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엔 망리단길, 서울대엔 샤로수길, 관아골엔 관리단길
[뉴스프리존=김현태기자] “서울 데이트 top 10”에 빠지지 않는 장소가 있다. 바로 이태원 일대에 자리 잡은 경리단길이다. 허름한 골목이였던 이곳은 몇 년 전부터 이국적인 카페와 식당들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오래된 골목을 훼손하지 않고 이전 뼈대에 들어선 현대식 점포들은 골목 특유의 올드한 감성과 여유로운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도심에선 보기 힘든 경리단길만의 독특함이다. 이러한 독특함이 젊은이들을 사로잡았고 지금은 걷기 좋은 데이트 코스로 손꼽히고 있다.
경리단길이 홍대, 명동과 나란히 손꼽히는 데이트 장소가 되면서 잇따라 서울 곳곳에 ‘제 2의 경리단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허름한 골목에 이색적인 가게들이 하나 둘 들어서고 하나의 독특한 거리가 형성된다. 대표적으로 마포구 망원동 일원의 ‘망리단길(망원동+경리단길)’과 서울대 인근의 ‘샤로수길(‘샤’ 모양의 서울대 정문 조형물+가로수길)’을 들 수 있다. 망원역 근처에는 오래된 세탁소, 철물점들 사이로 독특한 디자인을 한 이색적인 점포 20여 곳을 군데군데 볼 수 있다. 이 곳이 제2의 경리단길로 불리는 ‘망리단길’이다. 서울대 근처의 샤로수길 역시 8~9년 전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휑한 동네였다. 작년 가을부터 점포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점차 변화되고 있다. 올해 들어 10여 곳 이상의 가게가 새로 생겼다.
이러한 움직임은 서울뿐만 아니라 지역 곳곳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충주의 경리단길이라 할 수 있는 성내동 인근의 관아골, ‘관리단길’이 그 대표이다. 충주의 관아골은 오래전 충주의 명동이라 불릴 만큼 번화 된 충주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모습이 점차 퇴색되어 갔는데, 최근 들어 관아골이 이전의 모습을 조금씩 되찾아 가고 있다. 오랜 정통이 녹아있는 관아골이 올해 1월 17일 충주시청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최종 결정됨에 따라, 충주의 문화 중심지로 변화된 것이다. 현재 관아골은 허름한 건물 외관을 리모델링하여 청년몰을 세우고, 관아골 곳곳에 아기자기한 벽화를 그려 넣고 있다.
앞서 나온 서울의 세 골목은 점포가 들어와 상권이 형성되었다. 이와 달리 관아골은 상권형성과 함께 문화의 공간으로서 탈바꿈 된 것에 의미가 더 크다. 관아골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 형성되면서 움츠려있던 관아시장엔 활력이 샘솟고, 충주 시민들은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가 되었다.
최판길(42세, 충주시청 건축디자인과 도시재생팀) 경관전문관은 “쇠퇴한 구도심인 관아골 일대를 정비해 활성화 기반을 만드려고 한다” 며 “도시재생 전략과 활성화 계획을 수립해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지역 특화산업을 육성하며, 주민 공동체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중” 이라고 답했다.
역사의 중심지, 이젠 문화의 중심지
그렇다면 왜 충주의 많고 많은 곳 중 관아골이 도시재생사업의 대상으로 선정되어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바로 관아골의 역사적 특성 때문이다. 관아골에는 경리단길, 망리단길, 샤로수길와 달리 역사적으로도 그 의미가 큰 공간이다.
