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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섭 작가 "나의 작업은 순수감성을 찾아가는 여정"..
문화

이영섭 작가 "나의 작업은 순수감성을 찾아가는 여정"

편완식 기자 wansikv@gmail.com 입력 2021/09/08 13:32 수정 2021.09.09 11:45
조각사에도 없는 새로운 조각기법...미술계 주목
24일까지 갤러리 마리 전시...평면작업도 첫선
거대한 어린왕자 작품옆에 선 이영섭 작가
거대한 어린왕자 작품옆에 선 이영섭 작가

[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르네상스 이후 조각은 크게 진보한게 없다. 어떤 이는 오히려 퇴보했다고 말한다. 조각의 기존 통념을 부셔버려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영섭 작가.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그의 작업방식은 깍고 쪼아내고 주물로 뜨는 기존의 방법에서 탈피하고 있다. 색다른 방식으로 시간의 파편들을 구성해 세월의 풍화마저도 절대시간의 타임캡슐로 만들어 내고 있다. 세계조각사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럼에도 작업의 단초는 ‘아버지’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고달사지 7년 천년스승을 만나다

“나의 작업의 여정은 아버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아버지를 빼닮은 나에게 아버지는 애잔함으로 다가오면서도 멋진 분이셨다. 겨울에는 소목장으로 목수일을 하시고 봄 여름 가을에는 벌키우는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삶에 충실한 분이었다. 고등학교때 아버지 목공 연장인 끌을 가지고 나뭇가지를 다듬어 만든 조각이 경기도 대회에서 상을 받으면서 나의 조각인생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원형이 아버지이고 아버지를 아는 것이 자신을 아는 방법이라 여기고 있다. 그것이 그의 작가의 길(道)이라 했다. 아버지 시간의 파편들로 자신의 조각인생을 조탁하겠다는 의지다.

“아버지는 어린시절 제게 끊임없이 철학, 문학,역사이야기를 해주셨다. 고향 여주 고래산 너머 고달사지 얘기도 그 중에 하나다.”

섬아이
섬아이

여주 들녘에 우뚝 서 있어서 마치 큰 바다에 고래등처럼 솟아 있어 고래산이다. 산자락에 사적 제382호로 지정된 고달사지(高達寺址)가 있다. 입구에선 ‘신털이봉 숲’이 반긴다. 신라 경덕왕 23년에 창건된 고달사는 한때 1500여명의 승려가 수행 정진한 커다란 도량이었다. 고달사 스님들이 탁발을 나갔다가 돌아올 때 이곳에서 신발의 흙을 털었는데 그것이 쌓여 신털이봉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고달사는 고려 광종 이후 역대 왕들의 보호를 받아 큰 절로 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이 남아 있는 석조문화재 모두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절을 이루는 데에 혼을 바쳤다고 한다. 절을 다 이루고 나서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큰 스님이 되어 훗날 고달사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아버지의 이끌림에 이르게 된 경지

초년생 작가로 막막하던 시절 그는 조각의 길을 찾겠다고 고달사지 인근에 집을 구해 7년간 머무르며 발굴과정까지 지켜봤다.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이야기에 이끌려서다. 보물7호 원종대사혜진탑을 수없이 달밤에도 보고 또 봤다. 한마디로 충격 그자체였다. 어느 순간 1300여년전 고달이라는 스승이 시간의 주름을 타고 그 앞에 서 있었다. 사리탑 옥계석 아래의 비천상은 숨을 멎게 만들었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도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하고 세련된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시대 조각물들이  그대로 땅에 묻혀 있었다. 제아무리 시대의 걸작이라해도 시간 앞에선 유적이 되고 만다는 사실이 허무했다.”

그는 시간을 거슬러 시간 자체를 조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방
하루방

 

“시간의 파편들로 작업을 하면 시간성에서 자유로워질거란 생각을 하게 됐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돌 등 자연재료들이 그렇다. 조선시대 분청이나 백자 파편,유리,준보석 같은 오브제도 사용한다. 절대시간을 간직한 존재들이다. 땅을 파서 만든 거푸집 맨땅에 밑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맞춰 자연재료들을 놓는다. 그 위에 시멘트 등 혼합재료들을 붓고 흙으로 덮어 굳기를 기다린다. 형태가 엎어진 상태로 놓여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길게는 한달후에 흙을 파서 유물을 발굴하는 심정으로 꺼내보게 된다. 자연스레 땅의 색과 체취가 묻어나게 된다. 대지의 시간마저도 머금은 조각이 되는 것이다.”

#시간성에서도 자유로운 조각을 하고 싶었다

그의 조각들에선 오래된 석불 같은 작품부터 제주소녀의 모습,어린왕자 등 다양하다. 세월의 풍화 마저도 담아낸 모습이다. 거칠고 투박한 것 같지만 포근한 친근감이 있다. 최근들어선 세련미까지 가미된 모습이다. 혼합재료인 모래, 자갈 등은 깨끗이 씻어 사용하기에 금이 가지 않고 석재보다 내구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돌로는 쪼아낼 수 없는 것들도 조형화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버지(과거) 와 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시간에 따라 진화하는 작품을 지향하고 있다. 제주 바닷속에 작품을 수장시켜 해상조각공원 계획도 가지고 있다. 먼 훗날 꺼내보면 각종 해초와 패각류가 붙어 있던 흔적들이 새로운 작품으로서의 아우라가 될 것이다.”

