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한 남자가 카메라를 들었다. 피사체는 세 여인이다. 아내와 딸,그리고 어머니다. 주인공은 쌈지길 대표를 역임한 천호선씨. 그의 아내는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지낸 김홍희 여사다.
“그동안 찍어 준 아내 사진을 살펴보니 상당수가 한국미술의 ‘한 장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미술의 작은 아카이브가 될 것 같아 아내의 도움을 받아 정리를 해 보았다. 주변의 권유로 전시까지 이어지게 됐다.”
31일까지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는 전시를 위해 그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딸(천민정 작가)의 전시장을 찍은 사진도 합류시켰다. 기왕에 하는 전시니 하늘에 계신 모친도 함께 참여시켜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막상 어머니 사진을 고르려니 제대로 찍어드린 사진이 없었다. 생각끝에 할수없이 생전에 어머님이 제일 좋아하시던 꽃 부겐베리아를 떠올렸다.”
그는 전시장에 부겐베리아 화분을 어머니 분신으로 내놓았다. 말하자면 화분 설치작품이다, 그는 전시를 대비해 집에서 부겐베리아를 미리 키우고 가꾸웠다. 어머니가 자주 가시던 산사 사진도 곁들였다. 애끓는 사모곡들 보는 듯하다.
천호선은 연세대 철학과 졸업후 68년부터 35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뉴욕문화원 문정관, 문공부 문화예술국장, 국회문광위 수석전문위원 등을 지냈다.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석사, 중앙대 첨단영상전문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고등학교시절 부터 사진찍기를 좋아했지만, 10년전 아이들이 디지털 카메라를 선물해준 이후 본격적으로 사진작업에 몰두했다. 2013년부터 20여회의 사진그룹전에 참여하여 왔으며, 현재 ‘다락’ 사진동호회, ‘57포토클럽’, ‘두리사진연구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이 79세에 첫 번째 개인전 ‘세여자’를 열게 되었다. ‘세여자’는 어머니, 아내, 딸 등 나를 둘러싼 세여자의 각기 다른 삶을 사진작업으로 조명한 것이다. 세여자는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기 한참 전 뉴욕문화원에 근무하던 8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40여년간 촬영한 사진들 가운데 세여자와 관련된 사진을 3부분으로 구성하여 만든 내 생의 단편적 기록이기도 하다.”
그의 아내 김홍희의 사진속엔 뉴욕에서 만난 백남준을 비롯해 플럭서스 작가들, 한국 문화계에서 만난 다양한 인물들과의 소중한 인연이 담겨있다. 특히 플럭서스 관련 사진은 미술사적 관점에서 보존 가치를 검토해볼 만한 것들이다. 미술작가이자 미술대학 교수인 딸 천민정 부분은 전시회에서 발표한 퍼포먼스 중심으로 엮었다.
“어머니 부분은 생전의 사진보다는 어머니께서 좋아하셨던 절과 꽃을 주제로 했다. 이번 전시의 하일라이트다. 아내와 딸의 사진이 다큐멘터리라면, 어머니를 추억하는 절과 꽃 사진에는 카메라 앵글로 포착한 나의 예술적 의지가 반영돼 있다.”
그는 불자셨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6.25전쟁으로 피난가던 어느날 새벽. 8살의 어린 아들의 손목을 잡고 깊은 산속 절에 가서 부처님께 한없이 절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비구니 수도처인 성북구 보문사에 다니시며 중학시절부터 산에 다니고 바위를 타던 나의 무사안녕을 기도하셨다. 어머니의 불공덕인지 아직까지 별탈없이 산을 다니고 있다. 어머니는 나무와 꽃 가꾸기를 좋아하셨다.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 받았는지 나도 사진, 산행과 함께 원예와 텃밭가꾸기 생활을 즐기고 있다. 절과 꽃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어머니의 분신적 대리물이자, 어머니의 혼백과 교감할 수 있는 영매와도 같다.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100여개가 넘는 사찰의 사진을 찍었으며, 특이한 불교행사 장면들은 동영상으로도 만들었다. 다양한 기법으로 꽃 사진들을 찍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꽃 ‘부겐베리아’ 화분도 함께 전시한다."
그의 아내 김홍희는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미술관 관장직을 지낸 미술인이다.
”나는 백남준, 플럭서스, 페미니즘을 기본축으로 미술활동을 펼쳐온 김홍희 삶의 목격자이자 지지자이다. 뉴욕에서 시작 덴마크, 캐나다, 한국에서 미술사 석,박사를 마치고 쌈지스페이스관장, 광주비엔날레총감독, 경기도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관장의 경륜을 거치며 아내는 미술계의 공인이 되었다. 지난 40년간 그가 관여하고 기획한 다양한 전시 장면, 작가들과 함께한 무수한 파티 장면들은 스스로를 ‘아줌마 큐레이터’, ‘할머니 큐레이터’로 자처하며 큐레이터 삶을 영위해온 김홍희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의 딸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창작,전시활동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딸 천민정은 어려서부터 작가들과 어울려 지낸 집안 분위기 탓인지 본인도 나중에 당연히 작가가 될 것이라고 믿었고, 실제로 작가가 되었다. 해외공관에 근무하던 아빠를 따라 초,중고등학교를 해외에서 마치고, 귀국하여 이화대 회화과를 졸업한 후 미국과 유럽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현재 메릴랜드미술대학(MICA)에서 20여년간 교수 생활을 하면서 뉴욕 유명 갤러리의 전속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미국인과 결혼하고도 미국 시민권 대신 영주권을 고집하고 있는 딸은 특히 북한을 주제로 한 ‘폴리티칼 팝아트’로 정평을 받고 있다. 2018년 부산비엔날레에 초대되어 북한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초코파이로 관객참여 설치미술을 발표하여 큰 화제를 모았다. 딸의 퍼포먼스는 항상 나의 신나는 사진 소재가 되고 있다. 딸은 미술이 중심인 우리 집안의 활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