관아골 한 켠에 위치한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조선식산은행은 일제 강점기 때 전국 곳곳에 세워진 은행이자 식민지 착취기관이었다. 강원도 원주의 조선식산은행은 현재 SC 제일은행 원주지점으로 탈바꿈해 일제 강점기와 동일한 용도인 금융기관으로 활용중이다. 이에 반해 충주시는 조선식산은행을 금융기관이 아닌 시민을 위해 시립미술관 또는 근대박물관 등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지난 11월 4일 밝혔다. 아픈 역사를 딛고 시민들을 위한 문화의 공간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식산은행 뒤로는 관아 공원이 있다. 관아 공원은 조선시대 충주읍성 내에 있던 바로 이 관아골에 조성한 건물로, 조선 시대에는 관청으로 쓰인 건물이다. 1983년 군청이 이전하면서 충주시에서 완전 해체하여 복원한 후 그 일대를 공원으로 꾸며졌다. 현재 밀랍 인형으로 조선시대의 관청에서 근무한 포졸들을 재연하여 현실감 있는 관청의 모습을 묘사해 놓았다. 또한, 관아 공원 내에는 500년 이상 된 고목이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어 방문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조선 시대에는 관청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은행이 있었던 곳인 만큼 역사가 깊은 관아골이다. 그 역사 속에서 관아골은 당당히 충주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현재까지 충주에서 쭉 사셨다는 이현동(81세, 충주시 문화동) 할아버님은 “예전에는 관아골이 서울의 명동이었어. 지금은 길이 좁은 골목이지만 예전에는 큰 대로였었지.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했어. 6.25 당시 충주에 폭격이 있었는데, 그 때 건물이 다 무너졌어.”라고 당시를 회상하시며 안타까워하셨다. 하지만 현재 관아골이 변화되는 모습에 흡족해 하셨다. “시에서 지금 이렇게(문화공간으로) 바꾸고 있잖아. 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
OLD 감성과 NEW 감성의 총체, 그래서 더 따뜻한 관아골
이렇듯 역사 속에서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관아골이 역사 공간과 함께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되고 있다. 이현동 할아버님과 같이 과거 그리운 향수를 품은 채 개발 중인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옛 향수를 그대로 유지한 채 노후된 도시환경만 개선하는 도시재생사업으로 OLD 감성과 NEW 감성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올해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10월 가볼만한 곳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관아공원 바로 옆에는 다양한 전시회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관아 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다. 충주가 낳은 서예의 아들인 하곡 전찬덕 선생님의 전시회가 12월에 이 관아 갤러리에서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관아 갤러리에서 아래 방향으로 좀 더 내려오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김수영을 위하여’ 라는 이름의 카페가 나온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면 재즈풍이 물씬 나는 음악을 배경으로 사장님이 직접 그린 파스텔 톤의 그림들과 고풍스러운 핸드드립 커피를 만나볼 수 있다.
또한, 관아골에는 시장 뿐 아니라 청춘대로라는 새로운 트랜드가 생겨났다. 청춘대로는 청년들의 창업을 도우며 시민들의 겨울철 실내 활동을 제공해주고 있다.
충주시는 2017년 1월 관아골에 위치한 오래된 건물을 매입하여 2017년 9월 청년몰 ‘청춘대로’를 오픈하였다. 건물도 젋은 감성에 맞추어 외벽 모두를 벽화화 하였고 내부 시설 또한 40년 이상된 건물이라고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리모델링하였다.
청춘대로에는 글로벌 카페, 아동복 리폼 한복 맞춤, 아로마테라피, 즉석식품, 수제 맥주집 등 야외 활동이 어려울때 복합 문화생활을 한 건물에서 모두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충주에도 생긴 것이다.
청춘대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정은혜 원장(35, RARRINE 미용실 원장)은 “저는 8년 동안 미용실을 운영했었는데, 청춘대로가 생기면서 올해 8월에 이쪽으로 가게를 옮기게 되었어요. 이 관아골 일대가 한산해 보이지만, 주변에 음식점도 많아서 점심시간만 되면 사람이 북적북적해요. 잘 몰랐는데 유동인구가 꽤 많은 편이더라고요.” 라고 답했다.
청춘대로 바로 옆 야외에 문화마당을 설치하여 포차와 버스킹 공연 등 다양한 문화 행사도 진행되고 있다.
청춘대로가 주최하고 충주시 관아골상인회,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후원하여 버스킹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하는 관아골은 홍대의 버스킹 거리를 연상케 한다.
공연이 없는 날은 충주 청년협동조합에서 기획하여 운영하는 관아골 포차가 열린다. 포차는 밤에 주로 열리는데 어둠속 빛이 어우러진 밤의 관아골은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포차에는 커피 및 칵테일, 와인샹그리아, 벨기에 맥주. ‘니아까’ 라는 일본식 닭다리살숯불구이와 러시아식 양꼬치, 중국식 오돌뼈등 세계 각국의 음식을 판매하고 있어 젊은이들의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관아골에는 소위 인스타용 사진이라 불릴만한 아름답고 감성적인 벽화가 많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오성공인중개사사무소 건물의 벽화이다. 오래된 낡은 건물의 벽면이 외관상 보기 안 좋아 관아골 총무가 시청에 요청해서 그린 것이다.
충주 토박이라는 해당 건물의 공인중개사 권오성 대표(56, 오성공인중사사사무소 대표)를 찾아가 보았다. 권 대표는 “예전에 관아골에 성이 있었는데, 그 성을 기준으로 성의 서쪽은 성서동, 남쪽은 성남동, 그리고 성곽 안쪽으로는 성내동이라는 동 이름이 붙었어요. 예전부터 성 안에 있던 성내동 관아골 일대가 모든 것의 중심지였죠. 우리 건물의 벽화는 올해 6월에 관아골 상인회에서 그리게 되었는데, 충주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관아골이 문화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뜻 깊네요. 관아골에서 부동산 일을 하고 있는 저희로써는 특히나 더 뜻 깊은 일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라고 답하였다. ‘성내동’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충주의 중심지인 성내동의 관아골이 이처럼 아름답게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까지 따뜻해진 기분이 들었다.