그는 제주 폐가를 작품의 연장선상에서 손을 봐 마을에 활력을 불어 넣기도 했다. 마을재생프로그램을 연상시킨다. 올 겨울에는 완도폐가에서 새로운 작품 프로젝트를 구상중에 있다. 명소로 부각시켜 지역경제에 작게나마 ‘문화 보시’를 하겠다는 생각이다. 과거라는 폐가를 현재로 불러와 미래로 이어지게 하는 그의 작품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아버지의 양봉 여정은 매년 제주에서 시작해 양평 석산리에서 끝났다. 내가 나의 의미있는 작업의 여정을 제주에서 시각한 이유다. 석산리에는 3년간 도시락을 싸가서 계곡을 살폈다. 겨울철 얼음위로 고개를 내민 규석 돌맹이가 물기를 잔뜩 머금고 내뱉는 빛에 매료가 됐다. 아버지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손처럼 나를 이끌었다. 그런것들이 나의 작품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한 남자로서 가슴이 멍해진다. 설탕이 귀하던 시절 꿀값은 금값이었다. 양봉으로 논과 밭,방앗간까지 사들였던 아버지였다. 어느날 10드럼 가까이의 꿀을 사기를 당하면서 아버지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화상
자화상

“술이 거나하게 취하셔서 마을어귀에 쓰러져 계신 경우가 많아졌다. 그럴때마나 나는 리어카를 끌고가 아버지를 싣고 와야 했다. 동네사람들이 쓰러진 아버지 주위에 빙둘러서 희죽거리거나 손가락질 하는 모습을 그대로 봐야했다. 못 볼 것을 본 그런것들이 어린마음에 상처가 됐다.”

그가 최근까지도 사람만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던 이유다. 제주작업이후 아버지 이야기를 비로서 털어 놓을 수 있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누구나 우리는 상처받기 쉬운 ’내면아이‘를 가지고 있다. 어린시절 정서적 상처가 성인이 되어서도 남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치유가 되면 ’내면아이‘가 창조적 에너지의 근간이 된다고 한다. 실제로 미술사속에서 걸출한 작가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 이영섭 작가도 전형적인 사례다.

시간의 파편으로 절대시간을 조각하는 그가 유독 집착하는 조형물은 어린왕자다. 그에게 어린왕자는 자신의 ’내면아이‘를 환기시켜 준 존재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야 말로 내면아이의 존재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란걸 어느전문가의 글을 통해 알게됐다.어린 왕자와 조종사의 대화를 내면아이와 성인자아의 대화로 바라보니 진정한 내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가 ’어린왕자‘에서 가장 좋아하는 두 구절이 있다. 하나는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란 대목과,또 하나는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무언가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야‘란 대목이다.

“이제사 어린왕자를 통해 영혼의 오아시스인 ’내면아이‘와 마주한 꼴이다. 아버지의 여정을 따라간 것은 결국 나의 ’내면아이‘를 찾아나선 여정이었다.”

할망
할망
제주도 풍경(어린왕자)
제주도 풍경(어린왕자)

#아버지,어린왕자,아틀란티스는 동심의 경지

요즘 그는 작업을 놀이하듯 한다. 어쩌면 내면아이는 결국 순수감성,직관적 감성이라고 할 수도 있고 동심,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다. 모든 작가들의 희망이 아이같은 작업으로 돌아가는 것, 순수감성에 이르는 것이 꿈이다. 내면아이의 순수감성의 세계야말로 최고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이영섭 작가의 제주, 완도 프로젝트는 순진무구 그 자체다. 일본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넘어설 수 있는 키포인트다.

“제주에는 화산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검붉은 황토도 있다. 주상절리 등 화산석에 스며든 모습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제주 바람도 그렇다.”

24일까지 갤러리 마리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 ’아틀란티스에서 온 어린왕자'에서는 제주풍경은 담은 평면작업도 처음으로 선보이고 있다. 검푸른 쑥돌로 불리우는 애석의 분위기부터, 검은 화산석이나 모래에 진한 검붉은 황토가 스며든 노란색이 감도는 풍경이다. 변시지 화백의 그림이 연상된다. 돌담과 원담 등 바닷가 풍경도 그렇다. 제주 겨울풍경을 담은 것이다. 언뜻 추사의 세한도가 겹쳐지기도 한다.

제주도 풍경(금릉 원담)
제주도 풍경(금릉 원담)
제주도 풍경(명월리 겨울풍경)
제주도 풍경(명월리 겨울풍경)

“전설의 섬 ’아틀란티스‘도 우리의 ’내면아이‘란 생각이 든다. 제주의 흙과 돌,모래 등을 도구삼아 그렸다. 레진으로 고착시켜 평면화 했다. 신나는 놀이였다.”

결국 이영섭 작가의 작업은 아버지,아틀란티스로 이어지는 내면아이와 마주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순수감성이 이르는 노정이었던 것.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에 매료되는 이유다,

"이제 아틀란티스 섬아이가 되어 마음껏 놀고 싶다." 그의 동자승 같은 표정이 가슴을 파고든다.

## 이영섭 작가는 고등학교시절 니체에 심취했다.  도서관 알바를 하면서 왠만한 문학,철학서를 두루 섭렵했다. 인문학 공부모임인 ’수유너머‘에도 참여했다. 카프카의 소설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등을 즐겨 읽었다. 그는 문학 철학 등 인문학의 이상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런 확신의 힘이 그의 작업의 동력(에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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