건립 후보지는 5개 후보지를 대상으로 6회에 걸쳐 심도있는 검토를 하고 있는 중이다.
충주시는 '미술관 사업은 현재보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미래지향적 설계, 자연환경과의 조화, 시설확장가능성, 주거와 교통이 접합, 외지인의 동선을 배려한 진입동선의 편의성, 주차공간의 확보' 등을 미술관 건립의 기본으로 놓고 추진중이다. 충주시는 미술관 입지 선정에서 부터 미술인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있는 듯 보인다.
물론 충주시가 계획하는 '충주시립미술관'과 제천시가 추진하는 '제천시립미술관'은 그 규모와 사업비 여건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제천시립미술관은 제천시의 설명대로 '작은미술관'형식의 '기념관'인 것도 부인할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크든 작든 '제천시립미술관'이란 이름으로 추진되는 미술관 건립에 미술계의 의견이 배제되고 무시되서는 안된다는 지적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 아무리 '작은 미술관'이라 할지라도 지역미술인과 출향미술인들이 배제되고 특정 작가를 위한 미술관으로 특정되는 것은 지역 미술의 퇴보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는 지적도 고려할 부분이다.
이제 '제천시립미술관'은 타당성 조사와 최종보고회 및 실사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로 그 역할이 넘어간 상태다. 문체부가 남은 3차 심의를 통해 제천시립미술관의 가·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제천 시민과 미술인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뜨거운 감자'가 된 제천시립미술관 건립에 문체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