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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영, 메리 오버링이 보여주는 ‘감각의 경계 너머’..
문화

박두영, 메리 오버링이 보여주는 ‘감각의 경계 너머’

편완식 기자 wansikv@gmail.com 입력 2021/09/03 13:10 수정 2021.09.03 17:33
갤러리 신라 서울,가나아트 나인원 전시
동서양의 추상에 대한 태도 비교기회

[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두 작가의 추상회화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나는 갤러리 신라 서울에서 10월 1일까지 열리는 박두영의 개인전이고 또 하나는 26일까지 한남동 가나아트 나인원에서 열리는 메리 오버링 전시다. 동서양의 추상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작가 박두영(b.1958~ )은 1980년대부터 앙데팡당전, 서울현대미술제, 3월의 서울전, 하드코어-대전 코넥션전, TA-RA그룹전, 캐러밴 대구-파리전, 메이드인대구 II 등 현대미술 계열의 작가들이 참여한 단체전들을 통해 작품을 발표해왔다.

1980년대에는 주로 사진이나 오브제, 자연물 등을 이용한 설치작업을 했고 1992년 이후에는 보색 대비나 색조 단계를 표시한 줄무늬 평면작업들을 발표하고 있다.

작가는 1980년대에는 일반적이지만 보편적이지 않은 기호나 개념들 신체에서 유래한 감각 기제나 가치를 결정하는 일련의 의식 작용을 돌아보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공유하는 개념이나 사실들이라 할지라도 개인마다 구축한 세계모델이나 기호 체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미술의 일은 이것을 반성하고 재정의 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1992년 무렵부터 그는 새롭게 회화를 시작했다. 화면들은 거리의 어닝이나 가림막 같은 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트라이프 패턴을 캔버스나 종이 위에 옮겼다. 수직 수평의 직선면을 분할해서 반복한 것이다. 그림들은 녹색과 적색, 청색과 황색 등 잘 알려진 보색쌍을 교대로 배치하거나 색면 단계를 표시했다. 종이나 캔버스에 수채물감이나 스스로 개발한 안료 혼합재료로 그린 것이다. 처음에는 규칙적으로 분할한 칸에 정한 색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그렸지만, 점차 배열 규칙은 유지하면서 붓질의 느낌을 살리거나 재료를 겹치고 덧붙이는 등 방법에 따라 변화를 주고 있다.

“이미지에 대한 기대는 없다. 회화 내부의 서사나 담론에도 매달리지 않는다. 미술 가치는 미술 형식 외부에 있으며 조형의 범주를 넘는 존재의 일로서, 의미는 그것을 수행하는 마음과 태도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는 스스로가 선택한 단조롭고 무미한 작업을 견디고 유지하는 삶을 통해 미술의 경계를 지우고 인간의 보편 가치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에 어떤 가치가 내재하고 있는가? 작가는 1980년대부터 미술 개념을 구성하고 있는 의미의 영역과 실존의 접점에서 자기의 역할을 발견하고 나름대로의 방법을 통해 이를 표현해왔다.

그는 “직면하고 있는 이 세계는 ‘스스로 제작한 기호(記號)체계로 쌓아올린 허구의 장치”라며 일체 세계가 마음으로 지은 것(一切唯心造)이라는 작가의 세계 인식은 서사(敍事)나 환영(幻影)이 없는 이미지를 선택하게 했고, 궁극적으로 수직 수평의 줄무늬 보색 화면을 회화로 만들었다.

“작가 작업에는 외부 세계의 담론이나 이미지를 통한 욕망의 표출, 자아실현의 기대 같은 것은 없다. 화면은 그저 공책의 빈 칸이나 줄 친 도표처럼 명료하지만 공허한 도상으로 채워져 있다. 너무나 밋밋해서 몰가치해 보이는 그것들에 최소한의 의미라도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비슷한 규칙을 반복하는 지루함을 견디고 매순간 번뇌(煩惱)를 다스리며 마음을 다잡는 하루 하루의 태도와 일상(日常)으로부터 나온다고 믿는다.”

작가에게 미술이란 마음 내부의 지향성을 형상 기호로 구현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생을 통해 이어가는 것이며, 이념이나 감각의 경계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보편 가치에 이르는 길이라고 한다.

독창적인 기하 추상회화 작업을 지속해 온 메리 오버링(Mary Obering, b. 1937)은 칼 안드레(Carl Andre, b. 1935),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 등 저명한 미니멀리즘 작가들과 1970년대 뉴욕 화단을 배경으로 활동한 작가이다. 이번 전시는 그가 활발히 활동했던 시기인 1974년에서부터 1994년 사이에 그려진 회화를 조망하는 자리다.

오버링은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영향으로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작업이 성행하던 당대 뉴욕 미술계의 분위기 속에서 회화의 원류를 되짚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갔다.

작가는 1971년 칼 안드레와의 이탈리아에서의 조우를 계기로 당대 각종 미술담론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던 현대미술의 중심지 뉴욕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작가인 도널드 저드,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 등과 교류하며, 그들의 권유로 기하학적 모듈 구조의 미니멀리즘 회화에 접근하게 된다. 여러 개의 캔버스 천이 겹겹이 쌓여 다채로운 기하학적 모티프들을 구성하고 있다. 각기 다른 색의 캔버스 천이 만들어내는 레이어는 2차원의 평면에서 3차원의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사각형’이라는 형태 요소와 ‘반복’을 통한 화면의 구성은 대량 복제 시대의 상품의 생산방식을 작품을 통해 말하는 미니멀리즘 회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기하학적 모듈로 구성된 오버링의 회화는 더 나아가 회화 그 너머의 공간을 환기시키는 공간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공간감과 더불어 메리 오버링의 작품의 특징으로는 특유한 색의 사용을 꼽을 수 있다. 짧은 붓질로 수채 물감을 옅게 쌓는 방식으로 그려진 드로잉 연작은 오버링의 색채에 대한 탐구와 반복적인 행위가 만들어내는 리듬감을 보여준다. 수채 물감의 특성을 백분 활용하여 물감의 농담에 따라 색의 밝기를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며 이를 화면에 펼쳐냈다.

특히 1970년대 말 작가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거장들이 사용했던 재료인 에그 템페라와 금박을 회화에 도입하여 그만의 색채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실견한 르네상스 회화의 색상에 크게 감명을 받은 작가는 과거의 작업 방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흰색의 젯소와 벽돌색의 점토(gilding clay) 면과 템페라와 금박 면을 대조적으로 배치하여 각각의 색채가 화면 위에 대비되도록 했다. 각각의 매체가 지닌 물성과 색상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화면에 시각적 일루전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형태, 색채, 물질과 같은 사물 그 자체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두는 미니멀리즘의 ‘즉물주의(literalism)’에 해당된다.

오버링의 이와 같은 형태와 색상에 대한 다양한 탐구를 1990년대에 이르러 ‘대칭’ 구조로 수렴된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추상 언어와 색채의 사용을 지속적으로 탐구한 결과다. 미니멀리즘과 르네상스 회화라는 서로 상이한 미술사적 맥락들을 적극적으로 작업에 차용하여 독창적인 결과물을 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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